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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잡기

[도서] 조선잡기

혼마 규스케 저/최혜주 역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3점

(네이버 본인 블로그 리뷰를 옮깁니다)
1. 이 책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책의 저자는 혼마 규스케라는 구한말 개화기의 일본인입니다. '이륙신보(二六新報)'의 특파원, 천우협, 흑룡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조선통감부가 총독부가 설치되자 관리가 된 인물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메이지 유신 후 권력에서 소외된 무사계급이 조선과 대륙에 관심을 가지고 넘어온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단순한 '정치깡패'라기 보다는 지식인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들 중 한 명이 이 책의 저자로 할 수 있겠습니다.

앞서 이 '천우협', '흑룡회'의 회원이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천우협'을 결성한 뒤 1894년 발발한 동학농민운동에서 동학농민군에 대해 지원을 하였고, 민비 시해사건에 가담했으며, '흑룡회'를 결성한 후 1901년에는 '러시아 전쟁'을 주장했으며, 러일전쟁 후에는 '일진회'를 조종하며 '한일합방'운동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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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이 책의 내용은 1893년 경에 조선을 내한한 일본인의 관점에서 쓰여졌습니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시작으로 산업화가 시작된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할 정도로 국력이 강해지게 되는데, 1869년생인 혼마 규스케는 산업화의 진행과정과 일본의 국력이 강해지는 과정과 함께 자란 첫 세대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서 조선에서 본 여러 가지를 '이륙신보'에 154편에 연재한 것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조선잡기'에는 근대 일본인의 시각으로 조선의 문화와 문물풍속을 접하면서 느꼈던 여러 풍경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조선잡기'에서 드러나는 조선, 조선인의 주된 이미지는 순진함, 무사태평과 함께 불결, 나태, 부패 등이다. '문명국' 일본에서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조선잡기, 혼마 규스케 저, 최혜주 역, 김영사, P.6 (역자의 글머리에서)

역자께서 이야기 하신 것과 같이 산업화와 함께 자란 저자가 본 조선에 대한 평가는 특히 '불결, 나태, 부패' 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말의 언어, 풍습, 관리들의 모습, 의식주 문화, 거리의 모습 등을 역자가 이야기하신 것과 같이 '문명국' 일본의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책 자체는 짧은 이야기를 여러 개 묶은 것이므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신문의 짧은 사설을 100편 넘게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책에 포함된 삽화가 이해를 도우므로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문물, 제도, 기계, 공예 하나같이 지금 사람의 시선을 끌만한 것이 없다. 우리로 하여금 거의아프리카의 내지 여행을 연상시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조선잡기, 혼마 규스케 저, 최혜주 역, 김영사, P.24 (독립한 적이 드물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왕조의 역사만을 배워왔던(대다수의 우리나라 분들께서도 그러셨겠지만) 저는 신선하기도 하지만 충격적이었습니다. 전의 이완용 평전을 리뷰할 때 썼던 이야기와 같이 이 책에서도 을사오적이 매국을 한 게 문제인가, 다섯 명이 매국을 할 만큼 허술한 국가의 문제였는가? 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랬던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왕조같은 특권층의 역사만 배운 것입니까? 어째서 그렇다면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습니까? 어째서 동학의 후신은 친일단체가 되어 일진회가 되어서 '한일합방'운동을 적극적을 지원하게 되었습니까? 책을 읽는 내내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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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상깊은 내용과 제 생각은 어떻습니까?

<노비제도>

조선사를 읽다보면 역시 노비제도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계약에 의한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지,(간혹 납치되어 염전이나 농가에서 노예와 같이 일하는 분들의 뉴스가 나옵니다만)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중 한 쪽만 노비라면 태어날 때부터 노비가 되었다는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혼마 규스케가 관찰한 1890년대의 조선도 그런 모습을 가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조선에서는 중류 이상의 양반은 모두 하인이라고 하는 자를 데리고 있다... (중략)...이들은 봉급을 받고 노예가 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돈을 빌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중략)... 일단 이렇게 되면 자자손손 영구히 주가의 천한 일에 복종하고, 개나 말과 같이 일을 해야할 의무를 갖는다. 그리고 저들 노예는 이러한 나쁜 관습에 속박되어, 평생 주가에 묶인 바가 된다...(중략)...일단 하인이 된 자는 하늘로부터 받은 정신을 주가에게 받치고, 개나 말과 같은 지경에 떨어져도, 참담한 슬픈 눈으로 눈물을 머금고 일생을 마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잡기, 혼마 규스케 저, 최혜주 역, 김영사, P.155-156 (노예제도)

