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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도서]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김인순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파우스트>는 중학 시절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만난 괴테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번에 <파우스트>를 읽게 된 계기는 <융의 분석심리학과 신화>(융학파의 신화와 문학 비평에서 원형에 대하여)에서 언급한 영원한 여성성 그레트헨의 이미지가 궁금해서다. 지난 번 읽은 <마담 보바리> (마담 보바리 -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다!)처럼 아니마에 대한 융학파의 설명은 문학작품을 직접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막상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영원한 여성성이라는 그레트헨의 이미지는 한없이 무력하게 희생되는 앳된 소녀의 이미지다. 왜 어린 여성이 희생되는가는 가부장제 사회 이래로 이어져온 남성중심 사회의 과제다.

 

 사실 몇 달 전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스케일과 깊이에 압도돼 리뷰는 커녕 독후감조차 쓸 수 없었다. 다만 괴테가 20대부터 80대까지 60년에 걸쳐 쓴 작품이란 사실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옮긴이의 말대로 평생 곁에 두고 다시 읽으며 의미와 상징을 찾고 음미할 만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골방에서 진리를 추구하던 학자가 절망에 빠져 사탄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세상에 나와 사랑과 모험을 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이미 보통 일이 아니다. 정신의 빛과 그림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부침이 기약된 일이 아닌가. 그 후 <로쟈의 세계 문학 다시 읽기>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세계문학을 다시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책)를 읽고 파우스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뒤에 실린 역자 해설에 의하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역사적인 전설에서 비롯한 문학 전통을 가지고 있다. 파우스트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1480년경부터 1540년경까지 독일에 생존했던 실제 인물로 전해진다. 이름은 요한 파우스트, 또는 게오르크 파우스트다. "파우스는 '행복한 사람'이나 '행운아'란 뜻의 라틴어 '파우스투스Faustus'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파우스트의 실제 삶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평생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치료사, 연금술사, 마법사, 예언자, 사이비 학자로 명성을 누렸다고 알려져 있다. 스스로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한다. 술집에서 술통을 타고 날거나 호메로스의 등장인물을 불러내는 등 많은 기행을 부렸다고 전해지는데 이미 살아있을 때부터 전설적인 인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실험 도중 폭발 사고로 인해 흉측한 몰골로 죽은 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자극한 인물이다. 당시 사람들은 파우스트의 이런 죽음을 두고 사탄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많은 전설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이러한 전설에다 몇몇 문학작품들과 희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괴테가 자신의 문학성을 가미해 완성한 희곡이다.

 

  <파우스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파우스트란 인물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다. 역자는 사탄과 계약을 맺는 이야기는 중세에 자주 등장한 모티프라고 하는데, "그가 발산하는 매력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엄격한 권위에 과감하게 대항해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살았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권위주의에 대항해 개인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파우스트형 인간은 성공을 추구하며 자기계발하는 오늘날의 인간형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자원개발로 인한 폐해와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자유를 생각해보면 파우스트 형 인간은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생각할 점이 많다.

 

  남성중심적이고 일방적인 모험과 성공을 추구하고 구원을 받는 이 작품을 읽고 찾아드는 질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이청준의 소설 <밀양>(밀양, 벌레 이야기- 인간의 용서와 신의 용서)에서 감옥에 간 살인범이 구원을 받고 피해자 가족이 고통 받는 현실을 떠올렸다. 개인의 자유만 해도 공동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다. 파우스트의 업적에서 대규모 개발로 인해 자연과 대중의 희생을 떠나  생각할 수 없고, 사랑하다 버림받은 여성과 그로 인해 버려지거나 학대당하는 아이의 문제는 지금도 뉴스에 오르는 단골 메뉴다. 페미니즘 문학 비평에서 말하기를 흔히 남성중심 문학에서 남성의 성공 뒤에 희생되는 여성이 있다고 하는데 <파우스트>도 예외가 아니다. 작품이 지닌 깊이와 풍부한 문학성으로 인해 거듭 읽고 생각하기를 촉구함과 동시에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에서 로쟈가 말하는 것처럼 세계 문학을 다시 읽고 고쳐 읽어야 할 필요성과 이유를 충분히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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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산바람

    <로자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가 새로운 시각에서 고전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데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파우스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 생각 됩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2019.06.29 21:1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고전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고쳐 읽지 않으면 맹목적인 우상숭배나 다름이 없을 것 같아요.
      [파우스트] 속에 숨겨진 상징과 통찰도 풍부하게 있지만 현대에 맞지 않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9.07.03 13:39
  • 스타블로거 초보

    다시 읽고 고쳐 읽어야 할 필요성은 비단 세계문학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파우스트]는 읽다가 관두기를 하도 여러번 한 책이라 그런면에서 친숙해진 이름입니다. ㅎ

    2019.06.30 08:4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맞아요. 파우스트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통과 고전은 다시 생각하고 현대에 맞게 고쳐나가는 성찰적 과정이 필요하더군요. [파우스트]는 나이들수록 깊이를 알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해요. 저는 연말쯤 다시 읽어보려고요. 초보 님도 다시 시도해보시길... ^^

      2019.07.03 13:43
  • 파워블로그 Kanon

    파우스트 정말 심오한 작품 같아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읽은 적이 오래되었는대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2019.07.01 18:2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학창시절 읽은 작품을 나이들고 다시 읽으니 더 깊은 맛이 우러나서 좋더라고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나이들도 다시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아름답고 슬퍼요. ^^

      2019.07.03 13:45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