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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걸 Lab Girl

[도서] 랩걸 Lab Girl

호프 자런 저/신혜우 그림/김희정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랩걸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발간 되었을 무렵은, 한창 식물과 보태니컬 아트에 관심이 많아지던 시기였다. 매력적인 식물 세밀화를 표지로사용한 랩걸이라는 책을 내용도 자세히 모른채 알게 되었다.

구매하고 곧장 몇 페이지를 넘겨 보았으나, 그 당시에는 과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나오고 빈틈없이 까맣게 줄 글이 가득한 이 책의 내용을 소화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금새 덮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 책을 얼마 전에 다시금 읽으려고 펼친 것이다.

몇 년사이, 그래도 긴 글 읽기에 조금은 익숙해진 것인지, 그때와는 달리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특히 저자가 가진 식물에 대한시선과 인식이, 여지껏 생각해온 방식과는 달라서인지, 아주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사람들이 만들지 못하는 몇 남지 않은 것들 중 하나를 본 것이다. 당신의 시야에 들어온 그것은 적도 근처에서 4억년 전에 발명된 물건이다.’

프롤로그 p.10

우리 주변에 있는 식물에 대해 처음 소개한 저자의 이야기다.

사람이 만들지 못하는 몇 안되는 것, 바로 식물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이 책은 크게,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포함해 3개의 큰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마저도 식물과 닮았다.

 

1부 뿌리와 이파리

2부 나무와 옹이

3부 꽃과 열매

 

이렇게 커다랗게 나눈 식물의 생애와, 저자의 일생을 비교, 비유하여 교차해가며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참 식물학자 다운 글이 아닌가 싶다.

 

 

 

 

1부에서는 제목에서 연상할수 있듯, 식물의 씨앗과 뿌리와, 뿌리를 내린 후 갖는 첫번째 이파리에 대한 이야기 사이사이에, 과학자가 되기까지, 호프의 어린 시절과, 여성으로서 과학을 하는 것, 취직이나 결혼대신 공부를 하기위해 해온 일들, 그러던 와중에 만나게되는 평생의 친구, 온전한 편안함을 느끼는 곳을 갖기위한 그녀의 고군분투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준 것이 과학이었다.’

1부 뿌리와 이파리 1장 p.33

지금보다도 더 여성 과학자가 없다시피 한 시절, 과학교수였던 아버지와, 아이들을 낳고 나서 늦게라도 원하던 공부를 계속 했던 어머니 아래에서, 호프를 가장 호프답게 느끼게 해 주었던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사람 한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1부 뿌리와 이파리 3장 p.52

진짜 원하는 공부를 하게되기까지 호프는 열심히 살아가며 또 기다렸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씨앗과도 같았던것 같다.

 

‘이파리들은 당을 만든다. 살아 있지 않은 무기물에서 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주에서 식물이 유일하다.’

1부 뿌리와 이파리 7장 p.97

 

 



 

 

2부 나무와 옹이에 접어들때쯤, 호프와 호프의 단짝친구 빌은 아주아주 열심히 성장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나무에 빗대어 보여준다.

식물과 버섯이 공생하여 살아가듯 빌과 호프도 함께 모든 것을 해내고, 임기응변의 달인 덩굴이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만들어낸 어떤환경에서도 살아내는 잡초와 같이, 온갖 어려움과 가난을 겪으면서도 학계의 인정을 받고 예산을 따내기 위해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3부 꽃과 열매에서 나오는 학자들은, 식물들이 꽃이나 열매를 맺기 전에 성장을 멈추고 일부 영양분을 꽃과 열매를 위해 재편성하는 식물들에 대해 놀라워하며 그것에 대해 연구한다.

동시에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호프는 영혼의 단짝 클린트를 만나고, 또 아이를 갖게 되면서 점차 안정적인 생활을 찾아가며 오히려 더 연구에 성과를 얻게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 자란 나무가 자기 아래의 어린나무들을 키워내기 위해, 깊은 곳에서 빨아들인 물을 얕은 곳의 뿌리로 다시 뿜어내어 세력이 약한 어린나무들에게 수분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어느 인간보다 한치도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수십년 동안 식물을 연구한 후 나는 결국 그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이전보다 더 깊이 그 사실을 이해하고 끝날 운명을 타고 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에필로그 p.399

 

 

저자는 아이를 기르며, 또 식물들이 서로를 위해 어떤 노력과 희생을 하는지 알게되면서, 다음과 같은 고민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30억년 동안 진행된 진화 과정에서 출현한 생물 중 단 한 종의 생물만이 이 모든 과정을 뒤집어 지구를 훨씬 덜 푸른 곳으로 만들 능력을 지녔다.’

3부 꽃과 열매, 1장 p.255

‘이런 속도로 건강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계속하면 지금부터 6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지구상의 모든 나무들이 그루터기만 남을 날이 올것이다. 우리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 엄청난 비극에 대해 누군가는 걱정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자손들을 황폐한 폐허에 남겨두고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더 병들고, 굶주리고, 전쟁에 시달리고, 심지어 녹색이 주는 소박한 위안마저도 박탈당한 채 사는 세상을 남기고 떠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에필로그 p.400

 

 

나는 저자가 단순히 본인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책 말미를 읽으며 하게 되었다.

식물과 자연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알게된 그 위대함과 놀라움, 그런 존재를 엄청난 속도로 파괴하고 있는 우리들 인간이 더 늦어버리기전에, 식물들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지켜야한다고 말하고 싶고, 말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이런 긴 글을 시작하게 된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 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3부 꽃과 열매, 2장 p.272

 

긴긴 글을 다 읽고보니, 저자인 호프는 나무와 과학과 그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것들을 그녀의 방식으로 열렬히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저자는, 온라인에서 보았던 사진 속 미소만큼 분명히 행복해보였다.

 

이 책 다음으로 쓴 저자의 책, ‘The story of More’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다음으로 나에게 해줄 이야기는 또 어떤 이야기일까?

새로운 기대감을 채우기 전에 이번에 읽은 책, 랩걸을 꾹꾹 내 속에 눌러 담아보고 싶었다. 오래오래 마음 속에서 남아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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