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경영, 창업, 기업 같은 말들이 나와는 별 관련이 없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했고 내가 앞으로 할 일은 기업을 차려 금전적인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은 가치 창출에 이바지하고 있음이 틀림없을 테지만, 뭐랄까... ‘창업’을 해서 회사를 ‘경영’해나가는 것은 뭔가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자금을 굴리는 일을 하는 것처럼 여겼던 것 같다.
보통 자기 사업체를 차리고 경영자 자리에 있다고 하면 사장님인 셈이고 사장님들은 강한 스킨 냄새를 풍기며 손목에는 번쩍이는 금시계를 차고... 사업 이라는 것에 대해 대충 이런 식의 빈약한 상상을 해왔던 나였다. 그래서 TV에 나오는 성공한 기업인들이 그냥 다른 세계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할 성 싶지도 않고 나와 별다른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말이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셨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커다란 재앙이라도 닥친 듯 부들부들 떨며 아버지를 만류했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질 것이 두려웠고 사업의 성공보다는 사업에 실패했을 때의 뒷감당이 두려웠다. 나에게 있어 사업은 ‘남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창업이라는 것이 그렇게 꼭 어마어마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쉽게 ‘해보자’하고 나설 수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니었지만. 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시작해야 하는 일인 만큼 여전히 두려웠다. 그러나 적어도 예전처럼 ‘창업? 사업? 나와는 별 상관 없는 단어인데.’하며 멀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이 책의 저자 송정현씨와 그와 함께한 팀, 그리고 그가 세계 각국을 돌며 만나본 젊은 청년창업가들의 이야기가 그리 별세계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청년창업가들은 대부분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정도였고 거창한 자본금을 갖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part1에 담겨있는, 저자와 팀원들이 후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만 보아도 그랬다. 내가 대학생 때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기업가 정신을 확산시킴으로서 세상에 기여하리라는 저자의 포부를 보며 창업은 일단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하고 싶은 목표와 계획이 분명하고 또 조밀하게 짜여있다면 마냥 두려워만 할 일은 아니었다.
part1에서는 저자가 G20국들을 돌며 청년창업가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의 계기가 된 에피소드들과 프로젝트를 떠나기 전까지의 과정이 짤막하게 그려진다. part1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의 실행력과 결단력에 놀랐다. 대전역에서 무심코 본 노숙자들을 보고 ‘노숙자들의 삶은 어떨까?’라는 궁금함을 품은 후 몇 달이 지나고 그것을 진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운 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것을 탐구하기 위해 진짜 행동에 나선 적은 별로 없었다. 나중에 알아봐야지, 하다가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지금은 귀찮으니까 하는 핑계로 궁금증을 미뤄두었다가 역시 기억 속에서 사라지곤 했다. 때로는 직접 뛰어들어 알아볼 기회가 생겨도 ‘에이, 뭘 그렇게까지-’하며 물러서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있어 저자의 적극적인 행동력은 부럽기도 했고 갖고 싶기도 한 강점이었다.
이후 전개된 part2에서는 저자가 인터뷰한 글로벌 청년창업가들 20명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이 중 나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었다. 먼저 사업아이템을 성공시킨 전략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스티커처럼 붙여서 사용하는 화이트보드인 ‘화이티 보드’를 만든 사치 스윈스키와 고객들의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쿠라미 서비스를 런칭한 마놀로 아브릭냐니였다. 먼저 사치 스윈스키는 앞서 소개된 두 사람과는 달리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매우 보편적이고 평범한 제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사진과 짧은 에필로그가 실린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나는 정말 궁금했다. 도대체 화이트 보드를 뭘 어떻게 했길래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을까. 뭐 어떻게 개조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물건인데다 이미 시장을 점유한 대형사업체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다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어서야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가 성공을 거둔 방법이 너무나 간단해서 놀랐다. 이제껏 보지못한 신기술을 도입해 만든 것도 아니었고 기존의 제품과 용도가 상이하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독창적이었다. 간단하지만 조금 시선을 틀어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자 길이 열린 것이었다.
