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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도서]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저/최성은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스타니스와프 램의 <솔라리스>는 1961년에 나온 SF의 고전 중의 고전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장대한 SF일뿐 아니라 거대한 철학론을 깊이있게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도대체 솔라리스의 바다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외계 문명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불가지론'에 대한 이야기와 솔라리스의 바다를 탐구하면서 주인공들이 겪는 신기한 일을 다루고 있다. 솔라리스의 바다에 대한 본질은 작품 내내 규명되지 않는다. 행성의 바다는 단순히 바다가 아니라 지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인류는 그것에 대한 소통의 방법도, 진정한 정체도 모른다.

 

 

그러던 와중에 주인공의 죽은 아내 하레이가 살아돌아온 것 처럼 현실에 나타난다. 솔라리스의 바다에서는 우리가 '외계'로 생각되는 세계에 다가갈수록 역설적으로 우리 내면의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기억하는, 또는 숨기고 싶거나 아픈 기억이 있는 실체가 마치 꿈결처럼 존재하는 경험을 맞게 된다.

 

외부의 세계에 대한 불가지론이란 결국에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일까. 외계란 결국 나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솔라리스는 결국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과거의 기억이 현재와 공존하는 세계를 만든다. 주인공의 죽은 아내는 인간이 아니고 실존 인물을 그대로 복제한 존재도 아니지만, 기억 속에 가장 깊이 각인된 흔적, 다른 모든 기억들로부터 고립된 가장 강렬한 기억이 선택된 것이다. 솔라리스의 체험은 자신의 기억을 일깨우고, 자신의 과거와 치부를 반성하게 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다른 대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지구에서 빌려온 개념은 여전히 솔라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솔라리스의 바다를 향해 X선을 주인공의 뇌파에 맞춰 변조하여 소통을 하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최소한의 교환할 거리조차 없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결국 불가지론을 인식한다는 것을 무지한 인류에게 가르쳐주는 것일까.

 

또한 주인공에게 나타난 '손님'은 처음에는 주인공의 기억이 소환한 텅빈 상태로 나타나지만, 주인공과 생활하면서 인간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주인공은 과거 아내에게 저지른 행위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녀 또한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인다. 과거의 그녀와, 솔라리스에서 다시 돌아오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행위 또한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솔라리스의 바다는 끝을 알 수 없이 거대하면서도 하찮은 존재다. 솔라리스는 그와 맞닿는 대상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을 일깨운다. 기억 속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나는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나의 세상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전부인 일이다. 주인공의 그녀 또한 자신의 세계에서는 가장 기억 속에 소중하지만 아픈 존재다. 솔라리스의 세계에서는 그녀의 존재와 소멸에 대한 기대가 엇갈린다. 주인공에게는 솔라리스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중요할까, 아니면 솔라리스가 만들어낸 자신의 기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중요할까. 이 딜레마는 역설적으로 솔라리스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인간은 외부적인 세계를 인식하기도 전에 자기 자신의 문제를 처리하기에도 모자라다.

 

인간은 외부의 세계가 아닌 자신의 세계에 더 무기력한 법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자신을 모르는 이들이 우주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우주를 이해하고 정복하는 것을 꿈꾼다'고 말한다. 우주의 잡초처럼 흔하고 평범한 존재에 불과한 우리들이 우주에 대한 도식을 만드는 두뇌의 한계 자체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인간을 무시하는게 아니고 코끼리가 제 등에서 기어다니는 개미를 인지하지 못하듯 단지 우리 인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솔라리스는 그 자체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실체이며, 이를 지구에서 사용하는 인간의 언어로 바꾸면 본래의 가치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인간에게 '불완전한 신'의 가르침을 준다. 불완전함 자체가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가진 그런 신. 전지전능의 한계를 가지고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의 사건들에 겁먹는 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신. 시계를 만들어냈지만 측정할 시간을 만들지 못한 신. 그런 신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혹은 그것이 인간은 아닐까 과학자들은 토론한다. 하지만 불완전한 신의 개념은 자신의 고통을 구원하지도 않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심리와 같은 것이었다.

 

켈빈은 솔라리스의 오래된 미모이드에서 바다의 움직임을 보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대로 존재한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주인공은 바다를 보면서 그가 저지른 모든 것을 용서했다고 말한다. 솔라리스가 또 다시 '그녀'를 소환하고 그 고통이 반복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 법칙에 대항할 수는 없다.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 자신의 '감정에 깃든 에너지'를 잘 이해하고 다스리는 것 뿐이다.

 

바다의 활동은 어떤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솔라리스는 희망이나 기대 같은 감정을 배제한다. 우리는 어떤 '완결'과 '기쁨' 혹은 '고통'을 기대하는 걸까? 기억이라는 자취는 존재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솔라리스의 바다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게 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또 기대하는 인간의 '잔혹한 기적의 시대'를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솔라리스학'에 대해 끝까지 불가지론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래서 도대체 솔라리스의 바다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모른다는 자각을 유도하여 자유로운 생각을 펼치도록 한다. 타인을 안다는 것은 불가지론의 입장에서는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습득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때로 자기 자신조차 낯설게 느낀다. 진리는 우리가 솔라리스에 가보지 않아도 멀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얼마나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지. 과거의 오래된 기억이 솔라리스의 세계에서처럼 다시 실체로 복원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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