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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수업

[도서] 결정 수업

조셉 비카르트 저/황성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선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인 ‘도’와 같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이최선을 향한 도를 마아트maat라 불렀다. 마아트는 진리, 정의, 조화, 균형, 우주의 원칙 등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이는 중국의 중용中庸 개념과도 유사하다. 마아트는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할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뜻한다.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 성서에 등장하는 신의 첫 질문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바로 마아트에 관한 것이다.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 그 자체가 바로 정답이다. 신이 아담에게 한 질문은 오늘날 삶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다. 질문은 이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지방이며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게 해 주는 안내자다.”-『신의 위대한 질문』

결정수업에서 이 질문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 자체가 바로 결정과 선택의 연속이기에 이 책은 ‘결정수업’이자 ‘인생수업’이라 해도 될 것이다. 결정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자기를 발견해 가는 여행임을 저자는 고고학, 성서, 또는 캐리커처에 비유하여 우리를 안내한다. 온갖 학문의 영역을 넘나들며 설명하고 근거가 풍부하여 저자의 주장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신의 최초의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 에서 신은 아담의 본성을 묻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물어봐야 하는 본질적 질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는 명령은 곧 네 자신을 향해 가라는 의미이며, ‘가라’는 궁극적 목적, 영혼의 본질, 우리가 창조된 이유를 향해 움직이라는 의미다.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행위는 우리를 우리자신과 진정한 본질, 다른 궁극의 목적으로 데려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성장하려면 에덴동산에 있던 우리를 죽여야 하든가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 에덴 동산을 없애야 한다. 안전지대에서, 에덴동산에서 떠나야, 움직여야, 뭔가를 결정하고 선택해서 행동해야만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떠나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결정이고 선택이다. 결정은 칼이자 숫돌이며 의사결정을 예리하게 만든다. 잘라냄은 자기라는 신비경험이다. 결정의 라틴어 어원은 잘라냄 이고 잘라냄은 정체성 형성이다. 마치 캐리커처처럼.

진실한 자신에게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알고 그 이유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자기실현으로 가는 길은 우리를 뿌리깊은 불안에서 탈출하게 해 준다. 우리는 가짜 자기의 매력에 쉽게 빠지는데 가짜의 매력에 지불하는 대가는 자기유리이고 거기에는 해로운 결과가 뒤따른다. 자기유리는 자기가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으로서 자기를 찾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자기를 경험하려면 자기의 본성을 경험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를 끌어내기 위해 반드시 어떤 일을 시도해야 한다. 멀리서 자기 주변을 맴돌다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경험은 정체성 형성이며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더욱 알아가기 위한 길이다. 경험만이 결정을 내릴 때마다 우리가 올바른 길에 있는지를 확인해 준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할 때 우리는 최고의 결정을 할 수 있다. 의사결정을 시작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문을 열고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길로 가야 한다. 그곳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삶 자체가 경험이고 결정은 경험의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삶은 결정과 선택의 연속이며 경험과 결정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니 삶, 경험, 결정, 정체성은 경계 없이 서로 이어져 있다.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하는 작업은 바로 결정의 과정이고 살아있는 한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하며 그 작업은 괴롭고 힘들 수 있으나 결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니 결정 앞에서는 뒤로 미루거나 물러서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야 할 일이다.

나도 한때는 ‘한 우유부단’했다. 이제는 ‘애정녀’ 쯤으로 불러도 될지? 그 과정만큼 성장해 온 것 같다. 최초의 결정장애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경험했다. 소풍을 갈 때마다 엄마와 함께 과자를 사러 갔는데 이제는 6학년이 되었으니 혼자서 사라는 것이었다. 호기롭게 읍내에 있는 마켓에 가서 과자를 사려는 순간, 수 많은 과자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저걸 고르면 엄마가 뭐라고 할지, 잘 못 샀다고 핀잔주지는 않을지, 작년에 샀던 과자는 뭐였는지 도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내가 먹을 과자인데도 나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엄마의 기준에 맞을듯한 과자를 주섬주섬 주워담았다. 아마도 내가 나로부터 유리된, 나의 결정의 흑 역사가 시작된 것은 여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면 나로부터 유리된 나 자신을 찾기 시작한 출발점 이었을지도.

가장 어려운 선택 중 하나가 배우자 선택일 텐데 너무 어려워서 차라리 시험을 봐서 정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적도 있다. 그 외에도 산에 갈까 집에서 책 읽을까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산에도 가보고 집에도 있어 봤지만 산에 가면 집 생각 나고 집에 있으면 산 생각이 나서 아예 산에 가서 책 읽기를 선택한다거나, 사고 싶은 옷이 여러 벌일 때는 다 사버리는 등 선택대신 돈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한달 여 간의 아프리카여행을 결정할 때에는 가지 못하는 이유부터 찾아 보니 못 갈 이유가 하나도 없어서 가기로 결정 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옵션은 무조건 선택하여 고민을 원천 차단했다. 좀 더 어려운 결정은 켄 윌버의 사분면, 데카르트 질문법 등도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내 몸이 원하는 바 대로 결정하거나 주로 직관적으로 결정하는 편이다. 심지어 주식마저도. 사소한 것,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빨리 결정하고, 일단 결정하고 나서 생각하는 편이다. 스스로 한 결정에 대해서는 남 탓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결과를 수용한다. 설사 잘못된 결정으로 판명되더라도 경험에 대한 수업료라는 생각으로 임하니 결정이 두렵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오히려 결정권이 없는 상태가 더 힘들지 않을까? 한때는 누군가가 결정해 주기를 바라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대부분의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안다. 나의 삶 앞에 놓여있던 그 수많은 결정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이루었으니 결정은 축복이자 감사다. 다만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이 책을 통해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더욱 나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다. 오늘도 뭔가를 결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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