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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도서] 1984

조지오웰 저/박유진 역/박경서 해설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무척이나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에, 정치소설인 1984가 중학교 필독서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읽어내는데 서른 중반, 정말 아무것도 할게 없어 손에 잡혀서 들고 나와서

무료해서 이거라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시점에서야 읽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읽게 된 이 책은 무척이나 힘겨웠다. 주인공 윈스턴은 가상의 1984년도 빅브라더라는 오세아니아의 최고 지도자는 완벽한 전체주의 사회이다.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말살시키는데 온갖 힘을 쏟는다. 사상이 불순하다고 의심되면 어린 자식이 부모를 고발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사회이다. 언론이라는 것은 완벽하게 통제되고 재 생산된다.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에 의해 감시되고 철저한 계급사회로 나누어진다. 그런 곳에서 당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윈스턴이다.


당이 정해준 여자와 결혼했지만 그 결혼은 당원 생산을 위한 수단일 뿐 아무 감정도 없는 관계이다. 그리고 몇 차례의 관계에도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자 부인은 미련 없이 떠나가 버린다. 윈스턴은 눈을 피해 공책을 한 권 산다. 언어 말살정책이 시행되기에 공책을 산다는 것은 불순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상징이 된다. 사상이 불순하다고 여겨지는 동시에 그는 죽음을 당할 것을 알지만, 이대로 사는 것 역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느끼기에 결국 실행한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는데 1부는 윈스턴의 일상, 2부는 윈스턴의 사랑과 반란, 3부는 윈스턴의 고문과 죽음 부분이다. 사상경찰로 의심했던 줄리아가 사실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둘은 위험한 줄 알면서 밀회를 즐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정부에 반항의 의미로 줄리아와 육체적 관계를 즐기던 윈스턴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체제를 붕괴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사회가 붕괴하는 건가? 정말 윈스턴의 반란은 성공하는 건가 싶었을 때, 그가 믿었던 오브라이언과 고물상 주인으로 알았던 채링턴의 고발로 순식간에 잡혀 들어간다.



그는 각오했던 수많은 고문을 겪으면서도 줄리아만은 배신하지 않는다. 굶겨서 가죽밖에 남지 않고 전기 고통에 성한이가 없어 모조리 빠지지만, 줄리아만은 지켜낸다. 그리고 그녀를 이런 극한의 고통 속에서 지켜낸 것에 대한 얼마의 자부심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장 무서워한 쥐 고문(둘의 밀회 장면에서 그는 쥐를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것을 말했다) 앞에서 무너졌다. 101호는 그런 곳이었다. 극한의 공포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하는 곳.

그리고 굶주린 쥐 떼 앞에서 윈스턴은 결국 내뱉는다

"나 말고 줄리아에게 하세요. 나 말고, 그 여자에게, 나는 안돼."



거짓말처럼 고문은 끝난다. 더 이상의 감시도 사라진다. 이제 둘을 감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배신한 심연을 드러냈고, 다시 조금의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된다. 사회주의는 승리했다. 윈스턴은 빅브라더를 사랑한다.


고통은 사라졌고, 사랑도 사라졌다. 이제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완벽하게 감정은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다. 지구 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북한은 같은 Korea로 불리는 북한은 지금 핵무기로 도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단국가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고 하니,

나는 막연히 왜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부터 시작한 이 지긋지긋한 3대에 걸친 사회주의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얼마나 나의 무지였는지 알게 해줬다는 것이다.


솔직히 답답했다. 지금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텐데 왜 반발하지 못하는가. 총을 든 군인조차 탈북하는 마당에 그들은 왜 뭉쳐서 김정은을 처단하지 못하는가.

친족도 사형시키는 저 북한 돼지를 그냥 보고만 있는가.


북한 주민들의 세뇌는 그 정도이다. 1984의 모습은 너무도 북한과 닮아있다

평양 주민들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프롤로 대변된다. 그들은 다른 사상을 가질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저 죽음을 당하는 정도로 끝나는 사상 세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나는 이쪽에서 얼마나 내 멋대로 무지하다고 판단했는가.

평생 정부의 압박이나 권위와 맞설 필요 없이 조용히 살고 있었기에 사상교육이 얼마나 무지막지하며, 자유를 뺏기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조금도 알지 못했기에, 나는 무지했다.

북한 주민들, 그들의 정부, 관료들이 한심하다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 하다못해 김정은 한 명을 처단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나.


요즘 뉴스는 실망스럽고 무서운 일들만 가득하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뿐 아니라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기 급급한 정치인들과 굶어죽고 소외되어 자살하는 이웃들과, 가난한 아이들과는 어울리게 하고 싶지 않은 극단적 이기주의에 이 나라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을까 싶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따뜻한 기사는 한 번이라도 더 클릭해서 보게 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권력은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데, 그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며, 국민들조차 권력이 그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윈스턴의 혁명은 실현되지 않았다. 지독히도 잔인한 현실주의다. 아마 나는 다시 1984를 읽으려면 이십 년의 세월은 더 있어야 할지 모른다. 조지 오웰이 우리에게 경고한 세상이 도래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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