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나는 증언자들이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그들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나의 자기 중심적 기대였을 뿐 그들은 망각하고 회피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여기서 고통은 신체적 고통('아픔', pain)과 정신적 고통('괴로움', suffering)을 모두 의미한다. 근대 서구 철학에서 고통은 'pain'과 'suffering'으로 구분되었고, 의식 작용을 수반하는 정신적 괴로움이 몸의 고통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고통은 몸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서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들의 고통은 절대적인 고통이다. 몸에 가해지는 아픔의 느낌은 보편적이어서, 우리가 흔히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로할 때 쓰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든가 '네가 강하면 이겨낼 수 있다' 따위의 고통을 상대화하는 언어는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 무기력하며 때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기억의 재생은 피해 당시만큼이나 혹은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대개 여성 폭력의 피해자들은 고통의 치유와 극복을 사건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回復, recovery)으로 생각한다. 즉 고통의 기억을 지워버림으로써 '없었던 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폭력을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몸은 이를 불가능하게 한다. 상처의 치유는 문제를 덮어 둠(re-cover)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들춰내어(dis-cover)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재발견(discover)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건을 잊어라' 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한 치유 방법을 주문하는 것일 뿐이다. 실제적인 상처의 치유는 폭력당한 경험을 잊으려는 노력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때 가능하며, 이때 그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survivor)가 된다.

 물론 모든 여성 폭력의 희생자가 저절로 생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 폭력은 분명 정치적 사건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개인의) 상처가 (정치적)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투쟁이 매개되어야 한다. 고통을 겪었다고 누구나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듯 희생자가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는 치열하고 고통스런 자기 극복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여성주의 연구 과정의 의미는, 이 과정에 연구자가 동참하여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자기 위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일 터이다.

 

55-56p

아주 친밀한 폭력

정희진 저
교양인 | 2016년 10월

 

 


http://www.yes24.com/Product/goods/33094329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