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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삼국지 1

[도서] 여류 삼국지 1

양선희 편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삼국지- 읽어보지는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을 들어보았을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나도 어릴 적 계몽사의 빨간 책으로 한 권짜리 삼국지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계몽사의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삼국지의 긴 내용을 한 권으로 축약시켜 놓았기 때문에 세세하지는 않았지만 굵직굵직한 사건와 인물 위주로 전개되었는데, 이 삼국지를 어린 나이에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삼국지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 당시 나에게 가장 감흥을 안겨주었던 인물은 단연 유비였는데, (소위 말하는 '주인공 버프'가 있기도 했지만) 당장 소득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일희일비하지 않고 때를 기다려 몸을 낮출 줄 알며, 성격이 괄괄한 장비와 관우를 잘 다독여가며 온화하고도 현명하게 처신하는 유비의 모습이 굉장히 멋있다고 느껴졌다.

 

이 여류 삼국지를 펴보기 전에는 '여성이 쓴 최초의 삼국지'라는 수식어 때문에 '아- 남성들만의 삼국지가 아닌, 여성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삼국지인가 보구나' 했는데 그 예측은 반만 맞았다. 여류의 여는 女가 아닌 余였다. 여성이 썼기에 기존 삼국지보다 여성들에게 친숙하게 읽힐 수 있는 삼국지도 맞지만, 저자가 조직생활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을 녹여낸 '내 스타일의 삼국지'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1권을 찬찬히 읽어보니, 과연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삼국지답게 남성성을 부각시키는 표면적 전투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계략, 처세술 등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 솔직히 기존 삼국지들을 읽다 보면 쩌렁쩌렁 목소리를 울리며 기싸움을 하는 장수들의 전투가 여러 번 반복되어 (인물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면 그 전투가 그 전투 같고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뒷장으로 가면 전투 부분은 휘리릭 책장을 넘기기 일쑤였는데 이 책은 전투 부분이 길지 않아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한편 소설의 서술체가 '~했다'가 아닌 '~한다, 하고 있다'식의 현재진행형이어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계속 읽다 보니 마치 눈 앞에서 등장인물들이 연극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술체가 현재진행형이라 해도 문장이 어렵고 쓸데없이 길었다면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되도록이면 단순하고 쉬운 어휘를 사용하며 문장이 간결했던 것도 아마 이 생생함에 한 몫을 더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엇보다 독특했던 점은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현대식 단어들. 엽기적인 하후돈에서 '엥?'하고 나니 마이너리티, 포커페이스, 카리스마, 벤처, 팔랑귀, 정치적 쇼맨십 등 현대에서나 쓰일 법한 단어들이 많이 나왔다. 아무래도 삼국지가 고전인 만큼 형식과 시대적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런 단어들이 사용되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겠지만 글쎄- 나는 꽤 재미있다고 느꼈다. 저자의 의도가 단순히 삼국지라는 작품을 문학적으로 집필하는 것이 아닌, 현대 조직생활에 시사하는 바가 있도록 집필하는 것이었기에 아마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만약 재미를 주고 현대식으로 이해를 돕는답시고 이런 단어들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다면 인터넷 소설을 보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내용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이런 단어들이 튀어나왔기에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시 삼국지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과거 나는 덕이 있고 현명한 유비에게 마음이 끌렸었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후 다시 이 책을 읽는 지금 나는 지략가인 조조와, 유비의 뒤에서 묵묵히 그를 보필하는 관우에게 끌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삼국지의 매력 중 하나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그렇기에 그동안은 눈에 띄지 않았던 새로운 등장인물에게 매료된다는 점인 것 같다.) 조조는 비록 유비와 같은 덕을 지니거나 인의예지를 숭상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위기상황에 발빠르게 대처할 줄 알고 때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정이나 의리에 연연해하지 않는 냉철함을 지녔다. 이러한 조조의 과감함과 유연성이 어우러진 전략가적인 면모에 끌린다는 것은 내가 이제 세상의 때가 탄 탓인가 하는 자문도 해 보지만, 세상을 이끄는 리더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기에 내 마음도 자연스레 유비에게서 조조로 옮겨지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매력적인 등장인물 관우. 관우는 의를 중시하며 따라서 아무래도 조조보다는 유비에 가까운 인간상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나어린 유비에게 몸을 낮추고 이인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보필하는 모습은 조조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조조가 섬기고 싶은 리더라면, 관우는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인물이랄까. 실제로 삼국지의 내용이 전개되다 보면 관우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조조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아마 조조에게 있어서도 관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고 싶은 오른팔이 아니었을까. 유비에 대한 관우의 충직함 때문에 결국 그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 조조가 관우를 회유하여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가 아닌 조조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여류 삼국지 1권을 읽고 나니, 그동안 순전히 재미로만 읽었던 삼국지가 단순히 역사와 난세 영웅들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의 각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아주 아주 재미있는 자기개발서를 읽는 기분이었달까. 그동안 삼국지를 어려워하고 멀리하기만 했던 사람이라면 새롭게 재해석된 여류 삼국지를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 여류 삼국지에 소개된 삼국지 77훈 중 인상 깊었던 구절

 

11. 아이디어란 생각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실행되어 효력을 발휘해야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16. 몸을 굽히고 분수를 지키며 하늘이 주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감정에 휘말려 헛되이 목숨을 걸고 일을 도모하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아야만 하늘도 기회를 주실 수 있다.

25. 충의에도 기술은 있는 법인데 약하고 무능한 군주에게 우직하게 충성한 자들의 최후는 처참하다. 하지만 충의의 가면을 능란하게 썼다 벗었다 하는 자들은 당대를 호령하는 영웅이 된다.

58. 실패도 해 보고 스스로 더러운 일도 해본 자만이 세상의 두려움을 알고, 자신도 의심하여 한 번 더 주변을 챙기는 법이다. 나이 예순이 다 되도록 오직 위대한 길로만 걸어온 자는 결코 자신을 의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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