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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Book]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처음에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분류학자의 전기 내지 평전인가 했다.

이야기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19세기 미국의 분류학자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한다.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저명한 분류학자로 자리매김하는 흐름은 전기나 평전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각종 생물의 이름과 학명들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그 공백을 메우는 사람이었다.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물고기를 발견해내고 이름을 붙이고 어종을 구분짓고 분류했다.

그 시절에도 MBTI 검사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 J였을 것이다. 그의 분류학 여정은 극 J인 나로 하여금 희열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이름도 없이 자유로이 물속을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그의 손에서 정확한 틀, 즉 분류 체계 안에서 정의되었다.

사실 정확하다는 것도 말이 안 돼. 그 시절엔 어종 체계 자체가 없었으니 먼저 발견한 사람이 마음대로 어종이나 이름을 붙이면 그만이었다. 나름의 그럴싸한 논리와 근거만 있다면야.

 

어쨌든 애초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학자를 몰랐으므로 처음에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갈수록 지루해졌다. 그래서 이 사람이 뭔데, 어쩌라고, 뭘 말하고 싶은 건데?


데이비드의 분류학적 열망, 틀 짓기와 구분 짓기는 결국 우생학으로 빠지고 말았다.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은 예사 수준이었다. 우생학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뿌리 깊고 단단했다.

특정 조건이나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어 수용소로 보냈다. 여자들은 강제 불임 시술을 당했다. 번식의 자유는 저해되고 세상에서 '청소'되어야 할 사람으로 분류된 것이었다.

충격적인 건 아직 우생학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2017년 미국의 한 판사는 잡범들에게 불임 시술을 받으면 형량을 줄여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1907년도 아니고 2017년에 말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특별히 나쁜 인간이라서, 악마라서 이런 우생학을 선도했을까? 이 책에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단순히 분류학적 열망이 너무 높았을 뿐이다.


여기서부터 나의 반성이 시작됐다.

틀 짓기와 구분 짓기. 사실 그것은 편리함을 위한 것이었다. 

나 역시 무언가 정의되지 않고 분명한 틀이 없으면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감히 그 모든 흩어져 있는 것들을 정의하고 분류할 수 있을 자격이 있을까? 그렇게 들이대는 잣대가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옳음'과 '선함'의 잣대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전반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를 거쳐, 중반부 우생학 이야기를 거쳐 후반부에 이르면 비로소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난다. 사람들이 지루해도 끝까지 읽으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활자 뒤에서 이야기하던 작가의 목소리는 이 지점을 지나면서 급속도로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나 '물고기'라는 틀 짓기가 강력한지, 나는 이 문장이 무슨 비유하는 말이 아니라 활자 그대로를 뜻하는 문장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현대 과학을 통해 '물고기'라 일컬어지는 생물들을 분석했더니 같은 생물종으로 묶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마치 산에 사는 고라니와 산에 사는 인간을 두고 똑같이 산에 사니까 '산종'으로 구분짓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대충격..)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도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결코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꾸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함부로 규정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달았다.


인간사의 획기적 진보들은 틀 안의 있는 것들을 어떻게 잘 굴려서 얻어온 산물들이 아니다. 당시 세상의 틀에서는 황당무계하다고 여겨진 것들을 가능하다고 믿고 연구하고 증명해온 결과물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문장이 참 와닿았다.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마지막은 정말 작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마무리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조금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감동을 받아서다.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라 하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 인생은 구분 짓고 틀 짓고 규정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알 바깥에 있는 것을 꿈꾸고 생각지도 못한 우연에 몸을 맡기고 새로운 기회를 얻고 그렇게 규정될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도 이런 기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안식처를 찾아가는 이야기라 하고 싶다. 우리의 안식처는 틀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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