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처음 매너농장의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으면서 했던 말이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해보면 “동물은 좋고, 인간은 나쁘다.”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나쁘다는 기준은 올바른 것일까?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때마다 관점은 달라진다.
처음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기반으로 세워진 동물농장은 어쩌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일 지도 모른다. 나쁘다는 기준이 틀렸을 때, 어떻게 동물들이 받아드릴지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동물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책을 읽으며 앞으로의 전개방법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처음 동물들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효율적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평등을 위해서 움직이기로 맹세했을 때 나는 책의 주요한 이야기가 네 다리 동물들이 협동하고 몫을 나누며 유토피아를 세우는 쪽으로 전개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문명을 동경하고 학습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 의도가 잘못되어서 그럴까? 매너농장이 동물농장으로 바뀌고 농장을 통솔할 지도자가 생기고 주도권이 생기면서 알량한 계급이 생겨났다. 누군가 희생하며 쌓아올린 노고를 보상받을 수도 없이 버려지는 모습에 인간 사회에서 간간히 보여지는 비도덕적인 행태를 거울처럼 보는 것 같아 퍽 애잔했다.
인간 사회에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현재진행형이지만 값싼 인력으로 보상을 받지 못한 노동자를 위해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생겼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법률적 도덕적으로 견고해지고 있다. 동물들이 그 단계까지 가기 까지 무수한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또한 지도자의 독점과 정보의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장치로 보인다.
또한 본인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지도자의 존재는 소수의 기득권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물들 초심을 잃었고 동물농장의 처음 취지는 색이 바랬다. 복서의 최후는 남아있는 동물들의 미래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도 본인의 이득을 위해 주변을 희생시키고 악용하는 모습에 나 스스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타인을 바라볼 안목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또한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숭고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것도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그 노고를 같이 겪고 인정했을때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무작정 노력한다고 해서 인정받을 순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올바른 조직과 권력을 견제하며 부가 편중되지 않도록 잘 통솔 할 수 있는 지도자와 노동자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기업안에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이윤을 내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보호와 고용주간의 관계를 돌이켜보고, 현재의 노동법적인 체계에서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 그리고 올바른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