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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도서]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벨 훅스 저/이순영/김고연주 해제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한국에서도 발간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잘 알려진 벨 훅스는 이 책에서 성차별의 근원이 되는 가부장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이를 넘어서기 위한 방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또 다른 유명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성을 다룬 책들이 안겨준 실망감과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페미니스트 정책을 옹호하는 여성들이 남성과 남성성에 대해 지금까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P.10). 훅스는 페미니스트 운동에 남성들이 깊숙이 참여해야만 성차별, 성착취, 성억압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책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성과 남성이 한데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다룬다.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은 이런 사고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음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페미니즘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일자리와 힘을 분배하는데까지는 물러섰지만-한국에서는 이 과정의 투쟁이 아직 진행 중이라고 보인다- 감정을 나누려 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일자리와 힘뿐만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 등의 감정까지 같이 나누는 상태가 되어야 페미니즘이 제대로 성공한다는 주장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에게 허용되는 단 하나의 감정은 분노인데 이 때문에 폭력이 유발되고 여성들의 두려움을 야기하는 등 여성과 남성 간에 존재하는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남성들은 분노를 통해 힘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훅스는 남성들도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라고 본다. 남성들이 태어났을 때에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상태이지만 성장 과정에서 이 상태는 억압 당하고 남성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 태도, 의식 구조 등을 강제 당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성들은 이미 만들어진 가부장 사회 구조에 순응하고 남성 중심 사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가부장 사회의 고착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본래의 감정, 느낌 등을 희생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일깨워서 가치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훅스의 주장이다.

 가부장 문화가 지속되는 이유는 이런 문화가 남성이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이들을 사회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화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지배자 모델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지배자 모델에 근거한 문화는 폭력화하고 모든 관계를 권력 투쟁으로 제시하는 문제점을 야기한다. 나는 어떤 문화를 이해할 때 권력 경영이라는 잣대를 자주 사용했는데 이조차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각 교정의 필요성을 느꼈다.

 훅스는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단호하게 나무라지만 그런 가부장제를 전복하라고 하지 않고 극복하라고 얘기한다. 가부장제의 희생양에는 여성들뿐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해당되므로 먼저 눈을 뜬 여성들이 남성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 그들이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탈피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적으로서의 남성이 아니라 동지로서의 남성을 강조하는 이 부분은 페미니즘의 모습에 따라 여러 가지 논쟁을 끌어낼 수 있는 지점으로 보인다.

 

이 외에 해리 포터에 숨겨진 남성우월주의, 인종차별의 냄새 등을 잘 발라내어 설명하거나 두 얼굴의 사나이 등의 영화에 내포된 폭력성-남자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든 물리적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을 가르쳤다고 평가한다- 등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점 등은 대중 문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차별하는 현 사회의 모습을 알게 하는데 꽤 효과가 있는 도구로 여겨진다.

 

이 다음에는 가부장제와 관련된 다른 책들을 더 읽어봐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훅스 외에도 가부장제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접해보고 내 자신의 관점을 정립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등을 우선 선정했다.

 

 

P.S.

책의 원제는 The willing to change이다. 한국어 제목과 느낌이 많이 다른데 길고 복잡하게 바뀐 한국어 제목 대신 원제를 한국어로 옮겨서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 낱말 willing에는 여성들의 포용만이 아니라 변화한 상태로 옮겨가려는 남성들의 적극적인 의지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읽히기 때문이다. (이 생각까지 해서 편집/구성의 평점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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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나

    사랑과 존중으로 성평등한 날이 빨리오길 희망합니다

    2018.11.05 21:3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나난

    굳이 남녀를 분간하지 않아도 자신이 할수 있는 능력껏 하면 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쉽지는 않은 일인듯 합니다. 제목에 대해서는 조금 공감합니다. 구태여 늘어놓지 않아도 원제가 말해주는 것이 많은데 말이죠.

    2018.11.06 14:57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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