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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도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공저/이민아 역/박한선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 適者生存(Survival of the Fittest)이 아닌 親子生存(Survival of the Friendliest)

 

언제부턴가 ‘적자’라는 개념이 ‘신체적 적자’와 동의어가 되어 덩치가 클수록 더 싸우려 들며,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고, 최상의 먹이를 독차지 할 수 있고, 가장 많은 후손을 낳을 수 있다고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다윈은 『종의 기원』을 비롯한 그의 책에서 생존투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가 되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했고, 적자생존도 자연선택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소개했지만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에 가두었다. 이 책은 적자생존이 아닌 다정함(친화력과 협력적 관계)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전략이 되었는지를 다양한 실험과 예시 및 가설을 통해 설명한다. 다른 한편으론 다정함의 이면도 밝히는데 우리의 친구가 아닌 이들에게는 잔인해 지는 이중적 본성을 파헤침으로써 전 세계의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적, 정치적 양극화를 해결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 친화력이란?

 

고대 네안데르탈인은 겨우 10명정도 무리를 지을 수 있었던 반면, 호모 사피엔스들은 100명을 넘는 대규모 집단을 이룰 수 있었다. 인구가 증가한 호모 사피엔스는 네트워킹의 결과 기술도 고도화 되어 생존한 반면 그렇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초 강력 인지능력, 즉 협력적 의사소통능력인 친화력이다.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걸쳐 물려줄 수 있게 해준다. 진화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중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반면,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한다(타인의 비인간화).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다정한 한마디 말이 적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1) 자기가축화 가설

 

이런 양면성을 가진 친화력은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진화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축화란 ‘인간의 쓸모를 위해 야생의 식물이나 동물을 적응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람은 생후 9개월쯤 되면 손짓을 시작한다. 손짓은 심리학에서 마음이론이라고 부르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우리에게는 마음이론 능력이 있어서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타인과 협력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늑대는 멸종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지만 개는 우리의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다. 이는 개가 친화력, 자기가축화, 손짓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친화적인 동물이 더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일 때 가축화가 발생한다. 벨랴예프의 여우실험은 개에게서 관찰한 협력적 의사소통기술이 가축화의 산물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친화력의 상승은 모든 가축화된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질이기도 하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맞춤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눈은 협력적 의사소통에 이바지 하도록 설계되었다. 낯선 이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계속해서 향상되었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 종이 지닌 최고의 미덕과 강점을 잘 설명해 준다. 우리에게는 연민과 공감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 이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모두 동일한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종임을 설명해 준다.

2) 사회심리학: 편견, 순응욕구, 권위에 대한 복종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끔직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출범한 학문이 사회심리학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설명해 주는 주된 심리요소로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3가지 중심요인이 도출 되었는데, 바로 편견, 순응욕구,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이론에서 편견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어 완고하게 지속되는 것으로서 어린이는 부모와 집안 사람들의 편견에 노출되어 성장하고 가족 집단에 대한 동질성이 강화되면서 다른 집단에 대한 반감이 발달한다고 한다. 편견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의 근본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집단 압력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솔로몬 아시는 순응욕구를 추가했는데 그는 동조실험으로 유명하다. 다음으로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복종하려는 욕구의 한계를 시험하는 밀그램 실험으로 이어진다. 벤듀라는 비인간화가 인간의 잔인성을 설명해주는 중심요소라고 결론 내렸다. 외부인을 비인간화 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

 

3) 뉴스와 공감

 

이 책은 우리가 본성인 선함을 믿고, 예외적인 사건을 과장하는 뉴스에 휘둘리지 않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실천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인류가 된다고 주장하는 책, 『휴먼카인드』와 여러 면에서 맞닿아 있다. 공감에 반대하는 심리학자 폴 블룸은 “공감은 세상을 비추는 선한 태양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 즉 집중조명이다. 그것은 당신의 삶에서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을 골라내고, 당신이 그 한줄기 빛에 가득 담긴 감정을 모두 빨아 들이느라 바쁜 동안, 나머지 세상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피해자와 더 많이 동일시 할수록 적에 대해 더 일반화하기 때문에 공감은 우리로 하여금 덜 용서하게 한다. 공감이 특정 항목을 확대해 우리를 오도하는 것처럼 뉴스도 예외 항목을 확대해 우리를 속인다. 이것은 브라이언 헤어가 언급했듯이 우리를 지구상에서 가장 친절하면서도 잔인한 종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으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

