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는 것은 확실히 읽는데 타 종류의 글보다는 시간이 더 걸린다. 소설 같은 경우에는 책을 접하고서 흥미가 팍 오는 경우는 밤을 지새우고라도 읽고,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2~3일이면 다 읽는다. 수필 같은 경우에도 저자의 입장을 헤아리면서 읽더라도 3~4일이면 족하다. 심지어 나하고 전공이 다른 과학책이라도 일주일이면 족했다. 하지만 ‘시’는 ‘시’라서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나, 하나,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의 가슴 속에 내용을 저장하면서 읽어나가려니 확실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내용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읽으려니, 다독과 속독을 즐기는 나에게는 시집 한 권을 다 읽는 데는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 읽고서 시집의 두께를 다시 봤더니 진짜 얇았다. 타 종류의 책 같으면 완독하는데 하루도 안 걸릴 것이 열흘 가까이 걸렸다. 그것도 완전하게 내용이 다 이해된 것도 아닌데.
뇌과학자인 “정재승”씨가 어느 강연에서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인간의 뇌가 가장 활발하게 완성도를 이루는 것이 평균 46~63세라고. 젊은 사람의 뇌는 세세한 것은 잘 기억해도 전체적인 내용은 오히려 나이 든 사람이 더 낫다고. 마치 젊은 사람의 뇌는 숲속의 나무에 대한 세부사항 같은 것을 잘 기억해 내지만, 나이 든 사람의 뇌는 숲속의 나무보다 숲 전체 윤곽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고. 그래서 같은 책을 읽을 때도 읽는 동안에는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히는 것 같더라도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전체적인 내용의 윤곽이 그려진다고. 사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러나 이 ‘시’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하나, 하나의 시가 마치 한 권의 책과 같아서 어떤 내용의 시를 읽었지. 하면서 대강의 윤곽은 남는데 자세히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처음에 이 시집을 읽어나가다가 약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생각이 맞는가 검증하기 위해 책장에 꽂혀있던 한국 시집을 한 권 꺼내어, 이 시집에 기록된 비슷한 감성의 ‘시’ 한 편을 골라 여식 앞에서 낭송해봤다. 그리고 여식에게 더 마음에 와닿는 ‘시’를 골라보라고 했다. 당연히 한국 시였다. 바로 언어의 차이였다. 이 책에 수록되어있는 ‘시’는 아무리 주옥같은 시라도 외국 시를 역자가 심혈을 기울여 엄선하고 번역한 시였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얼른 다가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어보니 역자가 왜 이 ‘시’를 엄선했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았다. 많은 ‘시’중에서 다음 두 편의 ‘시’는 내 가슴 속에 남아있다.
[ 신과 나 ]
신과 나는
작은 배에
함께 탄
두 명의 뚱보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 부딪치며
웃
는
다
- 하피즈 -
[ 잎사귀 하나 ]
잎사귀 하나, 바람에 날려
가지에서 떨어지며
나무에게 말하네.
'숲의 왕이여, 이제 가을이 와
나는 떨어져
당신에게서 멀어지네.”
나무가 대답하네.
'사랑하는 잎사귀여,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라네..
왔다가 가는 것
숨을 쉴 때마다
그대를 창조한 이의 이름을 기억하라.
그대 또한 언제 바람에 떨어질지 알 수 없으니,
모든 호흡마다 그 순간을 살라.
- 까비르 -
이외에도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는 ‘시’가 10편이 넘지만 우선 이 두 편만 소개하고 나머지는 내 마음속에 저장하고 있다. 확실히 마음 챙김의 시가 맞다. 계속해서 꺼내 볼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