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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의 노래

[도서] 롤랑의 노래

김준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1. 이 작품과 나의 인연

[롤랑의 노래]를 처음으로 알게 된 시점은 상당히 오래 전이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아직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소년중앙 같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에 그 대강의 내용이 실렸던 것을 본 기억이 첫 기억으로 남아있다. (몇 학년 때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전문은 아니었고 요약해서 줄거리만 설명한 내용이었다. 아직 어렸을 때에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꽤 큰 편이었는데 그런 나라의 용맹한 장수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뇌리에 깊이 박혔었나 보다. 이야기의 대강이나마 오래 기억하고 있었던 걸 보니. 게다가 자신의 이름이 걸린 이야기까지 남아있는 이가 그 이야기 중에 죽고 그 죽음에 대한 복수가 이루어지는 내용이라는 점이 몹시 특이했다. 어릴 때 읽는 글들의 대부분은 그 결말이 주인공이 행하는 권선징악이거나 원문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주인공의 행복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글은 그렇지 않았다.

 

2. 줄거리

[롤랑의 노래]는 서사시다. 시대 배경은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그 유명한 샤를마뉴 대제가 맞다- 시기다. 보다 정확하게는 프랑크 왕국과 사라고사 왕국 간에 벌어진 롱스보 전투가 있었던 778년 전후이다. 롤랑은 샤를마뉴의 조카로서 사방에 용맹을 떨친 기사이며 샤를마뉴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다. 이 서사시의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스파냐 정벌에 나선 샤를마뉴 대제는 사라고사 정복만을 남기고 있다. 사라고사의 왕 마르실은 샤를마뉴에게 화친을 청한다. 샤를마뉴는 마르실의 본심을 확인하고자 사라고사 진영으로 보낼 사자使者를 선정하는데 이는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복잡한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가늘롱이 사자로 뽑히는데 롤랑이 가늘롱을 추천한 결과인 바 가늘롱은 이에 큰 불만을 품는다. 사라고사에서 마르실 등을 만난 가늘롱은 프랑스를 배신할 음모를 꾸미고 협잡한다. 그 음모의 첫 번째는 롤랑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샤를마뉴는 가늘롱이 가져온 협상의 결과를 받아들여 철군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2만의 병력으로 후위 부대를 구성하여 롤랑과 롤랑만큼 뛰어난 기사인 올리비에에게 맡긴다. 롤랑이 후위 부대를 맡게 된 것은 가늘롱의 술수에 의해서였다. (가늘롱이 사자가 되는 과정이나 롤랑이 후위 부대를 통솔하게 된 과정은 서사시를 읽어봐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후위 부대는 장렬하게 싸우지만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사라고사군의 기습에 의해 전멸당한다. 롤랑을 비롯한 여러 기사들의 죽음과 함께.

  뒤늦게 롤랑의 구원 요청을 접한 샤를마뉴는 대군을 이끌고 돌아와 사라고사군을 격파한다. 그리고 마르실과 가늘롱을 처단함으로써 롤랑을 비롯한 프랑스군의 전멸에 대한 복수를 완성한다.

 

음모와 배신, 복수와 처벌, 격렬한 전투 장면과 기사들의 죽음을 장엄하게 만드는 묘사, 극적 효과를 높이는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 등 서사시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읽기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일부 개연성이 떨어진다거나 세심하지 못한 요소들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3. 작품 감상 시 유의 사항

옮긴이의 설명에 나오지만 서사시의 내용 중 일부분은 역사의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당장 샤를마뉴가 7년 동안 에스파냐를 정벌했다는 첫 부분부터 실제로는 7년이 아니라 몇 개월에 불과했다는 옮긴이의 설명이 붙는다. 이후로도 일정 부분 사건의 전후가 바뀌거나 과장되거나 없던 일이 더해지거나 한다. 중세 작품들에서 역사적 엄밀성이 결여되는 일은 매우 흔하다(P.13).

  특히 동원되는 군사의 숫자는 믿기 어렵다. 샤를마뉴의 복수전에 동원된 양측 군대를 다 더하면 족히 100만은 될 것 같은 수치를 제시하는데 당시의 인구 규모 등으로 미루어 보면 있을 수 없는 수치이다. 많은 병력이 동원된 큰 전투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했다.

