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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머리 앤>의 속편들에는 앤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자전거는 어른으로 성장한 앤의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상징적인 장치다. 앤은 자신의 두 발로 씩씩하게 페달을 밟으며 원하는 곳으로 자유로이 옮겨 다닌다. 매슈가 몰고 노새가 끄는 마차에 '얹혀' 이동하던 열한 살짜리 어린아이의 모습과 지극히 대조된다.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자전거는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전거의 역사만 따져도 알 수 있다. 19세기 초반에 발명된 자전거는 오래도록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

 

  여성들을 억압하는 사회규범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

 

  변화가 찾아온 건 1880년대 들어서다. 1887년 영국에서 '안전자전거'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전거가 등장했다.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가 같고, 두 바퀴를 어어주는 체인도 갖춘 신상품이었다. 이때부터 말 그대로 '자전거 열풍'이 휘몰아쳤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1890년대는 자전거 열풍이 정점에 이른 시기로 꼽힌다. 문학작품을 비롯해 음악, 만화, 그림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자전거는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

 

 사실상 '금녀의 영역'이었던 자전거가 여성들에게 문호를 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1897년 미국 자전거협회에 등록된 여성회원 수는 순식간에 2만 2000명으로 불어났다. 자전거를 타는 여성을 가리켜 '신여성'이라 부르는 풍조도 유행했다. 자연스레 자전거는 여성운동을 더욱 확산시키는 촉매제 노릇을 했다. 여성을 옥죄는 사회규범을 몰아내고 전통적인 복장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남성(마차)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이동의 제약을 이겨내는 여성의 이미지와 자전거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두 다리로, 두 바퀴로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는 남녀평등의 알레고리였다. 앤의 시대, 몽고메리의 시대가 그랬다.

 

 

 

동화경제사

최우성 저
인물과사상사 | 2018년 02월

202-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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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날이

    저도 자전거와 여성들의 삶의 상관관계를 그려놓고 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전거가 해방의 도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2019.12.17 09:4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얼마 전에 자전거와 여성에 관한 책이 나왔는데 그때 신청해 읽지 않은 게 후회돼요. 자전거가 여성들에게 손쉬운 이동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페미니즘에 기여했다니 재밌네요. ^^

      2019.12.17 11:21
  • 파워블로그 휘연

    오 새로운 관점이네요^^ 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그리 연관 될 수 있겠어요.

    2019.12.17 09:4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저는 [빨간 머리 앤]의 속편들을 읽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자전거가 앤과 여성해방의 도구였군요. 차아 읽어봐야겠어요. ^^

      2019.12.17 11:22
  • 파워블로그 모모

    언뜻 만화의 한 장면인데요 여주인공은 아니고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한 여성이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었죠. 현대가 아니었던 배경인데 어느 만화인지..하여튼, 그 장면을 보고 자전거는 여성이 탈 수 없는 거였구나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2019.12.17 10:4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저도 오랜 전에 [퀴리 부인]을 읽어보니 긴 치마를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대목이 나와서 의외였어요. 아마 그때가 지금보다 자전거 열풍이 더 대단했던 때인 듯해요. 어느 만화에서도 나오는군요. 저도 궁금해져요...ㅎㅎ

      2019.12.17 11:24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