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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2

[도서] 헬프 2

캐스린 스토킷 저/정연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현대판 노예라고 불리는 홍콩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에 관한 기사를 아침 뉴스로 접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홍콩으로 온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이 됐나 보더라구요. 홍콩의 법은 외국인 도우미의 가내 입주를 명령하고 있지만 정작 실내에 도우미를 위한 공간이 주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침대 사이, 세탁기 위, 다락방 등에서 새우잠을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는군요. 고용주의 명령에 따라 고층 아파트의 창문을 닦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시간 외 근무를 요구받아 과로하게 되는 것은 일상. 임금체불과 구타, 성폭행 등의 범죄에 노출되어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시위가 일어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홍콩 같은 선진국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근대적인 차별과 폭력의 정도에 혀를 차다 떠올리게 된 책이 있습니다. <헬프> 1960년대  미국 남부 지방의 흑인 가정부들에 관한 책이었지요.

"여성 회원님들, 다음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유색인 질병의 99퍼센트는 소변으로 옮습니다. 우리는 유색인의 검은 염색소에 포함된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질병에 걸리면 영구히 불구가 될 수 도 있습니다. 백인이 운반하는 병원균 또한 유색인에게 해로울 수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세요. 자녀를 보호하세요. 가정부를 보호하세요." (p269)

표어가 참 우습지요? 어처구니가 없지만 실제로 1960년대 미국에는  "남부 짐 크로 법"이라는 게 있어서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것이 아예 법제화 돼 있었다고 합니다. 백인과 흑인은 병원, 학교, 버스, 무덤 등을 공유할 수 없었고 같은 책조차 돌려볼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인종이 처음 책을 잡으면 그 책은 오로지 그들 인종의 것으로 헬프의 배경이 되는 잭슨시로 말할 것 같으면 애초에 도서관은 흑인접근금지구역입니다. 흑인은 대학을 나와도 그 지식적 배경에 입각한 취업을 할 수 없습니다. 냇 킹 콜 같은 가수를 제외하면 육체 노동자만이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가정부 에이블린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그녀는 십대 때부터 가정부 일을 했고, 열 일곱명의 아이들을 키워냈으며, 그녀가 낳은 유일한 아이는 일찍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열심히 배워도 가난하고,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선량히 살아왔던 그녀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저 엉터리 같은 표어를 퍼트리는 인종차별주의자 힐리에 의해 집 밖의 얼음장 같은 그녀 전용 화장실로 내쫓겨야 했지요. 그녀가 차려준 식탁에서 그녀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그녀 손으로 빨래한 옷을 입고, 그녀 손에 아이를 맡기는 백인들이 급기야는 같은 실내, 같은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는 것조차 거부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인간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수치심은 물론 견딜 수 있습니다. 백인들과 함께 한 평생이 모욕이었고 차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백인 아이 메이 모블리가 어른 백인의 눈으로 자신을 볼 것은 겁이 납니다. 더러운 흑인, 병을 옮기는 흑인, 저급한 흑인. 그녀를 엄마라 부르고 그녀를 사랑해마지 않던 여느 백인 아이들이 그랬듯 그녀를 한 명의 흑인 가정부, 흑인 일꾼으로 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삶이 되어 버린 차별은 견딜 수 있지만 제 손으로 키운 아이의 눈에 서리는 경멸만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에이블린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 그녀가 백인 여성 스키터에게 제안을 받습니다. 미시시피주, 미국에서도 극악한 평을 듣고 있는 이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이 지극한 지역에서 가정부로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책으로 엮어보자는 것이었지요. 에이블린은 거부합니다. 백인들은 그들 흑인과 가족의 일자리를 뺏고, 집과 차를 불태우고, KKK단이라도 있는 경우엔 사람을 짐승처럼 사살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법의 심판에서조차 자유로와요. 단순히 주먹다짐으로 끝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에이블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외면하고, 귀를 닫는 것으로 버티려 합니다. 억울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항의하고 싶은 목소리가 있음을 알지만 눌러 꺼버립니다. 참는 것은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사건이 급변한 것은 로버트 때문이었습니다. 아들 트리로어의 친구였던 다정한 아이 로버트가 고작 백인의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그게 결코 의도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타이어 레버로 두들겨 맞아 두 눈이 머는 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에이블린의 마음은 슬픔으로 터져나갈 것만 같았지요. 이대로는 안된다. 변하고 싶다. 변화해야 한다. 그 마음이 시발점이 되어 에이블린과 미나, 스키터를 묶지요. 그러다 다시 흑인 가정부 율 메이가 저 악마 같은 힐리로 인해 감옥에 가는 일이 생기면서 인터뷰는 훨씬 더 활기를 띠게 됩니다. 지금 여기의 모순된 현실을 조금도 바꿀 수 없겠지만, 책이 출간될지 안될 지도 알 수 없지만 백인들에 대한 분노가 자식들에 대한 동정과 모성이 두려움을 눌러 버립니다. 처음에는 에이블린과 미나 두 명 뿐이었지만 또 한 명, 또 한 명, 다시 한 명이 더해지며 기어이 열 두명, 아니 스키터의 가정부였던 콘슨탄틴의 얘기까지 더해져 13명의 가정부 얘기가 책 한 권으로 엮어집니다. 책이 만들어지고, 다시 잭슨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수근대는 사람들 속에서 목을 죄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에이블린과 미나, 스키터는 생에 없던 자유와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더 나은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더 희망적인 인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각자의 발걸음을 옮기지요.


헬프는 이들 가정부들이 엮어 만든 책의 제목입니다. 흑인 가정부들이 받는 차별과 학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흑인과 백인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를 가르는 시선에 대한 고발이자 고백입니다. 인종차별주의자를 대표하는 힐러를 내세워 악을 벌하는 권선징악의 속 시원한 이야기는 지혜로운 에이블린, 용감한 미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스키터의 기개와 지략이 더해져 매 페이지가 흥미진진합니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회합이 차별이라는 심각한 소재 앞에서도 얼마나 따뜻한 시선으로 유머스럽게 펼쳐지는지 직접 책으로 만나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데요. 인종차별의 내용에 분노하고, 그 시절 흑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녀들의 따뜻한 마음과 모성을 응원하다 보면 8백에 가까운 페이지조차 아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들의 용기에 반성하게 됩니다. 세상 어디에선가, 저기 먼 홍콩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 대한민국과 내 마음 속 어딘가에도 국적과 인종과 부와 성별과 나이로 가르는 선들이 무수하진 않았었나 하구요. 저 또한 그런 차별적인 시선으로 누구에겐가 말 못할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매일의 일상에 같은 장소, 같은 자리, 같은 사람들 사이로만 오고 가는 저로서는 흔치 않을 일이지만 제 안에서 나와 너를 가르는 선이 뚜렷하게 느껴질 때면 이 책 헬프와 에이블린의 말을 떠올려야겠다고 결심해 봅니다. 체스를 둘 때처럼 놓인 위치가 다를 뿐 우리 사이에는 선이 없다고. 실로 그런 현실은 존재할 수 없고, 제 안의 선을 다 없애는 날도 결코 올리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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