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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도서] 증언

솔로몬 볼코프 편/김병화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 중의 한 명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이 책은 그가 구술한 바를 볼코프가 정리한 회고록이다. 쇼스타코비치의 구술은 볼코프가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소련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다. 그의 구술 시기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한참 뜨겁게 진행되던 기간 안에 있다.

  옮긴이의 말에도 나오지만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이게 쇼스타코비치 본인의 생각이 반영된 게 맞느냐, 볼코프가 쇼스타코비치를 옹호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각색한 게 아닌가 등의 비판이 많았다그렇다고 들었다. 그는 교향곡 1번을 발표했던 20살 때부터 유명세를 탔던 작곡가로서 전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인물이었지만 소련-표현의 일관성을 위해 소련이라고 통일해서 쓰겠다- 안에서나 소련 밖에서나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불신을 받고 있었다. 소련 내에서는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사상 검증을 거쳐야 했다. 그가 소련에서 겪은 문제에 대해서는 줄리언 반스가 쓴 <시대의 소음>이 일정 부분 보여주고 있으므로 참조할 만한데 그 내용과 논조 모두 이 책, 증언에 기대고 있음은 분명하다. 쇼스타코비치는 서구로 망명했던 다른 소련 음악가들과는 달리 평생을 소련에 머물렀기 때문에 삶의 내면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겉으로는 소련의 체제 안에서 권력의 한쪽에 발을 들이고 그 예술계에서 일정한 지위를 누리는 모습으로 서방 세계에 알려졌다. 서방 세계에서 그를 불신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깔려있었다. 그런 인식들을 완전히 뒤엎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발행은 음악의 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책 앞쪽에 실린 정보를 보니 책은 1979년에 미국에서 처음 발간된 것으로 보인다. 쇼스타코비치의 사후 나왔으므로 작곡가 본인에게 책 내용에 대한 진실 여부를 따져 물을 수 없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를 알았던 여러 망명 음악가들예를 들면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비치 등 의 증언과 아들인 막심 쇼스타코비치의 1981년 망명 이후 그의 발언 등이 잇따르면서 회고록의 진실성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소소한 시비는 있지만)

 

책은 연대를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대를 마구 뒤섞어 놓아서 시기가 혼란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큰 흐름은 대략 시간의 흐름을 따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이런 점은 회고록의 특성이라고 이해하면 시비 삼을 바는 아니겠다.

  책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쇼스타코비치가 겪었던 심각한 정치 사건들, 예로써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관람한 스탈린이 불쾌감을 드러낸 후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고 교향곡 5번을 통해 비판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과정 등에서 감당해야 했던 불안감을 비롯해 계속되는 주요 사건을 맞으면서 품었던 그의 내면세계를 볼 수 있으며 자신이 만나고 경험했던 여러 인물들과의 일화를 통해 그의 사고가 지향하는 점을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몇몇 사건들에 대해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시각을 통해 사건을 재해석 또는 재구성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음악에 담고자 했던 바,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바에 깊이 있게 다가설 수 있다적어도 그렇게 느낀다. 그러면서 고통과 고난에 차분하게 맞서 나갔던 인간, 그것도 거인의 모습을 보게도 된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즐겁지 않고 비극적이기까지 한 여러 사건들과 사악하고 불쾌한 인물들도 이야기했다. 그런 인물들과의 관계로 말미암아 나는 큰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혹시 이런 방면에서의 내 경험이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은 내가 맞닥뜨려야 했던 것 같은 끔찍한 환멸은 맛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나보다는 더 강하고 더 단단한 각오로 인생을 헤쳐나갈 것이다. 아마 그들의 인생은 나의 회색빛 인생이 맛보았던 쓰라림을 겪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P.598)

  그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삶을 살았지만 다음 세대는 그런 고통과 슬픔을 덜 겪게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희망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인간 존재 자체를 문제라고 보지 않았다. 인간을 압박하는 구조와 체제가 문제라고 인식했다. 맥베스 부인에 대한 그의 생각으로 이 리뷰를 마무리한다.

  <맥베스 부인>은 나의 신부, 미래의 내 아내에게 헌정된 것이니만큼 당연히 사랑을 주제로 했다. 하지만 사랑만 다루는 건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온통 이렇게 천박한 일로 꽉 차 있지 않았더라면 사랑이 어떤 것이 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그런 천박함이 사랑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또 법률과 재산과 돈 문제와 경찰이 설치는 상황이 사랑을 망친다. 상황이 달랐더라면 사랑도 달라졌을 것이다. (P.280)

 

쇼스타코비치를 알고 싶은 이라면, 또 그를 사랑하는 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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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쇼스타비치 삶은 외줄 타는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창작열에 불타던 젊은 음악가가 서슬 퍼런 독재 권력 앞에서 생존에 위해 예술 활동을 해야 했으니....
    클래식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 같습니다.

    2020.06.23 01:1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쇼스타코비치에게 관심있는 이에게 한정해서겠지요. ^^

      2020.06.23 17:10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