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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거리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다양한 물건들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생산하고 있지만 대부분 단발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의 시간동안 같이 호흡하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야기과 과거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는 물건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 중에는 먹는 것들이 많다. 제일 대표적인 것으로 와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은 원래 지식인이나 비지식인이나,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인생의 공유점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현재의 자본주의 논리에 눌려 어느 순간 와인은 고급 음식의 상징물처럼 되었다. 하지만 와인 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식음료도 없을 것이다. 그 만큼 대중적이라는 이야기이다.
와인이 이렇게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생산과정이 우리의 삶과 연이어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과 호흡하지 않는 것들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시간에 걸쳐서 단일 생산물로 하늘과 땅과 인간이 같이 호흡해서 생산해 내는 물건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와인에 관한 책이다. 와인의 간단한 역사와 유명인들의 와인에 대한 찬사들, 그리고 각종 와인이 생산되는 과정과 각 지역 와인들의 특성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의 저변에는 모든 와인은 훌륭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막연한 찬양과 부르주아의 상징이 되버린지 오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와인은 우리의 밑바닥 삶과도 호흡하는 상징물이 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하나의 예술이다. 하나의 제대로 된 와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이 세상에 한 명의 영웅이 태어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좋은 품종이 선정되어야 하고 그것이 또 좋은 땅을 만나야 한다. 좋은 땅을 만난 후에는 좋은 기후 환경을 제공받아야 하고 적절한 범위의 인간의 손길이 미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절한 통에 담겨서 적절한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한 가지라고 어그러지면 와인은 하나의 영웅으로 태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장해야하고 우리의 후대를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 것인지의 답을 얻게 된다. 특히 인간의 손길이 미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손이 가거나 너무 많은 관심과 영양분을 주어도 와인은 멋있게 태어날 수 없다는 내용을 보면서 누군가를 트레이닝 시킬 때 최대한 자생력을 갖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와인이 갈수록 너무 과학의 힘에 의존하는 것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정량화되어 양성되는 것은 왠지 인간적인 면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고 생명이 아니라 기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와인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먹는 대표적인 식음료이기 때문에 너무 정량화된 과학의 힘에 의존하기 보다는 과거의 방식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 분가 탱고를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도나는 조금 걱정이 되요.제가 실수할까봐 두려워서요라고 답하는데, 프랭크는 탱고는 실수할게 없어요. 만일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고 그게 바로 탱고죠. 한 번 해봅시다라고 답한다.
이 이야기처럼 와인에게 실수를 허용하는 것, 그리고 그 시행착오 속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와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