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냉장고에 넣어 둔 달걀 한 판, 뭘 해먹을까라는 생각 정도.
진짜 달걀 자체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어요.
근데 이 책 때문에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됐어요.
《나는 달걀입니다》는 시오타니 마미코의 그림책이에요.
유아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어른들에게 더 도움이 될 책인 것 같아요.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아주 특별한 달걀 이야기예요. 읽으면서 신기했어요. 그저 그런 달걀로 보였던 녀석이 점점 세상에 하나뿐인 달걀로 보였거든요. 왜 그럴까요.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을 때는 다른 달걀과 구분할 수 없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렇게 누워만 있는 걸까?' (6p)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어나서 걷고 깡충깡충 뛰고 빙글빙글 돌 수 있는, '움직이는' 달걀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 달걀은 "나는 달걀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움직이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다른 달걀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톡 톡 톡 한참을 두드려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억지로 깨우느라 한 녀석을 굴렸더니 벽에 탁 부딪혀 금이 가고 말았어요.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죠. 눈을 뜨면 멋진 일이 생기는데!
금이 가면 달걀부침이나 오믈렛이 되는 수밖에 없거든요." (10p)
아마 깨진 달걀은 이 말을 듣지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들었어요. 감고 있는 눈을 뜬다면 멋진 일이 생긴다는 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누군가 나를 함부로 굴려대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어요. 달걀부침이나 오믈렛이 되어 누군가의 입 속으로 들어가겠죠. 입 속으로, 라고 되뇌여 보니 최근 봤던 드라마 대사가 생각났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들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근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 중 하나야. 포식자 아니면 먹이, 먹느냐, 먹히느냐지." 조폭 두목이 한 말이라서 좀 극단적이긴 한데, 긍정적으로 풀어보자면 삶에 대해 능동적으로 사느냐, 아니면 수동적으로 사느냐가 아닐까 싶어요. 흥미롭게도 그 드라마의 제목이 '내 이름'이에요. '나'를 지칭하는 이름, 그 이름을 통해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네요.
달걀은 금이 간 달걀을 보면서 달걀은 딱딱한데 깨지기도 쉽다는 걸 알게 되고, 푹신푹신 말랑말랑한 마시멜로를 깨웠어요. 그때부터 달걀은 마시멜로와 친구가 되었어요. 매일 과자를 나눠먹고 빈둥빈둥 지내다가 너무 심심해서 산책을 했고, 부엌 밖으로 나게 됐어요. 부엌 싱크대를 내려가 마룻바닥 너머 거실로 나갔기 때문에 부엌은 좁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화분, 쿠션, 시계 등등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에, '나는 어떤 달걀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세상이 넓다는 걸 모른 채 인생이 끝났을 거예요. 달걀과 마시멜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이제 다음 이야기는 내 차례, 내 이야기를 들려줘야 해요. "나는 OO 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출발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