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루마니아 태생의 유명한 피아니스트로는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클라라 하스킬과 디누 리파티. 하스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룰 생각이고 오늘은 리파티의 음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리파티는 1917년 3월에 태어나 1950년 12월에 사망한, 말 그대로 요절한 인물입니다. 그의 사망 원인은 백혈병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음반은 1950년 9월 16일에 프랑스의 브장송에서 있었던 그의 마지막 공연 실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연주 후 리파티는 2개월을 조금 더 넘겨 살았으니 그야말로 그가 남긴 백조의 노래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의 링크로 대신하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guimms/58
이 음반에는 바흐의 파르티타 1번 전곡,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 전곡, 슈베르트의 즉흥곡 Op.90 중 2번과 3번, 쇼팽의 왈츠 중 13개의 곡이 담겨 있습니다.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는 연주회의 전반 부분이고 쇼팽은 휴식 후 후반 부분입니다.
링크 글에도 나오지만 리파티는 이미 백혈병이 몸에 깊숙이 퍼져 있던 때라 연주를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굉장히 무리를 해서 연주회에 임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요? 모르핀을 맞고 연주를 시작했던 리파티는 모르핀의 기운이 떨어지면서 결국 왈츠의 14번째 곡인 2번을 연주하지 못한 채 마무리합니다. 리파티는 쇼팽의 왈츠를 연주할 때 항상 전곡이 아니라 1번부터 14번까지의 14곡만을 뽑아서 연주했고 그 순서도 섞었지만 마지막은 2번으로 마감했다는데 이날은 그러지 못하고 13곡만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런 상태였던 탓인지 그가 연주하는 왈츠는 템포가 조금 빠르게 들립니다. '이 곡을 다 쳐야 하는데.' 같은 초조함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날의 연주는 그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의 연주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가 리파티의 그것이기도 하며 쇼팽의 왈츠는 이렇게 치는 거야 하는, 일종의 전형을 보여주는 연주로까지 평가-제 기준에서-합니다. 모노럴 녹음이지만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모노럴의 아련함이 음악이 스며든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가 남긴 다른 음반에서도 그렇지만 그의 연주는 위안을 줍니다, 자신이 가진 기술과 그 기술을 구현하는 정신이 잘 어우러져서 대가가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요절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그의 연주와 함께하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몹시도 안타깝습니다. 이제 곧 겨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