  전반적으로 옮긴이의 각주를 잘 참조해서 읽으면 본문을 이해하기 쉽다. 독자가 꼼꼼한 사람이라면 각주가 붙지 않은 부분에서도 그 맥락에 다소 주의해서 읽어야 할 것들을 발견할 수 있겠다. 대체적으로 고증이 잘 됐지만 가끔 오류나 과장이 섞인 사극 드라마를 본다고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사항들은 아니라고 본다.

 

4. 작품의 의의

[롤랑의 노래]는 무훈시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면서 최고의 걸작(P.324)이면서 무훈시 장르를 넘어 프랑스 중세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P.327)이다. 또한 그 기원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롤랑의 노래]의 배경이 된 8세기의 프랑크 왕국은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프랑스의 역사에 속한다(P.332)고 옮긴이는 평가한다.

기실 이 시기라고 하면 국가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자리잡지 않았을 때이다. 하지만 샤를마뉴의 통치기였거나 그 이후였거나 이 노래를 들었던-읽을 수 있는 인원은 소수였을 때니까- 프랑스의 민중들은 롤랑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에스파냐 세력들에 대한 반감과 복수와 정복을 완성한 샤를마뉴에 대한 칭송으로 일종의 강렬한 연대 의식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그런 의식이 중세 이후 프랑스를 유럽의 강자로 만든 원동력 중 하나로 작동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롤랑의 노래]가 민중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퍼졌는지 아니면 일종의 프로퍼갠더로서 프랑크 왕국의 최고 권력층이 만들어 퍼트렸는지는 모르겠다. 책에도 그런 정보는 없다. 어쨌든 내용 상 일종의 국수주의를 부추기는 요소는 다분하다. 군주와 기사가 대동단결해서 적을 물리치는 내용이니. 다만 실제로는 군주와 기사들 간의 관계가 상호 호혜적이지만은 않았음을 각종의 역사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한다. 옮긴이 역시 중세의 청중과 독자를 열광시키고, 후대인들의 가슴까지 뛰게 만들던 무훈시 속의 기사와 성군들은 어쩌면 시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가공의 영웅들에게 불과했을지도 모른다(P.347)고 한 점을 고려해서 작품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다.

 

5. 에필로그

[롤랑의 노래]를 남아있는 한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초기 판본으로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번역은 성의가 가득하여 본문뿐 아니라 모든 각주와 옮긴이의 해제, 번역 저본 소개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많지는 않지만 상황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삽화도 적절하다. 이 영역의 전문가들이 보자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중세 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번역 작품으로 보인다. 이 시기 유럽의 기사 문화에 대해서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중세 프랑스어판 [롤랑의 노래] 필사본 9종 중 텍스트가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 받는 옥스퍼드 필사본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책 표지 전면에 국내 최초 중세 프랑스어 원전 완역본이라고 강조하고 있고. 사실 읽기 시작할 때에는 이 문구가 일종의 마케팅 도구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그 뜻과 뉘앙스에서 현대 프랑스어와 꽤 다른 중세 프랑스어의 모습을 옮긴이의 설명을 통해 접하게 되자 원전 번역의 가치와 어려움을 함께 그리고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이 작품의 번역에 10년 이상의 시간을 쓰는 등 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옮긴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원문을 꿰뚫어 지금의 한글로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한 바에 대해서는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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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하루

    이 책이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벌써 읽으셨군요. 학부때 전공필수과목으로 중세사 샹송 드 롤랑을 수강했답니다. 어찌나 어렵고 모르겠던지요. 그땐 미숙했는데 이젠 좀 경험이 늘어서 이해하는데 수월해졌어요. 멋진 책입니다. 소장가치가 있겠어요.

    2022.07.22 19:3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책의 원래 내용도 재미있고 옮긴이의 정성도 더해져서 매우 괜찮은 번역판이 나왔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읽으셔서 이런 분야도 지평이 넓어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2022.07.24 15:51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