 

□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위한 저자의 주장

 

저자는 타인의 비인간화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공동체적 공간 설계와 다양성을 주장한다. 지금의 도시의 모습은 사람들의 접촉을 막게 설계되었다. 몇 년을 같은 층에 살면서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이웃을 만드는 고층 건물, 사람들이 오가며 일상을 만들어 내는 길이 없어진 도시, 네모 반듯한 대형 체인점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만 즐비한 도로, 철통 같은 입구와 담장으로 동네에 머물거나 돌아다니는 것을 가로막는 동네, 고속도로가 동네를 통과해서 건널목이나 녹지가 없는 풍경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도시의 모습은 다양한 국가와 민족, 인종, 성 정체성이 섞인 활기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다. 즉, 도시는 서로 다른 배경과 다양한 관점 및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자유롭게 섞여 생각을 교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다양성이 사람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시키며, 혁신과 경제적 성장을 이끌고 사회의 관용을 강화시킨다. 우리는 큰 규모의 집단 안에서 협력하여 살아갈 때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이 된다. 우리는 출신이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할 때 가장 핵심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저자는 자기가축화 가설은 단순히 또 하나의 창조론이라기 보다는 우리와 다른 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우리 종의 경향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진정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의 주 적은 늑대가 아니라 인간이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10명의 사람이 늑대에게 물려 죽는데, 살인사건은 매년 40만건에 달한다. 이런 비극의 이면에 자기가축화가 자리잡고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 때문에 많이 죽기도 한다. 가족과 친구, 부족을 향한 편협한 다정함이, 더 넓은 집단을 향한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떠오르는 생각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풍이 아닌 뜨거운 태양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힘, 폭력, 강함 보다는 부드러움, 친절성, 다정한 것이 결과를 만든다(원하는 것을 얻게 한다)는 생각. 극과 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다정함 vs 잔인성), 마틴 부버의 『나와 너』개념,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 코칭 철학, 낯선 자를 환대하라는 성서의 말씀 등등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개념은 ‘외부인(타자)의 비인간화’라고 생각한다. 외부인을 비인간화 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편협한 다정함에서, 더 넓은 집단을 향한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하기 위한 우리의 해법은 무엇일까?

우선 철학자 마틴 부버는 우리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말해주는 ‘나-그것’에서 ‘나-너’로의 이동을 이야기 한다. 내가 ‘그것’으로, 즉 처리대상, 역할로 대접받는지 초점과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온전한 존재로 대접받는지는 사람들이 즉시 알아차린다. 타인을 존재가 아닌 대상으로 여길 때 타자의 비인간화가 일어나며 관계는 멀어진다.

코칭 철학에서 우리는 인간을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로 본다. 상대를 존재로 대할 때는 그 자체로 온전하지만, 대상으로 대할 때는 뭔가 수정할 것이 있는 불완전한 역할, 그것, 이슈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레비나스는 『타자의 윤리학』에서 내 동일성에 집착하고 고집하기 보다는 타자 앞에서 내 동일성을 무너뜨려야만 윤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레비나스는 환대(hospitality)란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환대란 나의 집에 타자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성서에서는 낯선 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 지극히 작은 자를 환대하라고 말한다. 99세 노인 아브라함은 사막 한 가운데서 자신을 헤칠지도 모르는 낯선 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달려간다. 신은 때때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낯선 자’ 일 수도 있다. 우리가 낯선 자를 그냥 지나치거나 아무런 감정 없이 대하면 말 그대로 낯선 자가 되지만 우리가 그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대접하면 그는 우리에게 신이 될 수도 있다.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그러므로 낯선 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신을 대접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타인이다. 온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나의 확장으로서의 타자를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방인, 나그네, 난민, 낯선 자에게 우리 종이 지닌 최고의 미덕과 강점인 연민과 공감, 친절을 베푸는 능력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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