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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의 순간들

[도서] 인간다움의 순간들

이진숙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3점

이 책은 세 권으로 기획된 시리즈물의 첫 권이다. 글쓴이는 들어가는 글에서 이 시리즈가 르네상스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예술가 101명의 미술 작품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P.6)고 그 대강을 밝힌다. 101명 중 33명의 예술가가 이번 편에 등장한다. 파올로 우첼로와 장 앙투안 바토의 두 사람은 처음 인지하게 된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펼쳐진다. 책에서는 세 개의 시기로 시간대를 대별한다. 르네상스 시기와 매너리즘/바로크 시기, 로코코/신고전주의/낭만주의 시기가 그 각각이다. 이런 구분은 예술가 개개인의 특성뿐 아니라 예술가 자신과 작품에 영향을 끼친 시대의 모습시간과 공간 모두까지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의식의 변화가 어떻게 역사의 움직임과 상호 작용했는지 양상을 알 수 있게 한다. 다들 잘 알겠지만 역사, 특히 일정 시점 이후의 서유럽의 역사는 개인의 가치를 자각하고 개인의 자유를 확대한 과정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책에 실린 미술 작품회화가 대부분이지만 조각도 있다들을 순서대로 넘겨가면서 감상하면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책은 그런 서유럽 미술만을 담고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서유럽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치환해서 읽는 오류에 대해서는 미리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어쨌든 책은 무척 재미있으며 인간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P.7) 있도록 전개된다.

  책의 내용에는 이미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이 없지 않지만 이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이 많다. 일부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보이지만 작품과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도록 부추기는 가치 있는 내용을 만날 때에는 앎이 늘어나 마음이 즐거워진다.

  글쓴이의 글과는 별개로 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늘 마음에 품고 있다. 가령 인간답지 못하다.’는 표현을 대하는 경우가 그렇다. 선함도 악함도, 아름다움도 추함도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인데 인간이란 이런 모습만을 지녀야 한다고 강요하는 권력자의 해석이 이 표현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해서 이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책은 마사초와 파올로 우젤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사초에 대해서는 알고 있던 정보들이 포함되어서 크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그가 그린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에 본격적으로 인간의 그림자가 등장하는데 이런 인식의 변화가 르네상스 사고의 반영을 의미한다는 점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파울로 우젤로가 원근법에 우매하게 접근하는 모습은 글쓴이가 언급한 바와 같이 왜라는 사고의 부재를 느끼게 한다.

  프라 안젤리코의 <조롱당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인간의 여러 모습을 본다. 안젤리코는 조롱하는 인간은 육신의 일부만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자세가 아님을 드러내려 했다고 보인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도미니코는 전신을 그려 온전한 인간으로 나타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안젤리코의 그림에서 전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바를 느끼고 깊은 위안을 받았다.

보티첼리가 구현했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서는 글쓴이의 관점에 혼동을 느꼈고 다빈치의 모나리자에서 발견한 웃는 여성의 가치라는 시선에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듯한 감상을 가졌다. 둘 다 플라톤적 세계를 그들의 그림 속에서 구현하려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미켈란젤로 편에서는 턱을 괴고 생각하는 로렌초 상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교류를 읽어낸다. 명상을 통해 깊은 피안의 세계를 고민하는 모습은 다른 유의 생각하는 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라파엘로에게서는 중용의 미덕을 읽어낸다.

  유화를 개발하고 이를 작품에 적용시켜 어떤 기운이 그림에서 느껴지도록 한 베네치아의 화가 조르조네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형태의 분위기, 기운은 표현의 폭을 넓혔다고 한다. 티치아노의 그림은 결국 회화도 시대상을 반영함을 드러낸다. 좋든 싫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발견한다.

  알브레히트 뒤러와 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을 통해 깨어나는 자의식과 특정 세력이 아닌 민중에게 시선을 돌린 의식의 변화를 읽는다. 뒤러 이전에는 자화상이 드물었으며 그렸다고 해도 뒤러만큼 자주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을 성찰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고 한다. 브뤼헐의 그림들은, 이전에는 보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 표현한 바와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책에 나온 그림에 한해서이지만.

  책의 2부는 매너리즘의 시대와 바로크 시대를 다룬다. 2부의 시작은 매너리즘 시기를 살았던 파르미자니노와 엘 그레코이다. 파르미자니노의 유명한 작품인 <긴 목의 성모>에 대해 불분명하게 알던 부분들을 명확히 알게 되었으며 미술사에서의 매너리즘의 의미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엘 그레코와 매너리즘의 연관성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시대를 살았다는 건 알겠다만.

  카라바조 편에서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두 주인공의 얼굴이 모두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라는 정보는 처음 대했다. 스스로를 징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정보이다. 그가 구현한 테네브리즘은 극적 효과를 창출하는 뛰어난 기법이다.

  젠틸레스키와 베르니니. 이제는 젠틸레스키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젠틸레스키는 다른 책에서 보던 해석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베르니니의 조각, 건축 작품들은 장점과 단점이 뒤섞여 보인다.

