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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도서] 팡세

블레즈 파스칼 저/김화영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중학생 때 한창 겉멋이 들어서는 모 출판사의 세계명작선을 도장깨기한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겉멋이 잔뜩 들었던 한 친구와 같이 이 책 저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 친구가 골라온 책이 [팡세]였다. 어릴 때 읽은 팡세는 내용도 잘 모르겠고 그저 옛날 아저씨가 혼자 중언부언 쓴 메모를 모아놨다는 느낌이라 중간에 읽다가 덮어버렸는데 이상하리만치 미련이 남아서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도전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팡세]의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길래 흥미가 돋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나이 먹고 읽으니 25년 전 옛날보다는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 이 책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읽을 수록 와닿는 것이 많을 것이다. 살면서 자기 생과 세상의 존재가치에 대해 생각을 종종 해본 사람, 그리고 자기 잘난 맛에 살기보다도 나보다 더 위대한 누군가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겸손해지기 시작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나 무신론을 넘어선 '나신론'자, 당장 자기 앞에 산적한 일감에 치여 하루하루 버겁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의지로 종교에 귀의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는 각별할 텐데, 종교 안에서 조물주를 뜨겁게 만난 경험을 했던 사람이라면 파스칼의 표현 하나하나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와닿으리라 생각한다. 그도 하느님을 그렇게 만났고 그 만남을 잊고 싶지 않아 옷섶에 그 날의 조우를 글로 적어 꿰매넣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나오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하는 유명한 구절도 특히 기쁘게 읽었는데 우리가 어릴 적 도덕 교과서에서 한 줄 외우고 지나가며 멋대로 의미를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설명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스스로 갖추고자 했던 저자의 삶의 자세가 이 한 문단에 다 응축이 되어있다고 느꼈고, 마찬가지로 피조물의 하나인 자로서 눈물이 핑 돌았다. 표현은 담담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겸손과 순종은 아는 사람만 알리라. 

  개신교 계열 출판사에서 개신교인 번역자가 번역한 거라 종교 없는 이들이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좀 낯설 수 있다. 나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이라 중간중간 인용되는 개정개역 식의 성경표현도 익숙하게 넘어갔으나 (물론 가톨릭 성경으로 다시 한 번 읽었다. 그 편이 더 자연스러운 문맥으로 와닿기 때문에.) 개신교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는 좀 난이도가 있는 책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부분 빼고는 전체적인 번역도 큰 흠 없이 깔끔하고 번역된 문장의 흐름도 비문 없이 자연스럽다. 각 챕터 서문마다 번역자가 해제를 넣어준 것도 정성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예전에 읽다가 덮어버린 책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양장본이라 출근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도 불편하지 않다. 여러 모로 예쁘게 잘 나온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종교인에 특화된 추천 하나 더 하자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가톨릭 계열 출판사의 제목)]/[그리스도를 본받아(개신교 계열 출판사의 제목)]을 연달아 읽는 것도 좋다. 그러면 사순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순절의 그 느낌 그대로 이 더운 여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4월 사순/부활 마치고 이제 대림절까지 꽤 시간이 남았는데 원래 사순 이후부터 대림 전까지가 기독교인들에게는 흐트러지기 쉬운 계절이다. 열심인 학생들이 방학 동안에도 자유롭게 책 읽고 공부하며 긴장을 풀지 않듯이 열심인 신자들도 이 시기에 특강처럼 이 두 권 연달아 읽으며 자세를 다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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