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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들의 당나귀 귀

[도서] 을들의 당나귀 귀

한국여성노동자회,손희정 기획/손희정,최지은,허윤,심혜경,오수경,오혜진,김주희,조혜영,최태섭 공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 리뷰의 제목으로 사용한 책의 부제처럼 책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중문화를 다루고 있다. 원래는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여성 노동을 주제로 기획한 팟 캐스트의 한 부분으로 대중문화와 젠더를 다루었고 책은 이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하여 담았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남자들은 넘쳐나고 여자들은 사라지는 세계]는 남성 중심의 서사가 이루어지는 한국 예능의 현 주소책에는 2018년까지의 상황이 나온다를 점검하고 2[여성들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상품이 되는가]는 대중문화와 여성 노동 간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마지막 3[재현하는 여성, 재현된 여성]은 영화에서의 여성 재현과 여성 혐오 문제를 살펴본다.

3부는 다시 11가지의 이야기로 나뉘는데 각 이야기의 맨 처음에는 QR코드가 붙어있어서 이를 통해 해당 팟 캐스트를 들을 수 있다. (웬만하면 들어보기 바란다. 소리로 전달받는 정보의 쾌감이 괘안하다.) 또한 이 이야기들에는 해당 분야의 여성 전문가가 같이 출연해서 깊이를 더한다. 11가지 이야기는 모두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속 시원히 파헤쳐 줄 평범한 여성 노동자들의 비범함 이야기 <을들의 당나귀 귀>!! 오늘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시작한다. 팟 캐스트의 Target Market이 여성 노동자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이 팟 캐스트의 다른 내용은 모르겠지만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여성이 아니라도 그리고 노동자가 아니라도 공감하고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는, 보편의 이야기이다.

 

  1부는 총 4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송의 남성 편중화가 얼마나 심한지, 그런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남성 간의 연대와 방송 전술을 파헤치며 그런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여성 방송인과 대중 간의 관계를 다룬다.

  지금 당장 TV를 켜고 보면 알겠지만 한국의 예능은 거의 남성의 판이다. 출연자 중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되던가? 방송에서 자리 잡은 중견의 남성들은 유라인이니 강라인이니 하는 라인을 만들어 자신이 주가 되는 방송에 자기 라인의 사람을 꽂아 넣는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한다. 그러면서 남성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여성의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든다. 그나마 그런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들 옆에 겨우 자리 하나 만들어 여성을 마지못해 끼워주는 행태를 보인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방송 제작자들의 부족한 젠더 의식도 크게 기여한다. 각종 방송은 남성에게 딸바보라는 이미지를 부여해서 가정에 헌신하고 젠더 의식도 강한 아버지 상을 만들려고도 한다지금도 슈돌이가 돌아왔다 같은 프로그램은 그런 상을 만들려 하기 때문에 현재형을 쓴다. 그런 이미지를 부여 받은 중년의 남성 중 성추행범임이 밝혀져 그 직을 못하게 된 경우가 있음을 돌아본다.

  뒷부분도 마찬가지이지만 해당 주제 별로 문제가 되는 점을 차분하고 쉽게 설명하며 현재의 상황을 알리는 분석이 시원시원하고 분명해서 전하려는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송은이, 김숙 등을 비롯한 여성 방송인들이 대중 간의 소통을 통해 자리를 잡고 다른 여성들에게도 기회를 확장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다가올 성평등한 방송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2부는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상품화되어 힘든 노동조건에 내몰리는 여성 아이돌의 상황을 짚어보면서 여성들에게 더 가혹한 현실을 짚어본다. 그리고 드라마 안에서 어떻게 여성의 노동과 노동하는 여성을 재현하는지 살펴보며 가부장제의 관념이 드라마로 발현되는지 밝힌다.

  이제 다루는 바가 방송 영역을 넘어간다. 조선희의 <세 여자>와 루스 배러클러프의 <여공문학>을 통해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 그 의미가 흐린 혁명하는 여성, 노동하는 여성의 가치를 퍼 올린다. 주류 문학이 배제했던 여성의 의미가 여성에 의해 되살아남을 볼 수 있다. 물론 묻혀버린 인물로서의 여성과 그들이 살아낸 역사가 계속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작업은 연속해서 일어나야 할 테다.

