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듣고 있던 남강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전약국이 아들래미도 약국시키고 싶은가 보네. 살구나무 야기를 벌써부터 하고 말야. 허허."
.... (중략)
"재규야, 네가 아버지 뒤를 이어서 살구나무 숲 한번 만들어 봐라. 군수나 시장을 해야만 성공하는게 아니다.
아버지처럼 좋은 의원 되어서 많이 살리면 나는 좋겠다."
... (중략)
어린 시절 스치고 갔던 추억과 인연들은 마음 밭에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한의사가 어떻게 되고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아버지란 큰 산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당신을 닮고 싶다는 꿈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살구꽃이 피고 살구가 달리라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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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담당의가 아버지 곁은 지키고 있던 나를 밖으로 불러 전해준 말이었다.
2월 1일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힘겨운 밤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웠지만, 아버지는 1월의 마지막 날을 버티어냈다.
당신과 함께 맞이하는 새벽, 내일도 함께 여명을 바라 볼 수 있을까.
... 이제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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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원을 준비하는 대신, 주역 책울 들고 자리산으로 들어갔다.
의역동원.
의학과 역학은 근원이 같다고 한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수백 년 전 명의들의 조언은 나의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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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길을 걸을지..
퇴계 선생님 몰두했고, 공자가 위편삼절하며 공부했던 주역이 나의 길에 어떤 실마리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주역을 보듬고 나의 길을 간절히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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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돌아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해가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나의 중학교 시절..
그 무렵의 모든 시간은 서울올림픽해니 나는 몇살.. 그 전이니...그 후니...몇살... 나의 그무렵의 시간은 올림픽을 기점으로 계산되어 진다.
2002년 울 아들 4살.. 월드컵때 커다란 아빠 옷을 입고 TV앞에서 핑글핑글 돌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무렵에 나는.....
1975년생 전재규한의사님의 2002년 7월은.. 한의대 시절.. 수영장에 수영하던 어느날.. 사고로 물에 빠진 아이를 응급처치를 했지만 하늘로 보낸 날...
"요즘도 그 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살아있었다면 지금씩 한창 생기발랄한 여대생이 되어 있으리라.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고, 아쉬움에 한숨을 짓는다.
지워지지 않는 괴로움을 떨칠 수 없다.
지금 내 앞의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겠노라.
맹세의 격문을 읽어가듯 그때를 떠올리며 환자를 돌봐야 한다."
분명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오신 분인데..
웬지 나랑의 다른 세계를 살아오신 분 같 같다.
나이만 비슷할 뿐, 사실 나와 공감의 영역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지만.. 의외의 물입감으로 읽혀진다.
잔잔하게 아련하게 미안하게 또는 격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기억들을 풀어낸다.
아버지와 아들..... 아들은 아버지를 기억한다.
기억의 매 순간 순간들은 아련함 가득한 추억이리라...
먼저 한의사의 길을 걸었던 분에 대한 존경과 오랜시간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셨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를 닮고 싶은 아들의 따뜻한 마음과 그리움, 존경의 마음이 담긴 이야기....
그리고 한의사로서의 본의 마음...이 담긴...
살구나무아래에서
P57 - 대를 이은 의업의 길
아버지가 좋아서, 그저 닯고 싶었다.
그저 닮고 싶다는 소망으로,
몇번의 도전 끝에 한의대에 입학했다.
아버지는 아ㅇ 대학에 떨어졌울 때도 채근하지 않으셨다.
이 길만이 길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그럴수록 아들은 묵묵히 믿어주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대를 이은 의업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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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힘들면 참 힘들 수 있는 사이인데..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워요..
세상의 모든 가족이... 어떤 일을 하든지 이렇게 서로의 길을 존경한다면.. 더없이 뿌듯하고 뿌듯할텐데요.
지나고 나야.. 내가 그때 이렇게 했다면... 후회만 가득 남으니.... 가족이란 든든하지만 또한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아들과 남편이 이런 부자 사이가 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