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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그레이엄’…‘월街 신화’ 낳다

 


타계 직전인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 라호야의 자택에서 포즈를 취한 벤저민 그레이엄. ‘월스트리트의 학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가치 투자’이론을 정립해 워런 버핏 등 훗날의 투자전문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진제공 굿모닝북스

◇벤저민 그레이엄/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김상우 옮김/415쪽 1만4800원 굿모닝북스

 

1914년, 미국 컬럼비아대 졸업반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철학과 학과장이 그를 점심식사에 초대하더니 철학 교수로 학교에 남아줄 것을 당부했다. 얼마 뒤 수학과에서도 비슷한 제안을 해 왔다. 영문과 교수도 그가 영문과 교수직이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학장인 카펠의 의견은 달랐다. 젊은이들이 상아탑에서보다 사회에 나가 많은 경험을 쌓기 바랐던 그는 월스트리트의 증권 중개업자 뉴버거에게 그를 신입사원으로 추천했다. 오늘날 ‘월스트리트의 학장’이라고 불리는 증권분석의 창시자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레이엄은 오늘날 한국의 증권사 광고 문안에도 등장하는 ‘가치투자(Value Investment·당장의 시황이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주가에 반영되지 않은 기업의 가치를 분석 평가해 투자하는 기법)’의 개념을 탄생시킨 주인공. ‘오마하의 현자’로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그레이엄의 책 ‘현명한 투자자’에서 영감을 받아 그를 찾아간 뒤 가치투자의 계승자가 됐다. 이 책은 1976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레이엄이 40대에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회고록으로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햇빛을 보게 됐다.

돈이라면 일생 동안 유감없이 만져 본 그레이엄이었지만 초년 운은 평탄치 않았다. 아홉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형제들은 겹치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용돈을 대야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월반을 거듭하는 천재이자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나의 타고난 성향은 정신적인 삶을 향하고 있었다.” 회고에 나타난 그의 자기 분석은 솔직하고 꾸밈없다. “그러나 어려웠던 환경 때문에 돈을 지나치게 존중하게 됐다. 인생의 성공은 큰돈을 벌어 펑펑 쓰는 데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내밀한 욕망이 카펠 학장의 권유를 주저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그가 월스트리트에 나타날 당시 주식시장이란 투기꾼들의 각축장에 다름없었다. 심지어 선거, 도박 업무까지 대행하던 시절이었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고전에 단련되고 오페라와 브람스 음악의 애호가였던 그는 이 시장에 ‘이지(理智)’와 논리를 도입했다.

그 자신이 오래도록 자랑하는 전설적인 사례는 ‘노던 파이프라인’ 주식 매입이었다. 30만달러의 사업규모로 300만달러 상당의 채권투자를 하는 이 회사를 눈여겨보다가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경영진을 찾아간 그는 잉여자산을 주주들에게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첫해 주주총회에는 단신으로 찾아가 후퇴해야 했지만, 치밀하게 준비한 다음해 주총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백기투항을 받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풍경은 초기 주식시장의 풍경이나 ‘가치투자’ 이론의 정립 과정에만 그치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물질적 풍요의 새 시대가 깨어나는 과정을 저자는 ‘교수가 될 뻔한 인문학자’ 출신답게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다. 한 예로서 마차로 산꼭대기까지 이동해야 했던 스키 리조트가 점차 현대적인 시설로 발전하는 장면에서는, 비교적 장수를 누린 그가 얼마나 예전 시대의 인물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 ‘진솔함’이다. 겁 없이 뛰어든 극작가 생활의 실패, 첫 부인과의 불화와 혼외정사, 떳떳하지 못한 병역문제와 뇌물 수수까지도 숨김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후반생이 등장하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원제 ‘Benjamin Graham: The Memoirs of the Dean of Wall Street’(1996년).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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