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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모를 뵈러 아버지를 모시고 아내와 아이와 함께 대구에 다녀왔다.

 

내 결혼식에 오신 것이 마지막이니 20년 가까이 되었다.

 

아버지의 유일한 누나로 아버지보다 4살 위이니 이제 여든아홉.

어머니가 시누이인 고모를 언급할 때는 항상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는 그저 마냥 좋으신 분이라고  말해서 좀 부처님 같으신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작년에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찾아뵙지도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더 늦기 전에 뵙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인사드리고 아내와 아이도 보여드리고 싶었다.

 

박완서의 단편집을 읽고 계시더라는 작은아버지의 전언 데로 백수白壽는 문제없겠다 싶을 만큼 정정하시고 말씀도 정확했다.

당최 입맛이 없다고 말씀하셨으나 하루 세끼 적당량을 꼬박 드시고 소화도 잘 시킨다고 한다.

 

큰 딸인 사촌누나가 모시고 사는데 누나도 환갑이 지났고 손자도 있다고 했다.

내 머릿속에는 할머니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누나 내외를 직접 보니 막연한 예상과는 전혀 달라 당황스러웠다.

동대구역으로 마중을 나온 자형은 2살 손자를 가볍게 안고 앞서 성큼 가는 발걸음이 청년이다.

누나도 내 또래로 보였다. 젊어 보이기도 하지만 단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에 단박에 신뢰가 가서 마음이 무장해제되었다.

아내도 누나가 참 예쁘시다고 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코바야시 사토미가 생각났다.

 

어쩜 이렇게 젊을 수가 있지?

올 초 회사 정년퇴임식에서 목도한 58년 개띠들의 늙은 모습과는 너무도 대비가 된다.

회사에 오래 다니면 늙나...

 

누나가 소담한 점심상을 차려주었다. 덕분에 올해 처음으로 쑥국을 맛보았다.

무가 들어간 담백하고 맑은 쑥국.

 

난 이번 방문을 준비하며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낯선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것보다 준비할 것이 많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엔 대부분 괜한 걱정들.

아버지도 당신 누님을 보는 기쁨이었는지 비교적 잘 걸으셨고, 고모님 댁에서 마중을 나와주고 점심도 차려주어서 동선도 간결하고 편했다.

SRT 차비를 나중에 아버지가 건네주셨다.

생각해보니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고모에게 절을 드리며 마음 모아 만수무강을 빌었다.

선물로 사간 중국 월병 과자를 입맛 없을 때 종종 드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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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r.Darcy

    저의 언니들중 그 나이가 있어요.요즘 60대 언니들은 예전 50대에요.-10살, 제가 언니들과 나이차가 좀 많습니다. 바로 위 언니와 10살 이상 차이 나니요.ㅋㅋ,ㅜ , 2살 손자가 있다면 아직 한참 중년중의 중년인 젊은 분이신데요. 방문 모습이 그려집니다.연세든 어르실들께 1년에 한두번이라도 찾아뵙고 서너달에 한번이라도 전화 안부라도 드리면 너무 좋아하실거에요. 거리가 있다면요.

    2019.04.11 15:39 댓글쓰기
    • 파로

      달시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말씀 고맙습니다.

      2019.04.12 08:48
  • 파워블로그 껌정드레스

    누님 묘사하신 대목 읽으니, 저도 단아하고 기품있는 여인으로 나이들고 싶어지네요.

    2019.04.12 18:56 댓글쓰기
    • 파로

      껌정드레스님이야 이미 기품이 넘치고...
      근데 ‘단아’하고는 뭔가 부합되지 않는 것 같아 단아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단정하고 아담하다)
      뵈었을 때 생각해보니 키가 큰 편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담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단정보다는 엉뚱, 발랄, 좌충우돌 쪽으로 더 나가시길 바랍니다.

      2019.04.13 02:39
  • 이작가

    잘 보고 갑니다

    2019.06.14 20:18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