<바깥세상에 대한 무지함>

1890년대의 조선을 보면 현대 한국과 닮은 점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는 세계의 견해와 한국의 견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교묘하게 짜집게되어 한국에만 유리하게 해석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이 OO하자 전 세계가 놀랐다!' 하는 영상물이나, 'OO에서 모두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는 영상물들입니다. 그 영상을 보면 해외에 나가서 그 주제를 가지고 'Do you know..?' 해야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소위 '국뽕'이라 부르는 그런 태도는 성장을 통해 또 다른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순간을 멀어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들며 결국엔 나태함으로 이어지고 결국엔 도태되게 만드는 위험한 성질의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수많은 제품들 중 한국 것이라서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나 많은가? 라고 자문해보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삼성 갤럭시가 세계적으로 잘 만들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회사 다니면서 느낀 것이, 세계의 기준에서 보편타당한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째선가 최근 한국에서는 그런 시류가 다시 강화되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조선 말기의 지배 계층은 세상 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실력마저도 부족했고, 스스로 결심하여 날로 새로이 하겠다(自決天新)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 망하는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씁쓸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에 의해서 운영해야 하는 것도, 몽매한 민중에게 맡겨버린다. 한가하게 국가의 존망을 도외시하고 감히 간여하지 않으니 매우 불쌍하다...(중략)...우리나라 사람(일본인)이 순수한 마음과 의협심을 가지고 저들에게 만국의 정세를 깨닫게 하고, 신선한 공기를 호흡시키며, 신사업을 일으킬 용기를 생기게 하려고 힘쓰는 것도, 근본적으로 조선을 혁신한 후가 아니라면 천 번 계획하고 만 번을 도모해도 공허하게 거품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중략)...오히려 학교를 설립하려 하고, 신문을 발간하기에 앞서, '일본인은 학교 신문을 바탕으로 어떠한 간계한 책략을 부릴지도 모른다.' '국가의 대사는 반드시 여기에서 배태된 것이다.' 등의 허황된 설이 백출한다.

조선잡기, 혼마 규스케 저, 최혜주 역, 김영사, P.192-193 (방척주의:던져 내버려둠)

<불결>

복수의 정보를 통해 확인해보면 1890년대 조선의 위생 상태는 엉망으로 나옵니다. 기본적인 치수(治水)사업이 안되었으므로 물을 활용하기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촌락도 물 마시기 편한 곳을 따라 형성되어있다는 묘사가 이 책에도 등장합니다.(P.237)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째 상등사회와 중류 이하의 사회의 격차에 대한 묘사도 등장을 해서 흥미로웠습니다. 왜냐면 한국에서 제작했던 대다수의 시대극의 경우 상등사회인 왕조를 둘러싼 이야기를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나 깨끗하게 분칠을 한 배우들이 등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결은 조선의 '명물'이다...(중략)... 썩은 생선과 야채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음식물을 조리하는 모양을 볼 때는 어떠한 호걸이라 해도 수저를 드는데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중략)...또 상등사회는 각별하지만, 중류 이하에 이르러서는 실내의 불결한 것을 필설로는 다 말할 수 없다. 벽은 누런 색으로 닿으면 의복이 더러워지고, 지붕 밑에 진흙을 바른 천정은 낮아서 하품을 하면 목이 지붕에 닿을 정도다.

조선잡기, 혼마 규스케 저, 최혜주 역, 김영사, P.238-239 (방척주의:던져 내버려둠)

<동학의 지도자들과 나눈 필담>

이 책의 저자 혼마 규스케는 조선인들 중 기개가 있고, 의지가 강한 인물들에 대해 찬사를 보냅니다. 어째선지 책 전반적으로 조선의 기개가 완전히 죽어버렸다던가, 죽어서 도저히 자력으로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역시 동학의 인물들과 나눈 대화입니다. (이 내용만으로도 이 책은 사서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책의 내용을 반영하여 대화 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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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내용은 조선잡기(김영사) P.59-67의 내용입니다.--

혼마 규스케가 1893년 4월 하순경 황해도를 여행할 때 였다. 60세 정도로 보이는 반백의 노인과 44, 5세로 보이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행동거지로 봤을 때 단순한 상인같지는 않았다.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간신히 혼마 규스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자 붓과 종이를 꺼내 필담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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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의 조선인 : 공은 이웃나라의 지식인이므로, 틀림없이 역사에 능통할 것이다. 일본에서 임진년의 일을 가지고 조선을 적대시 하는 것이 많은가?

혼마 규스케 : 임진년에 팔도가 모두 일본에게 유린되었으며, 일본은 전승했는데 이겨서 한을 품는 사람이 어딨는가?

반백의 조선인 : 일본에서는 역사를 꺼려해 사실을 전하지 않는 것 같다.

