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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도서]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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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릴 것 밖에 없는 시대, 지키기 위해 싸우던 이들의 이야기

일제강점기하면 민족의 수난, 아픔이 떠오릅니다. 제국주의와 전쟁의 기운에 휩쓸려 우리 민족의 역사가 내맡겨져 버렸던 시기입니다. 개인과 민족이 주체적으로 살아나기 힘들었지만 결국 민족을 지키고 개인의 역사를 써내려간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작은땅의야수들 속 이야기는 옥희와 같은 여성의 서사가 주를 이룹니다. 한말 여성은 아직 미약하기 그지없고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위치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예인이라고 하지만 기생이라 불리우기 쉬웠던 옥희와 연화, 단이의 인생을 통과하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아픔을 봅니다. 또한 남성에 의해 삶의 대부분이 결정되던 수동적 존재인 여성이 삶의 고난을 헤쳐나가는 가운데 삶의 능동적 주체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그들의 삶과 사랑 위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조국과 현실을 놓고 고민하는 모습은 우리가 일제강점기 역사의 결과물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치유받지 못한 근대의 역사는 어떻게 출발하였으며 척결되지 못한 친일세력의 잔재는 우리 삶에 무엇으로 남아 있는지 살펴보게 합니다.

◆ 소유하지 않은 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 비록 외양은 초라할지언정, 남경수는 자신의 적수들을 기꺼이 살해하고 동맹군을 몸 바쳐 보호할 인물 같아 보였다. 야마다는 그러한 위엄을 존중했다.
본문 44쪽 중에서

남경수가 보이는 위엄은 지배자이자 적군이었던 야마다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조선의 초라한 모습만 보았던 지배자는 절대 읽을 수 없었던 모습 일겁니다. 그 위엄은 나라를 빼앗겼지만 가장 낮은 자들까지도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생을 내놓는 우리 역사가 그려낸 모습입니다.

- 동백의 짝은 사랑스러운 연두색 동박새인데, 다른 꽃을 찾아다니지 않고 오로지 동백꽃의 꿀만 마시는 습성이 있다. 개화의 계절이 끝나도 동백은 다른 꽃들처럼 갈변하거나 꽃잎 한 장씩 떠나보내며 힘없이 져버리지 않는다. 흠 하나 없이 온전한 채로, 심장처럼 붉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꽃 한 송이 전체가 툭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동백은 땅에 떨어지더라도 처음 피어났던 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아름답다.
본문 132-133쪽 중에서

옥희를 동백에 비유한 것입니다. 비천하기 이를 데 없는 #옥희 신분이지만 영롱한 눈빛을 가지고 자신의 운명과 삶을 개척해 나갈 복선과 같은 부분입니다. 가끔 사랑과 사람에 흔들리지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도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용기와 의지를 불태웁니다.

- 옥희에 비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정호는 절대로 비굴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탓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그릇 같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정호가 가진 지식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의 정신은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흘렀으며 제 스스로 고통을 키워내는 법이 없었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든, 옥희는 그가 장독 같은 마음 안에 깊이 묻어둔 것을 꿋꿋이 지켜내리라 확신했다. 씨처럼 떨어져 내린 곳에서 멀리 탈출하기는 힘들 테지만, 갇힌 존재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만으로 정호는 충분히 행복할 거라고.
본문 162-163쪽 중에서

- 체포라는 충격적인 경험과 실연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단이는 패배라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실패란 마치 올이 나간 스타킹과 같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남에게 눈치채이는 건 당사자의 잘못이라는 식이었다.
본문 417쪽 중에서

- 정호가 끝내 배우지 못한 많은 일들 가운데, 무엇보다 어려운 일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놓아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해왔던 방식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행동하고 생각은 나중에 하기.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는 양손을 들어 손꿈치로 한두 번 꾹꾹 눈을 짓눌렀다.
본문 446쪽 중에서

