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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

[도서]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

스티븐 그린블랫 저/정영목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아담과 이브, 이름에 얽힌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그 이름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구약성서의 첫 부분인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으로서 현재도 여러 영역에서 테제로 활용되는 이름들이니까. 그렇다면 창세기의 내용처럼 아담은 신이 흙으로 빚은 첫 남성이고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만든 첫 여성이 분명한가? 내 주변에는 인간은 이처럼 신이 만들었다고 철석같이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단 한 번 이루어진 창조의 결과물, 처음부터 우주의 주인이라는 운명을 타고난 결과물이 아니(p.357)라는 게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나는 오래 전에 종교를 내려놓은 비종교인이다. 그래도 교인이었을 때에는 교리나 성서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내가 성서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다면 모두 그 시절에 했던 공부의 영향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종교에 대한 열정이었다기보다 그런 종류의 지식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어느 정도 철이 들고 나서 성서 공부를 시작할 때 창세기 이해는 무척 어려웠다. 창세기 안에서도 같은 얘기를 다르게 하는 부분들이 보여서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공부를 해보니 한 사람이 쓴 게 아니라 전승되던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합쳐지는 과정에서 그런 점들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해주던 수녀님들 기억도 난다.

  나는 기록 속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 모순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창세기의 갖가지 내용이 알레고리라고 받아들였다. 창세기, 특히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건국 설화로서 단군신화 같은 수준의 얘기라고 이해했다. 그럴 듯하지만 따져서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등장했다. 유대 족속이 자신들이 선택 받은 민족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의 시조는 처음부터 신에 의해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등장했다고 주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가 자기 민족 내부에만 머물렀으면 별 게 아니었을 텐데 그리스도교가 성공하면서 설화를 진실로 만드느라 억지 주장을 편다는 이해도 따라 붙었다. 나름대로는 꽤 진지한 가톨릭교도였지만 창세기, 그 중에서도 아담과 이브의 모순투성이 이야기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 모순으로 가득 찬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을 괴롭히고 기록을 옹호하기 위한 온갖 억지를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을 분열시키기도 했다.

 

책의 처음은 어떻게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실제의 사건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는지, 짧지만 해석이 분분한 인간 창조와 낙원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에서 이해하는 바를 알려주고 초기 이해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그 부분을 그린블렛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진흙으로 빚은 인간은 콧구멍으로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니 살아 있는 피조물이 되었다. [성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이 신화적 장면에는 강력한 진실이 암호로 기록되어 있다. 아주 머나먼 과거의 어느 순간에 아담을 살아나게 한 것은 숨, 이야기하는 사람의 숨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p.31) 이제 책은 시간의 오름차순으로 역사 속에서 불붙었던 아담과 이브 이해를 다루기 시작한다.

  2장은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5경이 언제, 왜 형성되었는지 역사의 한 면을 살펴본다. 유대민족이 겪은 바빌론 유수라는 재난이 그 촉진제가 된다. 바빌론에서도 일부 그랬지만 바빌로니아 제국의 멸망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타 부족의 신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일종의 권력 투쟁처럼 자신들의 부족 신인 야훼책에서는 계속 여호와라고 표기하지만 나는 야훼라는 표기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를 내세우는 예언자들은 타 부족의 신을 내치는 싸움을 전개한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모세5경이라고 학자들은 동의한다. 내 얘기를 할 때 나온 여러 전승, J, E, D, P라는 네 가지 가닥이 모세5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모세라는 단일 저자의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를 처음 듣는 이들도 많으리라 여긴다.

  3장과 4장은 초기 기록의 형성을 보여준다. 점토판으로 남은 길가메시 서사시의 발굴 과정과 그 서사시와 창세기의 핵심적 차이를 설명하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어떻게 바빌론의 길가메시 이야기를 전복하는지 밝힌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요약해서 읽는 재미가 상당하며 사상 전쟁으로서 기록을 이용하는 유대민족의 모습은 긍정과 부정의 두 측면 모두에서 경이롭다. 4장에서 다루는 아담과 이브의 삶이란 책은 처음 접한 정보이다. 창세기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 담긴 이 책은 아담과 이브를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했던 누군가의 이야기이며 또 다른 해석 논쟁을 낳은 저작물이다. (한글판이 있다면 당장 구해보고 싶은데 책 제목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5장에서 드디어 아우구스티누스가 등장한다. 우리 세계에서 아담과 이브가 독특하게 중심적 역할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의 발군의 노력 때문이다(p.123). 5장은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인물이 형성되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고백록을 잘 요약해서 우리 앞에 맛깔스럽게 차려낸 인상을 받게 된다. 6장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그리스도교 교리를 세우는 모습이 나온다. 나는 날 때부터 죄의 덩어리야 라는 이상한 의식을 안게 하는 그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비롯되었다.

