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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페미니즘 선언

[도서] 99%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친지아 아루짜,티티 바타차리야 저/박지니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 책은 제목이 드러내듯 선언문이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처럼. 무언가를 상세히 설명하는 이론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으며물론 책의 행간을 읽으면 저자들이 이해하는 관점의 페미니즘이 눈에 들어온다앞으로의 페미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밝힌다.

 

책은 11개의 테제, 즉 주제를 선언적으로 제시하고 각각의 테제를 왜 선정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11개의 테제는 다음과 같은데 이 테제들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선언문이 바라보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테제 1. 밀려오는 새 페미니즘의 물결은 파업을 재발명한다.

  테제 2.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파산한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설 때다.

  테제 3. 우리에게는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99%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테제 4.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전체 사회의 위기이며, 위기의 근원은 자본주의다.

  테제 5.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젠더 억압은 사회적 재생산이 이윤을 위한 생산에 종속된 데 기인한다. 우리는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기를 원한다.

  테제 6. 젠더 폭력은 여러 형태를 띠며, 그 모두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로 뒤엉켜 있다. 우리는 맹세코 그 전부와 맞선다.

  테제 7. 자본주의는 섹슈얼리티를 단속하려 든다. 우리는 그것을 해방시킬 것이다.

  테제 8. 자본주의의 태생은 인종 차별과 식민주의적 폭력이다. 99%의 페미니즘은 반인종주의적이며 반제국주의적이다.

  테제 9. 99%의 페미니즘은 자본의 지구 파괴를 되돌리기 위해 싸우는 생태-사회주의다.

  테제 10. 자본주의는 현실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와 함께 갈 수 없다. 우리의 답은 국제주의 페미니즘이다.

  테제 11. 99%의 페미니즘은 모든 급진적 움직임이 공동의 반자본주의 혁명에 함께하기를 촉구한다.

  각각의 테제는 길어야 열 쪽 남짓의 길이로 구성되어있다. 열 쪽이라고 해도 책의 작은 크기와 글자의 큰 크기를 고려할 때 보통의 책으로 하면 두세 쪽 정도 분량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그런데 이 짧은 길이에 담긴 메시지의 의미는 묵직하다. 게다가 이 메시지의 의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문제점에 동의하지 않거나 잘 모른다면 선언문이 지향하는 바에 거부 반응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고 본문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즉 이 선언문은 반자본주의 선언문이기도 하다.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99%, 즉 다수가 공유하고 또 다수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섬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대하면서 저자 중 한 명인 낸시 프레이저가 그의 저서 <전진하는 페미니즘>에서 다루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페미니즘의 제2물결 중 2막이 인정 투쟁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반성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분배의 정의와 젠더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돌아보는 페미니즘으로의 방향 전환이 요구된다는 내용 말이다.

  각각의 테제로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프롤로그 격의 [갈림길에서]라는 글에서 페미니즘 운동의 두 가지 흐름이 대비된다. 하나는 기업 페미니즘 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서 일터에서의 착취와 사회 전체의 억압을 관리하는 지위가 지배 계층 남성과 여성에게 고루 배정되는 세상(P.20)을 지향한다. 이는 지배 기회의 평등이 소수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계급사회의 창출에 불과할 뿐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목격되었지만 자기 계급의 이익에만 열렬히 복무하는 고위직 여성들이 늘어난다고 전체 사회의 가치가 늘어나지 않음은 명백해 보인다. 다른 하나는 성차별적인 억압과 착취,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요구하며 여성들이 고분고분 복종하며 침묵을 지키기 원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동맹에 대한 저항과 투쟁’(P.19)을 외치며 자본주의의 종식을 원하는 반자본주의 페미니즘이다. 그러면서 이 선언문을 만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 번째 테제에서는 2016년부터 발생한 페미니스트 파업이 파업이란 형태에 다양한 유형의 운동을 결합하여 파업을 강화하고 노동의 범위를 재정의하였음을 드러낸다. 이런 움직임이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약화시킨 사례는 페미니즘이 우리의 실생활을 풍요롭게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방식으로 선언이 전개됨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후의 테제들에서도 반자본주의 관점을 분명히 한다. 그냥 자본주의라서 반대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우리를 억압하는 실상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 자본주의에 맞서는 것임을 밝힌다. 자본주의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여러 문제들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고착화하고 악화시켰는지도 드러낸다. 예를 들자면 여섯 번째 테제인 '젠더 폭력은 여러 형태를 띄며, 그 모두는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와 뒤엉켜 있다. 우리는 맹세코 그 전부와 맞선다.'에서 전 세계 여성 3명 중 1명 이상은 살아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성폭력을 경험한다고 연구자들은 추정한다고 한다. 이런 폭력은 우연히 발생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구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책은 설명한다.

 그러면서 99%를 위한 페미니즘의 운동 방향을 이해하고 그런 운동이 자본주의에 맞서 우리의 실생활을 의미 있게 변화시켰음을 수용해서 동참, 연대하기를 드높이 외친다.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인간을 도구화하고 빵만 쥐어주면 다 빼먹을 수 있는 종속물로 취급하는 행태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빵만이 아니라 장미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알고 있으므로.

 

책은 좀 힘들게 읽었다. 이런 유의 내용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페미니즘 모두에 전혀 무지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책읽기를 시작했는데 짧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시 생각하고 돌아볼 것들이 많았다. 문장을 곱씹어가며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자주 동원되었다. 페미니즘이 궁금해서 집어들 책은 아니라는 평가를 하게 된다.

  쉽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한 결정적 방안으로서 페미니즘의 가치를 깨닫게 된 점은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본다. 여성에게 부담지워진 사회적 재생산의 문제를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 것과 여성이 담당하는 노동의 범위를 확장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책읽기가 남긴 가치다.

  앞으로의 페미니즘의 방향성을 알고 싶은 이, 페미니즘이 우리 삶에 미칠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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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11개의 테제를 읽어보니 꽤 묵직한 책이네요. 페미니즘을 깊이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자본주의 비판을 통한 페미니즘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을 갖게 합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책들은 애써 외면하는데(집에 있는 페미니즘 책 한 권도 읽지 않고 있네요) 고독한선택님 리뷰를 통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고독한선택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2020.05.09 07:0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페미니즘은 제 의식을 일깨우는 부분이 많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시면 금방 빠져드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2020.05.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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