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그날, 그곳에서

[도서] 그날, 그곳에서

이경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언제나 엄마가 죽고 모든 것이 끝나요. 왜냐면 엄마의 기억은 훨씬 과거에 못 박혀 있었으니까요. 결국 그날, 그곳으로 돌아가 상처를 치유하는 수밖에 없었어요.(중략)그 작전은 과거에서 진행해야했죠. 결국 저희는 엄마에게 모든 짐을 떠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도록.(p.369)

이들의 시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2045년의 해미와 다미는 2025년 원전사고가 있었던 그날 그곳으로 돌아가 엄마를 구하기 위한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기억하는 일만큼 무서운 저주가 존재할까.기억하는 일만큼 무거운 형벌이 존재할까(p.229)
또다시 마주한 엄마의 죽음은 그 모든 기억을 단숨에 끄집어냈다. 뾰족한 밤송이를 주먹으로 꽉 쥐는 것처럼. 날카로운 바늘 뭉치를 목구멍에 삼킨 것처럼. 기억은 형체 없는 통증이 되어 쉴 새 없이 그녀의 폐부를 찔러 댔다(p.230)

엄마 수아를 살리기 위해 수 없이 과거로 다이브 했지만 해미는 엄마를 살리지 못했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온 해미의 좌절감과 아픔이 이보다 더 처절할 수 있을까.

널 살리는 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이유였단다. 나는 널 반드시 살려야만 했어.(p.331)

또 다른 세계에서 해미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다이브한수아도 역시 해미를 살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둘은 서로를 위해 서로를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의 서로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이 너무 처연했고 애달펐다. 제발 서로가 포기해 주기를 바라면서 스스로는 포기할 수 없는 그들.
끝없는 반복이었어. 네가 나를 살리면 나는 또다시 너를 살려 냈어. 우리가 대체 몇 번이나 이 짓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p.331)

어떤 슬픔은 시간의 바깥에 존재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 (p.311)

수아는 어릴적 재난으로 부모를 잃었고, 남편을 잃었고, 다시 딸을 잃었다. 해미와 다미도 원전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쌍둥이는 그런 다미를 잃었다.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비극, 실수는 되풀이되어 아이들 세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엄마도 엄마로 살아본 건 처음이었어" 라는 수아의 말이 너무 애처로웠다. 나도 엄마가 된 후로 많은 것이 두려웠으니까. 내 행동이, 내 선택들이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과거를 바꾼다는 건 결국 그런 거야. 누군가를 치우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밀어 넣는 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선 다른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나는 나를 죽이기로 했어.(p.323)

과거로 돌아가 죽은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엄마라는 존재. 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해야 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그녀. 그녀는 가족을 잃은 고통을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그 절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해미와 다미는 유족들과 돈을 모아 무인도를 샀고, 수아는 무인도로 가서 가족들을 만날 것이었다.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그들이 다시 가족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꼭!!

타임리프 SF 소설. 시간여행의 개념은 어려웠지만, 해미의 프리러닝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안에 가득한 서로를 향한 사랑과 죄책감과 절망들과 긴박함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수 없이 반복되는 과거로의 다이빙과 해미의 프리러닝을 영상으로 보고 싶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나는 어디로 떠나고 싶을까?

#도서제공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