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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도서]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이정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문학과 신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게 하는 제목이다.

문학과 신앙 인문학과 신앙 조화보다는 부조화가 더 어울리는 현실이다.

책을 읽지 않는 분위기로 팽배해진 사회와 더욱 세속적인 것을 밀어내는 교회내의 폐쇄적인 분위기가

맞물려서 책은 더 이상 필독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핸드폰 문화도 한 몫 하게 되었다고 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문학이 주는 풍요로움에 빠져들었다. 문학책을 읽고 싶었고 당장 몇권의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넓혀가려고 하고 있다. 나의 생각의 지경을 넓혀 주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학을 주신 이유를 알려면 삶의 도구와 목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고민 끝에 얻은 생각에는 힘이 있고 서사를 통해 익힌 유연한 사고가 그리스도인을 깊이 있게 만들지만, 신앙인들에게 고민은 낮선 주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신학 서적이나 경건 서적만 읽지 말고 문학 작품도 읽어야 한다."

이 문장을 잃고 난 후의 나의 코멘트이다.

고민 끝에 얻은 생각의 힘 : 성경은 작가가 단숨에 써 내려간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의 이야기(창세기), 민족의 이야기(출애굽기), 리더들의 이야기(사사기), 왕들의 이야기(사무엘, 열왕기, 역대하) 긴 이야기를 함축해서 글로 남겼다. 중요한 부분들만 나와있고 그 중간중간의 이야기들은 독자의 상상력에 맡겼다. 이해하리라 믿고. 그 부분들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다음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일들을 다 기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중간중간의 떨어진 이야기들을 상상력으로 또는 감으로 이어 붙여야 이야기의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유연한 사고 : 요사이 성경을 읽으며 이 부분이 고갈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쳇바퀴 돌 듯 같은 교훈만 뽑아내는 내 설교를 듣고 누군가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분명 현자다. 그러나 나는 화를 내면서 성경이 다 그렇지 교훈 몇 개가 다 돌고 도는 거지 머라고 웃기고 어리석은 답을 했다. 현문우답이었다. 그렇다. 사고가 막혀 있었다. 작년 기도원에 다녀온 이후로 이제 뉴스도 안보고 다른 책도 안 보고 성경만 보리라 다짐했었다. 그것이 더 성경에 집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면도 없지 않았다. 성경만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삶과 내면의 깊이도 잘라내 버렸다. 바닥이 보인듯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있을 때 아트설교를 만났다. 요새 유연한 사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성경을?아니 성경속의 인물을 또 그가 만난 사건을 이리저리 생각해 본다. 막혔던 생각이 뚤리는 느낌? 성경은 모든 삶과 사건을 포괄하는 유연한 책인 것을 잊었다. 성경은 크다 넓다. 편협하고 좁지 않다. 꽉 막힌 생각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성경 안에 갇힌다. 그러나 성경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다. 유연함은 곧 자유를 뜻한다.

자신만의 답 : 답은 성경에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건 말이 안되는 건가? 문학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다. 어떤 문학도 같은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 각자의 답이 다르기 때문이다.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왜 이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만들지? 왜 저 사람을 선인으로 보는 것지? 왜 주인공은 저 상황에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지? 궁금하게 만든 다음 엉뚱한 곳에서 답을 흘려준다. 그것은 독백이 될 수도 있고 낯선 누군가와의 대화일수도 있다. 진심을 말할 순간에 진심을 드러내는 것보다 진심을 드러내지 않아도 될 상황에 갑자기 느닷없이 말해준다. 낯설다. 그러나 팍 다가오는 느낌이다. 성경이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진리는 단순한데 진리는 어려운 설명이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건들을 들고 나오니 더 헷갈린다고 한다. 그 안에서 어떤 합의점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 수많은 인물, 사건중에 너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너의 문제 너의 고통과 갈등이 있음을 알려준다. 성경을 잘 이해한다는 것은 성경과 나의 접점이 많아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는 성경이 나를 향하고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해했다.

신앙과 문학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깊이의 차이에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문학은 삶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깊이 있게 통찰한다. 기독교에는 부끄럽지만 이런 것들이 너무 부족하다. 깊이는 커녕 겉핥기 수준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통찰이 필요한 성경을 통찰 없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세속적인 저급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나는 성경을 깊이 있게 보고싶다. 통찰을 얻고 싶다. 그래서 문학을 읽고자 한다. 문학작가들은 깊이 생각하는 것에 달인들이기 때문이다. 달인들에게서 조그마한 힌트라도 얻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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