  니콜라 푸생과 페테르 파울 루벤스 편으로 넘어가면서는 이탈리아 화가, 조각가 등의 이름에서 벗어나 프랑스와 플랑드르(여기를 네덜란드라고 해야 할지 벨기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의 화가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크 시대 안에서 예술 권력이 이탈리아를 벗어나 유럽 각지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루벤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의 정치 성향 등과 관련해서 작품에 관심이 간다.

  반 다이크와 벨라스케스, 그림에 담아낸 지향점이 달랐던 두 화가의 세계 비교는 절묘하다. 반 다이크는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그들의 이미지를 고양하는, 일종의 선전물을 그렸다.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그림을 보게 되면 그림 속 인물에 대해 허상을 가지게 되리라는 경고는 가치 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의 초상화>는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이 그림을 보려 달려가 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는 반 다이크와는 달리 인간 자체가 품고 있는 가치를 드러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

  프란스 할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의 그림을 보면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되지 않을까? 그가 그린 그림 속 인물 등은 자신의 삶을 만들고 그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확실히 근대로 들어서면서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신, 왕족, 귀족들의 세계를 벗어난 세상의 장삼이사들로 바뀜을 알 수 있다.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 두 네덜란드 화가로 바로크 시대를 마감한다. 두 화가 모두 너무나 유명한지라책 속 다른 예술가들도 다르지는 않겠지만이들에 대해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의 타입은 다소 다르다. 렘브란트는 선을 불분명하게 처리한 반면 페르메이르는 선이 분명하다. 당연히 화풍도 달라진다. 다만 그들이 화폭에 담았던 인물들은 평범한 이들,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는 인물들이었음은 동일하다.

  로코코 시기의 화가로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장 앙투안 바토이다.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키테라 섬의 정박>이라는 그림을 보니 눈에 익은 느낌이 든다. 프랑스에서 로코코 문화를 지지한 계층은 왕족, 귀족이 아니라 상층 부르주아였다고 하니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음을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샤르댕과 다비드를 본다. 샤르댕은 평범한 인물들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순간을 뛰어난 감각으로 포착해서 묘사한다. 책의 설명을 보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바를 알아차리게 된다. 단순해보이면서도 결코 단순하지 않은 정서에 동참함은 기쁨이 된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를 연 화가이다. 그가 그린 나폴레옹 상은 프로퍼갠더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권력에 영합한 다비드의 모습은 싫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앵그르와 낭만주의 사조의 시작 위치에 서있는 고야의 그림을 보고 그림에 담긴 그들의 사상을 읽는다. 앵그르의 그림에서는 지나친 작위성이 느껴져 부담스럽다. 반면 고야의 그림은 거친 붓질과 그림 속 주인공의 생생한 표정이 묘하게 어우러져 몰입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낭만주의 시작점이며 확장점인 테오도르 제리코와 외젠 들라크루아를 대하니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읽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서 맨 처음 나오던 화가가 이 둘이었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해서 아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그래서 더욱 다채로운 사유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P.396)이라는 글쓴이의 코멘트가 마음에 남는다.

  이외에 빠트린 예술가에 대한 얘기는 책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33편의 글 말미에는 그 화가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많지는 않지만 가봤던 미술관을 만날 때에는 반가움과 더불어 언제 다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코로나 시대 이후의 여행이란 어떤 모습이 될까? 

 

편집 에러가 여러 군데 보이는 점은 아쉽다.

  1.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쓸 때 그리스식 표기와 로마식 표기를 혼용해서 쓰는데 다음 쇄에서는 수정하기 바란다.

  2. 젠틸레스키 편에 보면 클레오파트라를 이디오피아의 여왕이라고 하며 젠틸레스키가 영국의 찰스 1세에게 초청받은 해를 본문에서는 1935, 미술관 소개에서는 1638년이라고 달리 기술한다.

  3. 기타 오타나 표현의 비일관성예를 들면, 하느님과 하나님의 혼재 등도 수정하기를 희망한다.

이런 에러가 2권과 3권에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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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서유럽 미술가들과 작품들을 시대순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책이네요. 익히 알고 있는 예술가도 있지만 낯설은 예술가들도 보입니다. 예술 문외한이지만 최근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저로서는 서유럽 미술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책 같습니다.

    2020.05.23 11:0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는 책이므로 큰 흐름을 감지하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머리 아플 일은 없을 테고요. ^^

      2020.05.26 15:04
  • 파워블로그 march

    출간되자마자 리스트에 올려놓고 일단 도서관에 신청해두었는데 고독한선택님 리뷰 읽고나니 구입하고 싶어요.이런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아요. 편집, 구성 점수가 낮네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2020.05.26 09: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편집/구성 점수가 낮은 것은 마지막에 거론한 편집 에러 때문입니다. 1번 얘기는 편집 에러인지 글쓴이가 저지른 오류인지 모르겠지만 두 군데에서 실수를 하고 있고 2번도 있을 수 없는 실수지요.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왕이었으니까요. 오타도 꽤 여러 군데에 있습니다. 책 내용은 무척 재미잇고 지식이 쌓이는 효과도 있는데 1~3번의 실수는 좀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재생용지로 만들어져서 책 부피가 좀 되고 컷팅 면이 다소 거친 점을 감안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서 읽으셔도 아깝지 않을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2020.05.26 15:01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