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서 흔히 보는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라는 자의식도 없고, 젊은 시절 세상을 바꾸는 활동가를
꿈꿨고, 그 과정에서 좌절도 하고 우울증에 걸려 분노를 저기에게 쏟아 내기도 했으며 의사가 되면
개업을 해서 돈을 많이 볼거리는 생각이 든다는 앵커의 질문에 '저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것
같아요. 이런 활동을 하면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저를 만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거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아픔과 아픔이 만나면 두배의 아픔이 아니라
거기서 희망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다.
우울증.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 우울할 일이 있냐?'는 친구의 질문이 무색하리만치 그는 심란 우울증을
겪었다. 운명 앞에 좌절했고, 좌절을 스스로를 가두기 시작했으며, 세상을 피해 자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숨어 버렸다. 이때 그는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공포는 의외로 쉽게 사람에게 다가온다.
부지불식간 간에 찾아와 그대로 손을 잡아 끈다. 이 손을 놀지 못하면 그냥 죽는 것이다. 삶의 의미
조차 없기에 무기력하고 만사가 귀찮았지고 세상을 향해 공격적이 된다. 저자는 그런 우울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왔다. 터널은 희망이다.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기에 아무리 길어도 반드시 출구가
나온다. 양양터널이 개통 되었을 때 그 길을 지나며 '죽음'을 생각한 친구가 있다. 다행히 그 터널은
11km가 끝이다. 이렇듯 긴 터널을 지나 그는 새로운 길에 들어 선다. 그의 삶의 변화는 해외구호
활동가가 되면서 시작된다.
서아시아의 최빈곤국인 아르메니아(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가 마지막으로 머무른 곳인 아라라트
산이 있는 나라로 1991년 소련의 붕괴 후 독립)에서 에이즈 보다 무섭고 치사율이 높은 '다재내성
결핵'(중요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결핵 때문에요 생기는 병으로 한웅큼의 약을 하루 두번 2년을
먹어야 치료가 가능)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는 이곳에서 국립결핵병원으로 보낸 환자가 정신병동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존엄'에 대해 생각했다. 평화롭게 존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리고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단단하고 개인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곳을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아르메니아에서 만난 어떤 죽음도 자유롭지도 평화롭지도 못하다. 심지어
죽음의 부조리한 민낯은 슬피 우는 것 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Ebola is real'. 2014년 '사자의 산'이라는 이름의 시에라리온에 에볼라가 창궐했을때 '국경없는 의사회'가
그곳에서 구호 활동을 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저자도 그곳에 있었다. '몸에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는
괴질'인 에볼라는 의사들 마저도 접근을 하지 않으려 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고(실제 초기 치사율은
90%였다) 내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 의사들도 적은 척박한 시에라리온에
저자는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죽음과 마주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런 그는 '한국인
최초의 에볼라 의사'라는 수식을 받지만 정작 본인은 '시에라리온에 온 700번째 의사'라고 말한다. 둘다
맞는 말이다. 최초이긴 하지만 700번째이기도 하다. 어쩌면 국제구호에 관한 우리의 현주소일수도 있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죽음을 경험한 그는 이제 죽음이 아닌 '살아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다. 남들이 가지 않고 남들이 걷지 않은 그 길을 먼저 걷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큰 돈을 벌지
않아도 그의 길은 계속 될것이다. 나는 그의 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