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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 전후에 뉴욕 월가가 보여준 행태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하겠다. 신용 창조라는 미명 하에 무분별한 파생 금융 상품을 만들어내고선 극단적인 이윤추구만을 일삼은 끝에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 위기를 유발하고서도 자신들은 막대한 성과급을 챙겨간 금융 마피아들, 정말 이런 인간 말종들이 온 인류의 고혈을 다 빨아먹었다고 생각하니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태를 가능하게 했던 무모하면서 냉혹한 야만적 시스템에 대해서도 혀를 내두르게 되었던 것이다. 하여 자본주의는 더 이상 유효한 경제체제가 아닌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다. 그럼 도대체 대안은 없단 말인가 하고 막막해 하던 차에 데이비드 본스타인의 <그라민은행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세상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분노와 개탄으로 가득 차 있던 내게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불어온 듯했다.

나는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말이 관념적인 언어의 유희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그게 말뿐이 아니라 정말 이 지구상에서 실현되고 있었다니. 바로 노벨상 수상자인 유누스가 주도하여 방글라데시에서 운영 중인 그라민은행이 그것이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액신용대출을 해 주는 은행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게 이전의 금융기관과는 지향하는 바와 운영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른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은행들은 부자들을 대상으로 안전하게 담보를 설정한 후에 대출을 해주어 정말 금융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 운영의 이유로 가난한 이들에게 대출을 했다가는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회수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선입견을 그라민은행은 보기 좋게 깨뜨렸다. 소액신용대출 ‘산업’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잘만 지원하면 그들도 돈을 갚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믿음직한 신용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남의 도움에만 의존하는 무기력한 존재에서 은행의 유능한 고객으로 탈바꿈한 모습을 생중계로 보여주었다 하겠다.

그리고 이제 그라민은행은 자선사업이 아니라 금융 산업의 일원으로까지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시티은행, 인도의 ICICI 은행을 포함한 세계 주요 은행들이 소액 신용대출을 자선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핵심 사업 기회로 생각하기까지 하고 있다고 본스타인은 말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도 은행에서 돈을 빌릴 권리가 있고 자본주의도 부자만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음을 유누스와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사람들이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라민은행의 소박하지만 정의로운 활동은 앞으로 우리의 금융체계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가진 자들의 탐욕만이 이글거리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자본주의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자립과 협동이 가능한 체제로 바꿀 수도 있음을 또렷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겠다.

그런, 착한 금융,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경쟁과 효율, 실용과 돈벌이를 만능이라고 여기는 오늘 여기 우리에게도 선한 영향을 미쳐 한국의 가난한 이들도 당당하게 허리 펴고 자기 사업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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