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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도서]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김서령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일견 경북 안동지역 양반 가문에서 대대로 전수되어온 음식 레시피로 읽힌다. 메밀 전병 비슷한 연변의 감칠맛과, 고춧가루를 풀어 삭힌 식혜의 빨갛고 톡 쏘는 맛을 앞세우는 것 같다. 그러나 실은 징글징글한 인간의 관계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지역 특유의 문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이를 아우르고 녹여낸 빼어난 문장을 맛볼 수 있는 것을 놓쳐선 안 된다. 특히 작가의 충만한 시적 감수성과 빼어난 필력을 엿볼 수 있어서 여간 호사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그대가 세상 고락 말하는 날 밤에 / 숯막집 달도 지고 / 귀뚜라미 울어라~"를 처음 들은 것은 열아홉 살 이맘때 친구 미미를 통해서였다. 나는 그 시의 가락과 이미지가 몹시, 아주 몹시, 맘에 들었다. 그대라는 말의 감미로움과 세상 고락이라는 말의 쓸쓸함과 산골 숯막집에 지는 달의 고요함과 달이 져 음영이 깊어진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귀뚜라미 울음과 그 소리로 인해 아득하게 확장된 우주의 크기 같은 것이 살갗에 돋은 소름처럼 생생하게 감각되었다. (184쪽)

 

오감을 총동원해 느끼고 맞이한 공감각적 인식과 감동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쩜 이렇게 고스란히 살려낼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것 외에도 작가의 눈부신 필력을 여기저기서 맘껏 누릴 수 있다. 감미로우면서도 쌉쌀한 알갱이의 여운이 오래 감도는 문장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레시피를 소개할 때도 리듬감 있고 상상력을 북돋우는 문장으로 살갑게 이끈다.

 

안동 어느 집의 얌전한 다과상이다. 어린 연근에 엷게 백련초 물을 들인 것 말고는 다 제 빛깔을 살려 만들었다. 생강을 얇게 저며 말린 편강과 거피한 들깨를 가루 내어 꿀에 버무려 꼭꼭 누른 강정과 금귤을 뭉근한 불에 졸인 정과 등속이다. 늦봄 송화 필 때 솔꽃을 송이째 따서 창호지에 널어 말린 송홧가루, 그걸 꿀에 녹여 송화다식을 만들었고 검은깨를 가우 내어 검은깨다식도 만들어 켜켜이 담았다. 우리 엄마는 우엉을 제 결대로 길쭉하게 썰어 정과를 졸이곤 했는데 이 집은 그냥 도시락 반찬 하듯 둥글게 썰었다. (187쪽)

 

작가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전해져 자신에게 베풀어졌던 음식의 소중한 가치를 몰라보았다고 고백한다. 그 동안 잊고 살았다고 아쉬워 한다. 뒤늦게 자신이 재현해내려 애쓰고 있는 모습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래서 어떤 것은 살려내었고 더러는 재현 불가능하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곧 잊히고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다.

안동 양반 가문의 생활 습속과 의식 등 특유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중 하나다. 나쁘게 말하면 시대착오적 옹고집이고 좋게 보자면 우리 고유의 심원한 문화이기도 한 이 하위문화는 이제 멸종위기종이 되어 버렸다. 몇 날 며칠 공을 들여 제사음식을 준비한다든지, 사랑어른을 찾아온 손님들을 각별하게 접대하고 내방에 모인 여인들이 음식을 해먹으며 수틀을 잡고 있는 모습은 현실성이 떨어진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민속사박물관에 박제된 전통 문화로 자리매김될 처지이다. 그런 문화를 살려내 마치 눈 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인듯 생생하게 그려낸다. 축첩이 가능했던 가부장 문화의 이면도 보여주어 안타깝게 만든다. 아들을 얻기 위해서였는지 작은댁을 얻어, 엄마를 아프게 했던 아빠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묻어 있는 글은 슬픔에 동참하게끔 이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읽었다. 처음엔 경탄하며, 나중엔 닮고자 표상으로 삼으며 읽다가 그예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지경은 내가 넘볼 수 없는 까마득한 마루였던 것이다. 그래서 말미에 덧붙인 김성희 칼럼리스트의 시새움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아득하고 심원한 글 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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