>익숙한 제품시장에 뛰어들어 화이티 보드를 만든 사치 스윈스키
한편 쿠라미 서비스를 런칭한 마놀로 아브릭냐니 역시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으로부터 사업 아이템을 착안해냈다. 며칠 전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갔다가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대기시간으로 날려버린 기억과 함께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은행 의자에 앉아 마냥 잡지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가 생각났다. 마놀로는 은행이나 영화관에 방문한 고객들이 지루하고 번잡스러운 시간을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며 흘려보내는 대신 간단한 서비스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누구나 겪는 불편함이기에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었지만 누구도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건과 흔히 접할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 참신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한 사치 스윈스키와 마놀로 아브릭냐니의 사례는 사업이 꼭 거창하고 어려운 것, 남들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동떨어진 것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나머지 두 사람은 여성창업가들이었다. 바로 아이티포유의 창업가 줄리아 아노첸코와 영국에서 예술제본가로 활동중인 김영신씨가 그들이었다. 사실 줄리아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등장한 청년창업가들의 모습은 대부분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심 기가 죽었다. 당장 창업을 해볼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창업하는 사람들은 인맥도 중요하고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니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겠지’ 싶으면서 다소 정적인 내 성격과 비교가 되었다. 그러다 줄리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부끄러움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소녀, 자신이 이룬 성과조차 부끄러워하며 말을 하는 평범하고 조용한 여인. 그런 그녀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고 이제는 가장자리가 아닌 삶의 중심에 우뚝 선 과정을 보며 나는 대리만족과도 같은 통쾌함과 더불어 나도 이제는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 더 이상 내성적인 성격을 핑계 삼아 변명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수줍은 아이였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해나감으로써 인생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경험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해냈다. 그렇다면 내도 하지 못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여성 프로그래머 리더가 된 줄리아 아노첸코
마지막 인물 김영신씨의 예술제본가 라는 직업은 다소 낯설었지만 매력적이었다. 나도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왠지 더 눈길이 갔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면서도 사실 요즘 인터넷과 휴대폰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전자책들이 출판되면서 점점 더 종이책들은 사양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 책과 관련된 산업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 책을 다루는 걸 직업으로 삼기에는 미래가 불투명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엘리트의 삶을 내던지고 먼 이국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잡았다. 예술 제본가와 실내 인테리어 전문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당차게 영국으로 떠나 그 곳에서 무보수로 일을 하고 또 다른 관심분야에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그 누구보다 술을 즐기면서 주류회사의 브랜드 대표를 맡은 천닝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심장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라.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명을 하며 내 자신을 멈춰두었는지 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이래서 좀 곤란해, 저래서 좀 힘들어 하며 망설이던 내 변명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신명나게 뛰어든 청년사업가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핸디캡을 기회로 삼았고 가장 어려운 시기가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여기며 더욱 자신을 독려했다. 이 책이 다른 책들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바로 그런 청춘의 패기와 열정이 책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기존에 유명세를 타며 이미 성공한 사업가들이 아닌, 여전히 도전 중이며 현재진행중인- 이룰 게 앞으로도 많은 사업가들을 소개했고 그들의 눈빛은 흑백의 사진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앞으로의 삶을 지금까지처럼 마냥 흘러가게 둘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의지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독자는 꼭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나처럼 현실에 찌들어가고 꿈을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아니 꿈을 뒷전으로 잠시 미뤄둔 사람들에게도 좋은 자극제이자 영양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상깊었던 구절
71-72p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내 손에서 화살은 과녁을 향해 떠났다. 몇 점에 꽂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단, 과녁을 쐈다는 것이 그때는 중요했다. 과녁에 맞지 않고, 엉뚱한 곳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녁을 향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그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85p.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면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 시기라는 것이다.
95p.
안락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찾아 떠나자. 지금은 어제의 나를 죽이고, 매일 새로운 나로 거듭나야할 찬란한 아침인 것이다.
182p.
“자신의 삶에 미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행복뿐만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까지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는, 풍요로운 삶이 되었으면 해요. 그 모든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거든요.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더 재미있고 설레죠. 어차피 알 수 없다면 희망을 한번 가져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193p.
매 순간 진심을 담아서 노력하는 과정이 보다 큰 기회를 가져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