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제7의 인간

[도서] 제7의 인간

존 버거,장 모르 저/차미례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네가 이 세상에 나서려거든

일곱 번 태어나는 것이 나으리라

한 번은, 불타는 집 안에서

한 번은, 얼어붙은 홍수 속에서

한 번은, 거칠은 미치광이 수용소에서

한 번은, 무르익은 밀밭에서

한 번은, 텅 빈 수도원에서

그리고 한 번은 돼지우리 속에서

여섯 아기들이 울어도 충분치 않아:

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

:

 

책은 위에 보이는 아틸라 요제프의 시 7의 인간으로 열린다. 시는 책에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는 인상을 준다.

 책의 내용은 출발, , 귀향의 3부로 구성되어있다. 이 구성이 책의 앞 부분에 목차로 제공되지 않는 점은 불편하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제7의 인간이란 1970년대-책에서 다루는 시점은 1974년 전후-에 독일 등과 같이 경제 사정이 나은 서유럽 국가로 유입되었다가 일정 기간 동안 노동을 제공하고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민노동자를 말한다. 독일에서는(그리고 영국에서는) 육체노동자 일곱 명 중 한 명은 이민노동자다(P. 12). 이민노동자들 중에는 터키 사람도 있고 포르투갈 사람도 있으며 아일랜드나 이탈리아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발생한 빈곤과 일자리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일자리를 찾는다. 주로 가족을 고향에 남겨두고 남성들이 이동한다. 때로는 합법적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법적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결코 그 사회의 inner circle로 들어갈 수 없으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또한 그들은 범죄자나 부랑자들이 아니며 생활을 영위하려는 생활인들이다.

 

자신의 고향에서는 어엿한 장인(匠人)이고 가장으로서의 위치에 있던 이들의 경력은, 타국에 들어오면 쓸모 없는 게 된다. 거의 모두 장기간의 숙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질 낮은 일자리-일종의 3D 업종 등-를 채우게 되고 낮은 임금을 받는다. 한 방에 여러 개의 침대와 작은 옷장들이 놓인 좁고 불편한 주거 환경을 견뎌야 한다. 느닷없는 실직의 두려움이 항상 존재하는 문제도 있다.

 - 근대적인 대량 생산은 거기 투입되는 노동력의 대부분이 미숙련 노동이라는 전제로 이루어진다. (P. 98)

 - 경제의 확대에 따라 이러한 미숙련 노동력은 점점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새로운 빌딩을 짓고 자동차 도로를 닦고 주물의 주형을 제작하고 도시의 청소를 하고 공장의 일관 라인에 인력을 채우고 광석을 채굴하고 상품을 나르고 싣고 유조 파이프를 매설하는 일들을 누가 다 할 것인가? (P. 133)

 그래도 벌이라는 측면에서는 고향에서 실직 상태로 있는 상황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서유럽에서 생활하려면 아무리 아껴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그 비용을 제하고도 고향의 가족에게 보낼 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여정의 끝에서 이민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고향에서 할 일이 부족한 상태이다. 그의 최종적 귀향의 2~3년 뒤에는 그나 가족 중의 다른 사람이 한번 더 외국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P. 238). 때로는 이들 자신이 시시포스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책은 존 버거가 쓴 글과 장 모르가 찍은 사진-사진의 일부는 스벤 블롬베리라는 이가 찍었다고 밝힘-으로 구성되어있다. 버거는 연속된 사진작품들이 본문의 글과 대등하거나 비견될 수는 있지만 분명 별개의 것(P. 6)이며 글과 사진 양쪽이 다 나름대로 따로 말하는 것으로 읽어야 하며 사진이 본문을 설명하기 위해서 쓰인 경우는 아주 이따금씩 밖에는 없다(P. 5)는 점을 밝힌다.

 이와 같은 설명에 기준해서 가급적 사진을 보지 않고 글 중심으로 한번 읽었고 글을 빼고 사진 중심으로도 책장을 넘겨봤다. 줄을 치거나 따로 표시해둔 글을 기준으로 글과 사진을 비교해보면서 읽기도 했다. 글과 사진이 별개의 작품이라고 해도 비교하면서 읽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이민노동자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반적인 사회현상을 개인의 체험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는 이 책에서, 사진과 글은 각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넘나드는 구성 방식을 통해 그 보완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글은 이미 사진을 설명하는 캡션에 그치지 않으며, 사진은 이미 글을 설명하는 삽화적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P. 250).

 버거의 글은 르포르타주이고 에세이이며 때로는 현대의 오뒷세이아가 된다. 그는 이민노동자들이 감당하는 고단한 현실과 삶의 무게를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그린다. 모르의 흑백사진-모두 흑백이다-은 이민노동자들의 소외되고 주눅든 모습을 절절하게 담고 있는데 보고 있노라면 연옥의 모습이 이렇지는 않을까 하는 심정이 된다. 컬러사진이라면 느낄 수 없었을 듯한 페이소스가 다가오고 이민노동자들의 쓸쓸함이 사진으로부터 전달된다.

 

최근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을 모욕하고 차별하는 글들을 여러 차례 봤다. 그 전에는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을 멸시하고 홀대하며 내 생활을 겁박하는 범죄자 부류로 취급하는 경우를 글과 실재를 통해 비일비재하게 목격했다. 세상에는 100%란 게 얼마나 될까? 그들 중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범죄는 어느 사회에서나 발생하는데 이들의 범죄가 기존 사회의 구성원들이 저지르는 것보다 많다는 증거는 없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생존을 위해 정당하게 분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 모두 결국 디아스포라의 입장에 있음을 알고 세상을 보듬어 안는 세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기실 범죄는 내 바로 옆에서 더 많이 벌어진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