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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아내

[도서] 일회용 아내

사라 게일리 저/안은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세라 게일리의 <일회용 아내 (The Echo Wife)>는 '남편이 자신의 복제인간과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SF 작품이다. 'Echo Wife'는 얼핏 '친환경적인 아내'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eco가 아닌 'echo' - 메아리치다 혹은 비슷한 것을 반복 상기시킨다는 뜻으로 '자신을 완벽히 복제한 아내'를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다. 클론이 일상화될 미래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클론이 어딘가에 존재해서 나의 생활 영역 안에 들어오고 그것도 모자라 나의 존재를 대체하는 상황을 가정해보는 섬뜩한 이야기다. 남편이 아내의 클론과 외도를 하고, 아내는 클론을 상대하는 막장 드라마가 벌어진다면.

 

 

극중 에벌린 콜드웰이라는 여성은 복제인간에 대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은 뛰어난 과학자로 등장하는데, 그녀는 외도를 한 남편 네이선에게서 이혼 통보를 받는다. 상대는 에벌린의 복제인간 마르틴. 왜 남편은 자신과 똑같은 클론에게 바람이 난 것이었을까. 자신의 클론인 마르틴이 자신에게는 없는 남편에 대한 순종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에벌린은 남편 네이선과 클론 마르틴에 대한 혐오를 폭발시킨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두고 '초안'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목업 디자인을 하듯, 어떤 '목적'에 따라 초안과 ver2.0, 3.0을 계속 만들어내는 클론의 세계. 초안에서 부족한 점을 또 다른 클론의 존재를 만들면서 업그레이드하고 이전의 삶을 '조건화'하는 과정은 과연 미래에 일상화될 수 있을까. 에벌린은 아이를 원치 않았지만, 네이선은 아이를 원했고 결국 마르틴이라는 클론을 통해 아이를 갖게 된다. 단지 특정한 인간의 목적에 의해서 클론은 기능적으로 탄생하게 되지만, 클론은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고 그대로 인간에게 대응한다.
 

그러던 어느날 네이선에게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에벌린과 마르틴은 또 다른 네이선을 만들어야 할 상황을 마주한다. 나와 클론이 함께 연대하게 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에벌린이 자신의 클론인 마르틴과 끊임없이 맞붙고 논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나와 클론이 남편에 대한 존재와 가족을 구성한다는 상황을 두고 불꽃튀게 논쟁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소름끼치는 기이한 상황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본래의 자신은 클론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선적으로 태생적인 우월의식이다. 클론이 '감히' 자신의 남편에게 한 행동에 대해 질투와 혐오의 감정이 끓어오를 것이며, 클론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과 절대로 동화시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에벌린은 클론인 마르틴이 '감히' 자신의 행위를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실제로 아내와의 관계를 뒤흔들고 클론과 외도를 한 것은 남편이지만, 그녀는 사라진 남편보다는 클론에게 더 큰 혐오를 갖게 된다. '인간도 아닌 것'이 인간다운 접근을 해올 때 겪는 불쾌한 골짜기와 같은 혐오의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인간들 사이 관계의 틈이고, 클론은 그 문제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인간들의 문제를 클론이라는 과학적 도구로 보충할 때, 윤리적인 정당성을 초월하는 엉뚱한 일이 또한 발생하게 된다. 클론은 말 그대로 사람을 '복제'하는 일이지만, 모든 정신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다. 어떤 특정한 목적은 그의 좋은 면만을, 아주 '일부' 만을 복제하고 싶어한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기분과 요구를 맞춰줄 수 있는 존재로서 기능하는 인간을.
 

특정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한 폐기되는 클론들을 인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에벌린은 마르틴과 함께 '새로운' 네이선을 만들었지만, 그들이 모르는 네이선은 수많은 복제 아내를 만든다. 새로운 버전을 만들 때마다 초안을 개선해서 업그레이드하고 새롭게 프로그래밍한다. 거듭된 '시험체들' 중의 하나로 아내의 클론을 만드는 남편의 본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더 나은 존재를 창조해보고 싶은 과도한 시험정신이었을지, 아니면 잘못된 관계를 인간적으로 풀지 못하는 무력감이었을지. 굳이 클론을 만들어야 될 정도까지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스스로는 복원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이는 픽션일 뿐이지만.
 

마르틴은 프로그램에 따라 반응하는 존재로 탄생했지만, 자신의 의사를 가지고 문제를 결정하려고 한다. '용감한 클론'이 되기 위한 마르틴은 자신이 낳은 아이에 대한 애착을 갖고, 복제된 네이선을 향해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려고 한다. 많은 시험체를 만든 네이선이라는 존재의 클론을 응징하자는 마르틴과, 복제 인간이라도 살인을 해서는 안된다는 에벌린은 인간의 윤리를 주제로 논쟁을 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을 맞는다. 사라진 사람을 복제하여 살려내고, 진짜 사람의 악의를 복제된 사람에게 복수하는 건 정당한 것인가? 인간보다 더 논리적인 복제 인간에 맞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은 분노 뿐이다. 나보다 더 논리적인 클론에 대해 분노하지 않으면 그를 인정하는게 될테니까.
 

분노의 대상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감정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클론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떻게 감히 내게 이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 또한 같은 생각을 더 많이 해왔기 때문에 복제인간은 또 다른 나의 모습 그 자체가 된다. 나와 복제인간이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렇게 자신의 복제인간 또한 자신의 감정을 성숙시켜 가며 발전한다. 자신이 만들어진 목적을 떠나 진정한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고,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클론의 목적은 관계의 결핍을 벗어나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만, 마르틴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부조리함을 극복하는데서 새롭게 발견된다. 클론과 인간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부조리함을 깨닫는 와중에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공존하게 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의 인간이나, 인간을 복제한 클론은 서로의 망가짐을 공감하고 인간의 부조리함을 어떻게든 극복하려 한다. 에벌린은 마르틴에게 자립심을 주고, 자신은 또한 과학자로서의 필요에 의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된다. 이들의 결말은 어찌되었든 적정한 공존의 대안으로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일회용 아내>는 인간을 복제한다는 것에 대한 과학의 윤리적인 문제 이면에,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지속가능한 관계라는 것은 상대의 불완전함을, 마치 버그를 치료하듯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의 연속은 아닐 것이다. 진짜 아내를 놔두고 복제인간과 외도를 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불완전함을 더욱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관계의 시작임을 말해준다. 불완전함을 더욱 이해하는 것으로 일회용이 아닌 지속가능한 삶을 꾸리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아'의 생각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괜찮은 삶'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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