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지금은 튀르키예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아요.
개그의 소재가 된 아이스크림 정도, 딱 그만큼의 관심이 전부였어요.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페리를 만나는 순간 완전히 달라졌어요. 페리로 인해 낯선 세계 속으로 쑤욱 빨려들어간 느낌을 받았어요.
이스탄불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만났어요. 거창한 시대정신을 떠들지 않아도 평범한 여성의 삶 속에 투영된 시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브의 세 딸》은 튀르키예의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엘리프 샤팍의 장편소설이에요.
소설은 2016년 이스탄불로 시작하여 1980년 대, 1990년 대, 그리고 2000년 옥스퍼드까지, 씨실과 날실처럼 페리의 인생 이야기와 튀르키예라는 나라가 겪은 격동적 혼란을 촘촘하게 엮어가고 있어요. 2016년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페리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좋은 아내, 좋은 주부, 좋은 시민,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무슬림의 모습이에요. 끝없이 자기 검열을 하는 페리, 저자는 바로 그런 이유로 아쉬운 것 하나 없이 존중받으며 살던 만 서른다섯 살 여자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어느 평범한 날에 예상치 못했던 영혼의 공백과 마주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해주고 있어요. 잔잔하고 평온한 삶에 던져진 파문...
페리와 딸 데니즈는 부유한 사업가의 해안가 저택 만찬에 초대를 받아 가는 중이었어요. 이스탄불의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정차한 사이에 도둑이 핸드백을 훔쳐 달아났고, 그녀는 쫓아가 몸싸움을 벌였어요. 페리는 왜 가방을 찾기 위해 무모한 추격전을 했을까요. 그깟 짝퉁 핸드백, 딸은 엄마를 말렸지만 핸드백 속 지갑에는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감춰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있었고, 그건 아주 오래된 추억이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담고 있어요. 그 사진으로 인해 딸 데니즈는 엄마가 9.11 즈음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를 다녔다는 걸 알게 됐고, 만찬에서 그 사실을 말하는 바람에 페리의 비밀이 거의 드러날 뻔 했어요. 엄마를 무시하는 데니즈의 태도는 사춘기 반항일 텐데 페리의 현재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요. 한때는 엄마도 사춘기 소녀였고, 똑똑한 학생이었다는 걸, 그건 비밀도 아닌데 딸은 내심 놀랐어요. 엄마는 그냥 엄마일 뿐이라고, 그게 여성에게 씌워진 족쇄인 것 같아요.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유를 빼앗긴 채 위대한 모성애를 강요당하는 상황, 엄마는 하나의 역할인 것이지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니에요.
페리는 어릴 때부터 광신도 엄마의 알라와 세속적인 아빠의 하나님 사이에서 혼란스러웠고, 부모의 싸움에 질려 자신보다는 주변을 신경쓰느라 애늙이가 되었어요. 교육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아빠의 바람대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한 페리는 이집트 출신의 미국인 모나와 이란 출신의 영국인 쉬린을 만나 친구가 되었어요. 부모의 종교 싸움 때문에 늘 신에 대해 궁금했던 페리는 아주르 교수의 수업에 매혹되고 말았어요.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주제들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어요. 적어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분열과 갈등을 멈추고, 세 여성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항상 기억해야 해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자유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