  책 중에서 가장 놀랍고 가슴 아프게 읽은 부분은 2부의 마지막 내용인 신용 사회와 금융, 그리고 성매매였다. 성매매 여성들의 성형 대출과 부채 문제를 다루는데 소위 신용사회가 성매매 산업과 결탁해서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는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국, 특히 강남의 성형산업이 성매매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며 그 여성들이 부채의 늪에 빠지도록 하는 주 요인이라고 한다. 이 굴레에 들어간 여성이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그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짜진 구조를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남는다.

 * 조금 다른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요 며칠 사이에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AOA의 퀸덤 무대를 링크한다. 나중에 나오는 남성 댄서들의 춤은 보깅 댄스이다. 어떤 이는 남성과 여성을 뒤집어놓은 것 말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도 하던데 저 춤은 남성 비하를 하거나 성전복만을 강조하기 위한 게 아니라 성소수자들이 추던 춤을 넣어서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가사의 내용도, performance의 내용도 그들을 가로막던 벽을 넘어선, 오래 남을 공연이 될 듯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n-w_ski7mt0

 

 3부에서는 최근을 기준으로 영화에서 여성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할리우드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나누어서 살펴본다. 아울러 디지털 영역에서 구현되는 마초적 남성성과 여성 혐오를 다룸으로써 혐오가 어떻게 확산되는지 알려준다.

  먼저 영화 <원더우먼>이 갖는 의미를 들여다보는데 원작이나 주연 배우가 지닌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영화로 부상하게 된 가치를 강조한다. 영화를 볼 때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을 꼼꼼하게 짚으면서 원작과의 차이, 세부 장면들의 의미를 알려주어서 영화를 읽는 수준을 높여준다. 한국 영화로는 <아가씨><비밀은 없다>가 나오는데 <아가씨>라는 작품과 박찬욱 감독의 한계와 변화 방향을 볼 수 있고 <비밀은 없다>가 주려는 메시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나로서는 비밀은 없다가 흥행에 실패한 게 매우 아쉽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에 반영하려고 했던 페미니즘 요소가 팟 캐스트의 여성 출연자에 의해 한계가 밝혀지는 부분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게임, 포르노, 인터넷 커뮤니티의 디지털 남성성이다. 디지털 상의 마초 문화를 다루며 청년 남성들의 디지털 여가 문화에서 여성 혐오가 왜 그토록 심한지 돌아본다. 인터넷 상에서 청년 남성들의 광기에 가까운 여성 혐오를 대할 때마다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혐오를 이해한다는 게 아니라 혐오가 생긴 배경을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책은 예능, 드라마, , 영화 등 접근하기 쉬운 대중문화를 분석과 설명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문제점을 이해하기 쉽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대중문화에 접근할 필요성을 인지할 수 있다. ‘왜 페미니즘인가하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페미니즘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

  이미 인지하고 있던 바도 있지만 전혀 생각지 못했던 영역에서의 성차별과 착취, 억압에 대해 눈길을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깊이 있는 설명이 가득하고 가독성까지 높은 책으로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w_ski7m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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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찻잎향기

    을들의 당나귀 귀~~ 제목의 은유가 돋보이네요. 글에서는 어떤 내용을 풍자하고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2019.09.18 13:4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풍자는 별로 없는데 현실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과 설명이 돋보입니다.

      2019.09.19 06:51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여성임에도 페미니스트는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항상 미안한 맘이 들어요 저도 요즘 장안의 화제인 AOA의 공연을 봤어요 옷만 바꿔입은 것 아냐하고 심드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될일이네요 깨어있는 남성분들이 더 열렬하게 환영하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2019.09.20 18:3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현 사회 구조의 불합리에 대해 자꾸 생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계셔서 저도 도움을 받습니다.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여 그 내용을 들을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2019.09.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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