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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나오는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딱 제 얘기였거든요. 굶주리고 배제 당하고 버림 받은 이들이 추위와 아픔과 고독에 떠는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제 주제에 적당하게 나오는 월급을 늘 쥐꼬리 같다고 투정이나 부리고 빠질 것 없이 멀쩡한 환경을 너무 열악하다고 응석을 떠는 게 오버랩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일신의 안일과 물질적 잇속 챙기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 좀비와 다를 바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쳐,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하고 잠시 아연해졌답니다.

이렇게 이웃을 돌아보고 공공의 일을 자신의 그것처럼 살피는 데 메말라버린 이 시대에, 아니 저에게 <호모 엔젤리너스>는 죽비처럼 다가왔다 할까요. 그런데 너무 멀리 있는 구름 속 스승들의 모습을 제시하였다면 서먹하게 여겨져 다가가기 힘들었을 건데 헌혈을 하거나 목소리로 녹음 봉사를 하고, 또 주변 동료들을 일상적으로 돕는 등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일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 것들을 들고 있어 더욱 살갑게 여겨졌답니다. 하여 나도 약간의 성의만 표한다면, 조금만 더 마음을 쓴다면 충분히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뭉클 동기 유발이 이루어졌다 할까요.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마음결 움직이는 걸 느꼈답니다.

<호모 엔젤리너스>에서 말하고 있는 천사들은 서문에 든 것처럼 도스토옙스키형 인간이라 하겠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보면 머리로 따지는 게 아니라 주저하지 않고 심장으로 먼저 반응을 보여 그에게 마음을 실은 도움을 주는 이들 말입니다. 그런 호모 엔젤리너스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메이크 어 위시 재단이 따로 필요 없을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소원을, 그것도 대부분 소박한 꿈들을,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들어줄 수 있는 이들을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호모 엔젤리너스의 단계까지 단번에 이르지 못할 것 같은 이라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조금씩 달란트를 나누는 습관을 들이고 그것에서 보람을 찾다보면 어느새 어깨에 날개가 돋아나게 될 것이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저로서는 작은 액수나마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라도 정성껏 내고 네이버의 해피빈을 꾸준히 모아서 흔쾌히 기부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드러진 달란트를 갖기 전까지는 그런 방법으로라도 호모 엔젤리너스의 대열에 낄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해서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