  7장은 이브를 폄하하고 멸시한 사실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원죄 의식보다 더 깊은 곳에 여성을 옭아매려는 획책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8장은 아담과 이브를 그림이나 조각, 부조 등으로 표현한 바들을 다룬다. 특히 1504년 알브레히트 뒤러가 수행한 아담과 이브의 이미지화 작업이 미친 영향은 알지 못하던 내용이라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뒤러 이전의 형상화 작품 얘기도 재미있다. 뒤러 이후의 내용은 크게 취급하지 않는다.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책 가운데에 별도의 페이지로 묶어서 보여주는데 책 내용에 바로 이어서 확인하지 못하고 뒤져가면서 확인해야 하는 점은 불편하다. (시간을 들여서 확인해야 하는데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책에서 설명하는 작품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편집/구성의 평점을 만점으로 주지 못한 사유다.

  9장에서부터 11장까지는 존 밀턴과 그의 작품 실낙원이 등장한다. 뒤러의 작업이 아담과 이브의 이미지에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여를 했다면, 그들의 이야기에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여를 한 것은 그로부터 거의 200년 뒤에 영국의 작가 존 밀턴이 한 작업이었다(p.202). 밀턴의 굴곡 많은 삶도 흥미진진하고 실낙원의 내용도 스펙터클하다. 실낙원을 통해 사람들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생활에 내재화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1천년이 지난 뒤에 아담과 이브는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p.280). 결국 아담과 이브에 얽힌 이야기는 그 모호함과 불확실함에 따라 계속 논쟁거리였으며 밀턴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정돈된 형태로 자리잡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12장은 창세기 내용 중 문제가 되는 사항을 거론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후 쫓겨나서는 결혼한 내용이다.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인간이라면서? 성서 공부를 할 때 나는 궁금하고 가르치는 이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부분 중 하나였다. 이제 책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진화론을 펼칠 준비를 한다.

  에필로그 이전의 마지막 장인 13장은 진화론의 도입과 아담과 이브의 몰락을 언급한다. 아담과 이브의 몰락은적어도 과학 공동체 거의 전체에는인간 기원에 대한 개념이 다른 쪽으로 변한다는 신호였다. 이 개념은 창세기의 인물들에게 현실적인 인간의 생생함을 부여하는 집단적 기획에 기초를 둔 사고 구조 전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p.339) 이제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진화론은 아담과 이브처럼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했음을 부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로서의 아담과 이브는 여전히 재생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책의 내용은 책을 받기 전에 기대했던 바와는 다소 달랐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어 제목을 대하고는 종교 영역에서의 아담과 이브에 대한 이해의 변천 과정, 회화나 문학 등 예술 부문에서의 해석의 변화, 에덴동산의 실제 위치를 찾기 위한 일련의 활동 등이 다루어졌기를 기대했고 구약성서의 기록을 벗어난 각종의 전승을 정리된 형태로 볼 수 있으리라 희망했으며 현대에서의 해석 논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다. 기대했던 바가 많이 보였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몇몇 기대는 충족되지 않아서 아쉽다. 특히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진화론에 맞서 아담과 이브를 어떻게 해석하고 옹호하는지 그들의 대응 논리의 변화 과정을 보고 싶었는데 이런 내용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상세할 수는 없을까 하는 욕심이 드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내 지나친(?) 기대감을 제외한다면 책은 방대한 지식과 근거를 바탕으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뛰어난 저작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원제가 The Rise and Fall of Adam & Eve인데 결과로서의 추락은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다. 워낙 모순이 많아서 과학이라는 엄정한 도구가 도입되는 순간 무너지도록 예정되었던 바라고 본다. 여전히 신이 아담의 코에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인간이 시작되었다는 믿음을 갖는 이들에게는 불편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에필로그에 나오는 침팬지 무리의 이야기가 와 닿는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는 어떤 상태였을까? 그들의 뇌 상태가 악의 없는 침팬지 무리와 달랐을까? 에덴동산으로 돌아간다면 행복해질까? 다른 걸 다 떠나서라도 이 에필로그가 주는 메시지를 잡을 필요는 있겠다.

 

처음에는 빠져들다가 중간에는 잠시 허우적대었다. 그만큼 이해할 것도 많았고 다시 돌아보고 찾아볼 것도 많았다. 창세기를 다시 읽고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어떻게 아담과 이브를 해석하려고 했었는지 더듬어도 봤다. 이제 오래 미루어두었던 실낙원 읽기를 시도할 때가 된 듯하다. (한국어 번역본은 모조리 하나님이라고 표기하고 있어서 정말 읽기가 싫었다. 표준어가 아니므로.)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 더 밝게 하고 사람을 조금 더 폭 넓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그리고 뇌세포가 마구 활성화되는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될 책으로 추천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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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음 고독한 선택님의 추천때문인 지 뇌세포가 마무마구 활성화되는 느낌을 받고는 싶은데 먼저 더 건조한 책읽기를 많이 하고 난 다음 시도해봐야겠어요, 지난번 서평단 당첨된 칸트 관련 책도 읽기에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저 또한 기독교인이다 교회내에서 이뤄지는 돈의 많고 적음에 따른 차별이 싫어져서 신을 믿지 않게 되었지만 이런 논쟁에는 항상 관심이 갑니다 어쨌든 지금 신을 믿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을 어여삐 여길 그런 구원자를 말이죠!!

    2019.07.22 10: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으니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한번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2019.07.26 00:09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