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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스바트와 바이마르 중간 지점에 선 괴테: 1823년 9월 5일, 괴테의 <마리엔바트 비가>

라틴 어, 프랑스 어 등에 비해 거칠고 세련되지 못해 변방어에 불과했던 독일 어를 비로소 예술과 문화를 논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독일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고 독일 인들로 하여금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거장 괴테. 로마 황제처럼, 그가 죽은 후 신의 반열에 올려놓자고 해도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성 싶은 초인 괴테. 그런 인물에게도 인간적 결함이나 도덕적 흠결이 있을 수 있을까?

마리엔바트 비가는 괴테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다. 1822년 2월, 건강이 나빠진 괴테는 휴양지 마리엔바트로 요양을 떠난다. 거기서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15년 전 괴테가 사랑했던 여인의 딸, 19세의 울리케 폰 레베초프. 당시 괴테의 나이는 74세였다. 손녀뻘 되는 미성년자를, 그것도 그가 사랑했던 여자의 딸을, 성경에 그 어미와 딸을 동시에 취하지 말라고했음에도, 고목에 새순이 돗듯이 회춘한 대신 노망기가 발동한 이 대문호는 도덕적으로 만인의 비난을 사는 것이 당연한, 미친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에 눈 먼, 눈에 콩깎지 낀 이 분별없는 늙은이는 친구를 통해 옛 애인이었던 여자에게, 당신의 딸을 아내로 주십사 청하게 한다. 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거절이었고, 괴테는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 끝에 탄생한 것이 마리엔바트 비가이다.  그가 40년 전에 쓴 <타소>의 한 구절이 그를 창작의 길로 인도했던 것이다.

 

인간이 고통에 빠져 침묵하게 될 때

내 고통받음을 말할 재능을 어떤 신이 내게 주었네

 

괴테는 이어서 <빌헬름 마이스터>, <파우스트> 등의 대작을 남긴다.

대작 창작의 원천은 광기 혹은 노망?

 

황금의 땅 엘도라도: 1848년 1월, 골드러쉬-캘리포니아

31세의 요한 아우구스트 수터는 파산, 각종 범죄, 처자식 등으로부터 신대륙으로 도망친다.

맨주먹으로 갖은 고생을 한 끝에 대 농장주가 된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이다.

잊고 있었던 처자식을 신대륙으로 부른다.

그런데 그의 땅에서 황금이 발견된다. 노천에 황금이 널려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루 아침에 신대륙 최고 갑부가 된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으른 자들이 그의 농장으로 몰려온다. 골드러쉬.

수터의 모든 농부들은 보습을 버리고 황금사냥을 떠나버렸다. 수터의 농장은 폐허가 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금을 찾아 몰린 떼거지들이 그의 농장을 마음대로 파헤치고 있었다. 수터는 하루 아침에 파산지경에 몰린다.

수터는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다. 저 무지막지한 작자들이 자신의 땅을 마구 파헤쳤으니 그 대가를 치루고, 자신의 땅에서 발견된 황금의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수임료만 받으면 그만인 약아빠진 변호사들이 승소할 거라는 믿음을 끊임없이 부여하고, 수터는 자기 아들 중 가장 똑똑한 놈을 골라 법률 학교에 보낸다. 법원은 수터의 손을 들어준다, 그러나 그에게 배상의무를 지게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킨다. 두 아들 중 하나는 살해되고 나머지는 자살한다. 그의 아내는 신대륙 여행 중에 이미 피로로 죽었다.

이 불행한 사나이는 그 후로도 20년 간 항소를 하며 모든 재산과 인생을 탕진한다.

만약 그의 농장에서 금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 사나이는 죽을 때까지 호의호식하며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음에서 건져올린 삶: 1849년 12월 22일, 세메놉스크 광장-사형 직전의 도스토예프스키

이 파트는 서사시 형식이다.

러시아 혁명에 잠시 몸담았다가 체포되어 사형판결을 받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 직전에 가까스로 풀려난 순간을 장엄하게 묘사했다.

츠바이크는 딱 그 순간만 묘사했는데 그 후의 이야기도 좀 해야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풀려난 이후 반혁명인사로 돌변한다. 그의 작품 중 <악령>은 혁명정신의 티끌을 찾아내 떠벌림으로써 혁명을 부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으로 이야기된다. 이런 이유로 조선 혁명가 '김 산'은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강하게 비판하고 톨스토이를 옹호한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나 역시 변절자의 글보다는 톨스토이를 좋아한다.

차라리 도스토예프스키는 풀려나지 아니한만 못하지 않았을까?

 

대양을 건넌 최초의 말: 1858년 7월 28일, 대서양 해저 케이블 설치

이 재미있는 일화를 이야기 하기 전에 더 재밌는 천문학 이야기를 해보자.

만약 인류가 드디어 빛의 속도로 비행하는 우주선을 만들었다고 치자. 당신은 비즈니스 관계로 지구에서 광속우주선을 타고 안드로메다에 있는 프록시마 켄타우로스 알파 별에 방금 도착했다. 멋진 호텔에 여장을 푼 당신은 지구에 있는 애인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지구에 메세지를 보낼 수 있을까? 정답은 편지를 써서 우체부에게 전달한 후 우체부가 광속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날아가서 편지내용을 무선으로 보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메세지(정보)는 전파의 형태로 보낸다. 전파는 빛보다 빠르지 않다. 지구에서 보낸 전파가 안드로메다에 있는 프록시마 켄타우로스 알파 별에 도착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광속우주여행의 시대가 닥쳐도 정보를 광속만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면 다른 은하계와 통신하기 위해서는 우체부가 필요해진다는 뜻이다.

 

전기가 발명되고 무전시대가 열렸다. 전화선을 타고 전달된 정보는 실시간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라도 전달되었다. 다만 그곳이 전화선을 가설할 수 있는 육지라면...

유럽과 신대륙은 대서양이라는 지리적 공간으로 고립되어 있다.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편지를 전달하는 유일한 길은 우체부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직 무선통신이 불가능한 시대였기에...

사이러스 필드라는 위대한 창발자가 등장한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이미 재벌이 된 상태였고, 기스본이라는 영국인 기술자가 대서양 횡단 통신 케이블 사업을 제안하자 귀가 솔깃해진다. 그는 자신의 전재산과 남은 인생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업에 투자할 것을 다짐한다.

첫번째 시도는 기술자들의 조언에 따라 산더미만한 통신케이블을 두 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양 대륙에서 동시에 출발하여 케이블을 해양으로 내려보내면서 대서양 중간 지점에서 합류하여 통신선을 연결시킨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실패.

두번째 시도는 두 척의 배를 대서양 중간에서 출발시켜 양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케이블을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역시 실패.

세번째는 거대한 한 척의 배에 케이블을 싣고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케이블을 설치하려 했으나 역시 실패.

이쯤 되면 위대한 창발자 사이러스 필드가 뜻을 꺾을만 한데 그는 잃어버린 본전 생각 때문에 판을 떠나지 못하는 노름꾼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마침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대역사가 성공에 이른다. 사이러스 필드는 영웅으로 추앙된다. 영국 여왕이 미국 대통령과 실시간으로 대화한다. 사이러스 필드의 성공을 축하하는 축제를 벌이는 날, 공교롭게 케이블에 고장이 생겨 먹통이 된다. 사이러스 필드는 또다시 하룻밤 사이에 영웅에서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그로부터 6년 후 의지의 사이러스 필드는 마침내 완벽한 해저 케이블 가설공사를 성공시킨다. 다만 이 때는 떠들썩하던 여론이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가운데 그는 혼자서 자축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인간의 의지는 광기인가, 집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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