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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왕 타르퀴니우스의 압제에 고통받았던 로마 시민의 집단경험은 다시는 왕을 권좌에 앉혀 시민을 지배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공화정. 로마는 왕의 신민이 되어 복종의 대가로 안전을 보장받기 보다는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 됨으로써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는 쪽을 택했다. 다만 국가의 운영은 귀족 중에서 선출된 원로원과 그 원로원이 뽑은 두 명의 집정관이 맡도록 하였다.

최초의 집정관 브루투스는 선정을 베풀었다. 국방은 튼튼히 시민은 배불리. 항상 그렇듯이, 모범적인 선대가 지나고나면 함량미달의 모방자가 나타나고 국가는 혼란에 빠진다.

가장 큰 문제는 평민의 부채문제였다. 전쟁에 나가 목숨 바쳐 싸우고 가까스로 살아 돌아와보니, 돌보지 않은 농지는 피폐해져 있고, 먹고 살 길 막막한 가솔들은 부자들에게 사채를 끌어다 썼다. 자기 땅은 헐값에 팔렸다. 딸은 부자의 첩으로 전락하고 역전의 용사는 가슴이 찢어진다. 조국에 목숨 바친 대가가 이런거라면 누구든 분노하지 않겠는가?

불에 기름을 붓듯이 귀족들의 탐욕과 오만은 갈등을 가증시켰다. 농지법(토지소유상한제와 식민지토지 균등분배. 토지소유상한제는 귀족들이 과다보유한 토지를 팔아야 했으므로 귀족들의 재산 감소를 초래했고, 식민지토지 균등분배 정책은 전쟁으로 얻은 토지를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려 했으나 귀족들이 재산을 불릴 기회를 원천 차단했으므로 귀족들의 공분을 샀다)을 둘러싼 갈등 사례는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자들이 주먹에 쥔 것을 얼마나 놓고싶지 않은 지를 잘 보여준다.

공화정 로마에 강력하고 무자비한 외세보다 더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적이 나타났다. 평민과 귀족의 갈등으로 인한 내분. 갈등의 원인은 이랬다. 외적이 국토를 침략한다. 귀족들이 평민들에게 나가서 싸우라고 명한다. 평민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목숨 바쳐 지키는 것은 내 땅인가, 귀족 땅인가? 승리하고 돌아와보니 평민에겐 막대한 빚과 불구의 몸뿐이다. 귀족은 개선식을 올리며 자기들끼리 무훈을 자랑하며 잔치를 벌이고 있다. 당신이라면 귀족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하겠는가?

평민들은 조국의 파이를 자기들끼리 다 나눠먹은 귀족에게 반항한다. 외적이 쳐들어와도 아무도 군대에 지원하지 아니한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다. 원로원(귀족)은 애가 탄다. 저 평민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우리들의 기득권도 다 빼앗긴다. 그렇다고 원로원이 나가 싸울수도 없다.

마침내 평민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해주는 새로운 직책이 생긴다. 로마 역사 상 처음으로 호민관이 등장한 것이다. 호민관은 평민 중에서 선출되었으며 원로원과 집정관에 맞짱 뜰 수 있는 파워가 주어졌다.

항상 새로운 것은 처음엔 잘 돌아가다가 잠시 지나면 새로운 모순이 생긴다. 호민관과 원로원-집정관이 서로 정쟁을 일삼게 된 것이다. 내분이 끊이지 않는 로마 밖에서는 침략 기회만 노리는 외세가 틈만나면 전쟁을 걸어온다. 그 때마다 유능한 지휘자가 나타나 위기를 모면하기는 한다.

이 때 정말 모범 가문이 등장한다. 외세가 침략했지만 원로원은 뚜렷한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평민들은 시큰둥하고 있다. 파비우스 가문이 솔선하여 그 가문의 가족들로만 구성된 306명의 부대를 만든다. 파비우스 군은 국경을 순찰하며 외세의 침략을 견제한다. 아무런 보수도 없이. 파비우스 군은 작은 전과를  올리면서 기세등등한다. 지혜로운 적은 그들이 더욱 기고만장하도록 일부러 져주거나 도망다닌다. 파비우스 군은 적을 우습게 여기더니 기백이 방심이 된다. 결국 함정에 빠져 모조리 전사하고 단 한 명만 살아남게 된다. 노블레스 오블레쥬.

 

여기서 섣부른 독자는, 공화정은 사분오열하는 까닭에 군주제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오판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시기의 로마가 내부적으로 분열된 까닭은 정치제도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경제제도 때문이었다. 즉 국가의 부를 골고루 분배하거나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보다는 귀족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국가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만약 공화제가 아니었다면 시민은 불만을 표현할 기회 자체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로마 귀족 중 현명한 사람이 몇 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토록 심각한 내분 위기는 방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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