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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트러블

[도서] 러브 트러블

정일영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책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쓴이는 이 사랑을 오래된 사랑 이야기/사랑에 빠지다/사랑, 고통을 낳다/예술가의 사랑 등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이야기를 펼친다. 모든 이야기에는 그 이야기와 관련된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 작품이 먼저 등장하고 이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글쓴이의 생각을 드러낸다. 미술 작품과 인문학적 성찰이 어우러진 책이라 할 수 있다.

  오래된 사랑 이야기에서는 요즘 그로신이라고 약칭하는 그리스로마신화 속의 사랑이 주가 된다.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사연으로 시작해서 신화 속에 반영된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과 그 사랑의 문제점을 밝힌다.

  사랑에 빠지다에서는 작품을 보면서 든 글쓴이의 생각이 내용의 주가 된다. 작품의 소재가 되는 바탕 이야기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저 작품을 해석하는 글쓴이의 이해가 전부가 되기도 한다.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장이다. 다만 이성 간의 사랑이 주라서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면을 할애했던 앞 장에 비해 이질감이 든다.

  사랑, 고통을 낳다 편은 사랑의 길로 들어선 이들이 겪는 각종 갈등의 현장을 보여준다. 그런 갈등은 현실에서 가져온 것도 있고 문학작품에서 가져온 것도 있다. 책 안의 갈등은 바깥으로 표출되어 고통스런 결과를 낳는다.

  예술가의 사랑은 제목처럼 예술가들의 사랑을 등장시킨다. 단테, 샤갈, 고흐, 알마 말러 등 유명 예술인이 한 사랑의 과정과 결과를 읽다보면 나는 이 사람들 같은 사랑은 다시 태어나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샤갈은 빼고.

  등장하는 미술 작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도판이지만 여러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약점들이 많다. 다 거론하자면 너무 많으니 몇 가지만 뽑아본다.

  첫 번째 약점은 인용된 이야기들이 원본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을 다루는 데에서 프시케가 에로스의 발등에 등불 기름을 떨어트렸다고 썼지만 이 이야기의 원전인 아폴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에는 오른쪽 어깨에 떨어트렸다고 나온다. 이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크레스피의 그림을 보면 발등에 기름을 떨어트린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텍스트는 그러하지 않다. 텍스트를 확인하지 않아서 나온 잘못된 설명이다. 이런 식의 오류는 피그말리온 편에서도 나오는데 이 역시 제롬의 그림 중심으로 신화를 이해하다보니 원전을 오도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런 이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의 일부만 떼어다가 글쓴이가 해석하고 싶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엉뚱한 설명이 등장한다는 데 있다. 실험실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만 뽑아서 논문을 쓴다면 그 논문의 가치가 있겠는가.

  두 번째는 글쓴이의 주장이 분명한 근거를 갖지 못한 채 혼자서만 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또한 예를 들어 254쪽을 보면 외모에 끌린 사랑일수록 단명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게 무슨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네 사랑의 대부분은 상대방의 내면을 확인하기 전에 얼굴이든 인상이든 외양에 이끌리면서 시작하지 않던가? 학술적으로 입증된 얘기가 아닌데 단정하는 게 타당한지 모르겠다. 글쓴이가 사랑은 이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닌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세 번째, 문장은 자주 거칠고 편집은 일관되지 못하다. 에로스와 프시케 편에서 싸이코시스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프시케는 영혼, 나비 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이라는 앞뒤 내용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문구가 등장이 책을 읽어보시는 분들은 해당 문장이 나올 때 판단해보시라한다. 왜 이런 문구를 썼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이런 문구를 쓰려면 배경 설명이 있어야 한다. 해당 문장에서 저 문구가 없어도 문제될 일이 없다.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이것저것 욱여넣으려다 보니 문장 전체가 엉뚱해졌다. 문단이 바뀔 때 들여쓰기를 했다가 안 했다가 하는 점도 어색하다. 일관되게 들여 쓰던지 아니면 아예 들여쓰기를 하지 않던지 했어야 할 일이다. 낱말의 선택도 부적절한 게 여럿 보인다.

  네 번째, 사고의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는다. 나는 책의 처음인 들어가는 말을 읽으며 무척 실망했다. 내용 중에 이별이거나 결혼이라는 연애의 결말 중 운 좋게 결혼에 성공했으니라는 부분 때문이었다. 글쓴이의 이전 책이나 이 책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이별을 문제라거나 실패라고 보지 않는다. 235쪽부터 시작하는 글의 제목은 이별이 사랑의 실패는 아니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 표현은 결혼은 운이 좋은 것이고 이별은 운이 나쁜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뿐 아니다. 71쪽을 보면 일상의 언어에 위계가 숨어있다고 하며 여성 화가, 여의사 등을 그 예로 든다. 그런데 그림 설명이나 본문 등을 보면 성녀 테레사, 성녀 마리아 등으로 표현한다. () 테레사, () 마리아가 아니라. 언어의 위계를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글에서는 그 위계를 지우지 못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생각이 타당할지라도 그 생각을 표시하는 언어가 타당하지 못하면 생각도 타당하지 못한 것으로 바뀐다. 글쓴이는 자신이 내어놓은 글에 대해 냉정히 돌아보기 바란다. 나는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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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올해 서평단으로 뽑혀 읽은 <삼국지>시리즈가 그랬습니다. 이 책을 만드느라 들어간 나무들에게 참 미안해지는 책이었어요. 이 책도 그랬군요.

    2020.09.15 13: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은 결국 글쓴이의 생각이 굳건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하고 추측합니다.교정을 봤을 텐데도 걸러내지 못한 것은 결국 생각이 그 지점에서 머물러있다는 의미라고 이해하고요.

      2020.09.15 13:28
    • 그렇네요. 교정이 있어도 못 걸러내는 건 분명 저자의 생각이 거기까지였을 거였겠네요. 출판사 입장에서도 답답했겠는데요.

      2020.09.15 13:38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