설날을 맞이해서 '민족 대이동'이라는 표현을 뉴스에서 봤다. '민족'. 구수하면서도 투박한 표현에 가슴 한쪽이 뭉클해진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문득 '배달의 민족'이라는 모 회사가 떠오르는 걸 보니, 사업 이름 한번 기똥차게 잘 지은 것 같다.
지금처럼 한 번에 가는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엔 몇 시간씩 걸리는 귀향길을 마치 피난길처럼 완전 무장하고 출발하곤 했었다. 나와 동생은 어렸기 때문에 잠만 잤지만,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중간에 먹을 간식과 도시락을 챙겼고, 아빠는 짐을 옮기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시면서 신발 넣는 부분 위에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임시 매트리스 비슷한 걸 앞 좌석과 연결해서 고정해 두었다. 그럼 나와 동생은 엉금엉금 기어들어 가서 새우잠처럼 등을 굽힌 채 눈을 감으며, 기분 좋은 덜컹거림 속에서 잠을 자고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도착해있었다. 어렴풋하게 남은 추억 속 그때가 결코 편하진 않았지만, 그 옹기종기했던 순간이 그립다.
세월이 흘러서, 맏며느리인 엄마는 3일 전에 먼저 내려간 상태고, 아빠는 볼일을 보고 이른 새벽에 내려갔고, 나 역시 알아서 차표를 끊고 내 스케줄에 맞춰서 간소한 짐을 들고 곧 뒤따라 내려갈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맞추고 일정을 조정해서 차 한 대로 같이 출발하던 때와 달리 훨씬 자유롭고 편해졌는데도 알게 모르게 허전한 이 느낌. 엄마, 아빠도 이젠 두 자식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 해졌을지, 아니면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을지.
설 연휴에는 택배가 많이 몰릴 걸 예상해서 기대를 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내려가기 직전에 이번에 서평단으로 선정된 두 권의 책을 받을 수 있었다. 제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내게 배달해주기 위해 택배기사 아저씨들의 보이지 않은 민첩함과 행동들이 떠오르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긴 시간 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양손에 들린 책 때문에 덜 심심할 듯. 얼마나 걸리든 끄떡 없다. 든든하다.
다들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