정호는 소중한 것을 잃어 가며 삶을 채워갔습니다. 가족을 잃고 사랑을 위해 희생과 배려를 먼저 하느라 정작 사랑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도 지켰지만 그것이 대의를 위한 것이란 생각은 담지 못했습니다. 지키기 위해 짓밟는 자들과 달리 지키기 위해 내어주는 것이 당연했던 이들의 희생이 우리를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없어질 것에 마음을 두는 미련한 자들의 시선

- "그러니까, 약한 국가와 민족이 더 강한 국가와 민족에 흡수되고 통합된다는 건 불가피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라는 거야." 이토가 깔끔하게 다듬은 콧수염을 한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일본이 없다면 조선이 어떻게 현대화됐겠어? 철도, 도로, 전력과 발전을 가져다준 쪽이 누구냐고. 이렇게 제멋대로인 나라를 정리해 주는 동안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관대한 호의를 베푸는 거야. 그런데도 이 개 같은 새끼들은 자기들한테 이로운 게 뭔지도 모른다니까."
본문 147쪽 중에서

- 국가라는 개념은 순전히 만들어진 것에 불과해. 그게 우리의 현실을 떠받치는 역할을 해주거든. 자치 정부나 행정 업무 등,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라고. 하지만 그 자체는 결코 자명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더욱 무의미해져. 모든 인류사를 통틀어 수많은 강대국이 멸망하거나 다른 국가에 흡수되거나 다시 탄생하거나 혹은 잊혔지만, 그게 후대의 번영이나 안녕과는 실질적으로 관련이 없잖아. 고구려든 로마제국이든 고대 페르시아든 다 똑같아. 9년 전 우리는 일본에 합병되었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여기서 달라지는 게 없으면, 대략 천 년 안에 '한국'도 '한국인'이라는 관념도 사라져 버릴 거야. 정작 그때 여기 살고 있을 사람들은 한때, 그러니까 천 년 전쯤엔 자기들 나라도 하나의 독립국가였다는 사실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걸."
본문 188쪽 중에서




◆ 전쟁은 끝난 것인가?


- "검열을 거쳐 신문에 찍혀 나오는 선전용 기사만 읽고 있으니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최전방에서 뭘 봤는지 자네는 모르겠지. 우리에겐 이 전쟁을 지속해 갈 만한 기름도, 철강도, 고무도, 식량도 물자도 없어.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고, 거기에 미국까지 개입한다면 ……. 그들은 우리보다 수백 배나 많은 전투기와 함선을 가졌어. 그리고 병사는 수천 배쯤 되지.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겠나?"
본문 459쪽 중에서

결국 전쟁은 끝났습니다. 끝이 난 것인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 시절의 잔재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우리의 뒷덜미를 잡고 잡아 끌어 내리는 듯 합니다. 포탄이 없고, 죽음의 현장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상흔은 여전히 우리 사이에 남아 있으며 약탈자들은 다른 탈을 쓰고 우리 곁에 있는 듯 합니다. 전쟁이 끝난지 모르는 듯한 그들에게 종전을 선언하고 싶습니다.


- 명보가 3층 감방에 갇힐 즈음에 새로운 공화국의 태양이 떠올랐다. 창문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그는 귤색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기와지붕들과 헐벗은 가지의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활공하며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침의 영원한 이 고요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시간의 흔적이 깊게 쓸고 간 명보의 두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삶을 위해 지불하기에 죽음은 아주 작은 대가였다.
본문 552쪽 중에서

- 그러곤 껍데기에서 전복을 빼내려는데, 칼날이 말캉말캉한 살 속에 감춰져 있던 딱딱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은은하고 희미하게 빛나는 완벽한 구체. 내 손바닥 위에 놓인 그것은, 새벽달처럼 옅은 분홍색과 회색으로 빛나는 진주 한 알이었다.
본문 602-603쪽 중에서

역사를 투쟁 속에 살았던 이는 죽음 역시 순수히 받아들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살아남아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역사의 상흔처럼 남았던 칼에 베인 손으로 생의 연장처럼 칼 속에 잡힌 것은 진주 한 알이었습니다. 상처를 통해 얻은 귀한 진주 한 알처럼, 제 손으로 가지지 못했던 새 새명을 키워내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의 한 자락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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