혼마 규스케 : 조선과 일본이 같은 역사를 전하지는 않겠지만, 조선이 이겼다면 어째서 멀리까지 말을 타고 팔도를 유린했으며, 두 왕자를 사로잡을 수 있었나? 그리고 일본이 패배했다면 어째서 조선은 명에 구원을 요청했나.

반백의 조선인 : 만약 진실이라면 당신도 적국의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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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두 조선인은 혼마 규스케가 '일본인'이라고 했을 때부터 그를 미워한 것 같다. 하지만 혼마 규스케는 그들이 강개한 뜻이 있으며, 쟁쟁한 자들, 보통의 한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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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 규스케 : 이웃과의 교제에서 화해하는 것도 항상 있는 일이고, 싸우는 것도 항상 있는 일이다. 임진년의 일로 조선이 일본을 미워한다면, 일본도 조선을 원망하게 된다. 일찍이 원나라가 일본을 침략하려 할 때 당신들은 그들을 인도하지 않았나? 쓰시마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진술일 뿐 다시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조선은 일본에게 있어 보거순치(輔車脣齒,서로 보조하지 않으면 존재를 보존하기 어려운 관계)의 국가다. 하물며 현재 조선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 군대가 약하고 가난한데도,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보다 오늘은 청에 의지하고 내일은 러시아에 의지하려는 태도가 아닌가? 부탁할 수 없는데 부탁하고, 의지할 수 없는 의지하며, 알지 못하는 것이 이와 같으면 수년을 지나지 않아 귀국은 그들에게 잡아 먹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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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의 조선인 : 어떻게 조선이 일본에게 보거순치(輔車脣齒)의 국가인가? 저 바다로 하여금 우리는 청국과 러시아를 멀리두고 있다. 그리고, 조선은 청에게 있어 재혼한 신부일 뿐이다. 명의 아래에 있을 때는 그 은혜로움이 자상한 어머니가 아들을 대하는 것과 같았는데, 지금은(청의 속국상태) 그 은혜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거기에 대든다고 해도 중과부적임을 어찌할 것인가. 오히려 일본이야말로 서양의 신하가 되었으면서, 어찌 우리를 나무랄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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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 규스케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래 날짜, 법률, 가옥, 의복 모두 서양제도에 의거한 것을 보고 그들이 일본의 속국으로 단정한다고 생각했다. 또, 그들은 문자가 있는데 비해서 세상 사정에 어둡다고도 생각했다. 다만 그들은 한인 중에서 쟁쟁한 자라고 다시 생각했다. 시간이 없어 서로 충분히 이해를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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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그들은 헤어질 때, 편지에 이렇게 써주었다.?

경상도 상주 남면 거주 서병학, 동 문경읍내 거주 박인병

?--- 조선잡기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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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고, 혼마 규스케는 조선정부에서 발간한 아침신문에서 '부도 서병학'이라는 글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용인 즉슨 동학당의 수령이므로 엄하게 수색하여 감옥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혼마 규스케는 '천우협', '흑룡회'의 회원이었는데 이 단체는 1890년-1900년대 조선의 친일본단체를 지원하여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활동을 합니다. 동학농민운동 세력은 이후 일진회가 되어서 일본에 동조하는 단체로 변하게 되는데, 동학농민운동 때도, 일진회 활동에도 '천우협'과 '흑룡회'는 도움을 준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두 단체의 행적에 대해서는 이후 면밀히 검토하여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포스팅 해야겠습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아마도 어떤 단체가 적합한지 아닌지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원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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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외에도 조선시대 현실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 많으므로 책 전체를 읽어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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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무리

우연찮게 발견했는데, 제가 궁금해하던 '일반인'으로써 조선은 어떤 사회였을까? 하는 물음에 답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이 짧은 사설을 여러 편 붙여놓은 것이기 때문에 바쁜 일상에도 틈틈히 읽기 좋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산업화가 완료된 국가의 국민이 상대적 빈국을 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즈음하여 당시 일본 GDP 수준은 전 세계에서 최상위 수준이었으며, 이런 국력을 바탕으로 일청전쟁 / 일러전쟁을 승리한 뒤 열강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은 산업화는 차치하고서라도 치수사업과 도로조차 없었기 때문에 경제 수준은 비교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GDP 10위권 국가에서 살고 있는 나는 어떻습니까. 내가 상대적 빈국을 바라봤을 때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들이 어떻게 되어가길 바라야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나를 봤을 때 그들은 나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요?

여전히 알아볼 것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이방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어땠나, 어째서 조선은 약했고 일본은 강해졌나, 어째서 동학은 일진회로 변해갔는가, 일본은 조선침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왔는가 등등.. 일상이 바쁘지만,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일본'을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까? 라고 물었던 과거의 저에게 대답하기 위해서 즐겁게 또 다른 책을 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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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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