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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도서] 호미

정성숙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계간 <창작과 비평> 통권 194호, 특집란의 '진실의 습격'에서 언급된 책들 가운데 정성숙의 <호미>가 있다. 진도에서 32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력 외에는 공개된 이력이 없는 작가라 한다.

십수 년 전에 쓴 소설들이라 출간할 생각도 못하다가 농촌 현실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싶어 출판을 결심했다고. 질펀한 남도 사투리가 난 익숙하니 고민할 필요없이 얼른 주문했다.

여덟 편의 단편 모두 오래 전 농촌 모습을 이야기한 건 맞지만 지금이라고 영 딴판은 아니니, 오히려 소설 속 배경보다 더 황폐해진 부분들도 있으니, 시대감 떨어지는 농촌 소설일 거라 오해하면 안된다. 도시 사람에겐 SF 재난소설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해빙기를 맞은 저수지의 얼음판 위에 서있는 꼴'이라 말하는 농사꾼들의 절박하고 답답한 현실이 거칠고 생생하고 그려지니까. 일반화하면 안되겠지만 바다를 낀 지방의 농사꾼들은 바다일과 농사일을 두루 해내야 하는 억척스러움을 강요당하기도 하니 어느 부분 재난 상황 맞다. 일반적으로 여자의 일은 '일상적으로 조바심이 묻어있는 잰 손놀림'이라 당연시되고 가볍게 취급되지만, 남자의 일은 '드물면서도 결정적인 마무리가 될 수 있'는 농촌 현실이니 온종일 억세게 일하고도 가려지는 여성 노동은 더 재난적이다. 열받음과 쓰라림 때문에 <한국 기행>같은 프로그램 잘 못보겠더라.
한겨울 갯벌에서 조개 캐고 미역 따다 말리는 할머니들, 시금치며 방풍나물이며 겨울에도 푸른 채소들 기르는 할머니들, 배추 뽑고 대파 묶는 할머니들, 장에 내다 파느라 쪼그려 앉은 할머니들. . .남도 바다와 들녘에는 쉴 수 없는 여자들, 무릎이며 허리며 손가락이며 어디 한군데 성한 곳 없이 노동하는 여자들 모습이 빠지질 않으니 뜨신 곳에서 편한 자세로 관람하고 있을 수가 없다. 농촌의 들녘에는, 할머니들에게는 휴식기도, 은퇴도 따로 없다.

이 책에서도 결정과 결단이 필요한 일은 주로 남정네들이 벌이고 뒷치닥거리하듯 매일의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 된다. 쑤시는 삭신마저 다 내주며 일하는데도 빚더미에 앉게 되는 이상한 현실에서 입도 몸도 걸어지다가 마침 울고 싶을 때, 악 쓰고 싶을 때 이웃과 대거리를 하고 머리채를 잡을 수밖에 없는 여자들…그러니 농사 짓지 말라고, 농촌을 벗어나라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답할 거면 닥치고 이 책이나 읽을밖에.

영산댁은 손과 발을 움직여봤다. 오른손과 오른 발은 아쉬운 대로 기운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왼쪽은 움직임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마비 상태 그대로였다. 오른쪽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여기서는 자신이 죽어서 살이 썩고 뼈만 나뒹굴어도 동네 사람들은 모르리라.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서 사람들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서 서울로 쫓아가서 둘째 아들 기준이 언감생심, 산 너머 밭을 어쩌지 못하도록 오금을 받아놔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42p

문득 호미만 있으면 깊은 샘이라도 팔 것인데…
"호무,그래 호무!" 영산댁은 오른발 근처에서 호미를 찾아내자, 어쩔 수 없이 까치밥이 될 모양이다 싶던 두려움을 다 물리칠 수 있었다. 43p

영산댁의 손에 호미가 쥐어져 있다는 것은 산 아래가 아니라 기어서 서울까지라도 갈 수 있다는, 굴삭기 못지않은 장비를 갖춘 셈이었다. 44p

<호미>에서는 농사꾼의 분신같은 호미가 대파 밭의 억센 잡풀들을 제거해 주는 작고 든든한 농기계이자 마비된 영산댁의 생명을 살려주는 구급품으로 등장한다. 그 작은 호미에 의지해 몸을 끌어 산 아래까지 겨우 내려온 영산댁이 마음먹은 당장 할 일은 병원에 가는 게 아니다. 큰아들과 일군 산 너머 밭을, 그 밭에 박힌 큰아들의 피땀을 지키려는 것이다. 어미의 마음이, 그 슬픈 강단이 먹먹해져서 잠시 허공에 마음을 부려놓아야 했다. 내 마음 아닌 듯…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한 달에 백오십만 원이면 고추 육백여 근이었다. 식당 일을 앉아서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헛일은 아니고 손해 보는 짓도 아님은 분명하지 않을까. 더구나 뼈에 금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지어놓은 농사가 어째서 헛농사가 되는지 납득할 수 없어서, 어금니 부서질 것 같은 억울함을 어쩌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무엇이라도 던져서 깨부수고 싶은데.
66p

가꿔놓은 농사와 함께 밟히기만 했던 지난날은 놔두더라도 빚더미에 눌려 숨이 막힐 것 같다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혀서 내동댕이쳐질 것같이 조마조마하기만 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다고도 했다. 땡볕에 고추 따며 사는 고달픔만큼 덤으로 따라오는 억울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배 터지게 애쓴 만큼 빚만 늘어나는 농사에서 발을 빼고 다른 것을 해보자고 창선한테 말했다가, 허파에 바람 들어서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주둥이는 맞아야 정신차린다며 입을 주먹질당했다고 했다. 77p

<기다리는 사람들>의 미애는 남편의 주먹질도 징했지만 그보다 '늙어 꼬부러질 때까지 흙을 파도 사는 각단이 안 뵈는' 삶을 더는 안 살고 싶다고, '그 구덕 생각만 해도 징상스럽다'고 밝힌다. 그 곳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미애처럼 식당일이 차라리 낫다며 마을을 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곳에 머물러 살면서 농사에서 비껴난 이도 있다. 미세스 장, 미영, 갑기 아내로 불리는 '나'는 <백조의 호수>에서 상인과 밭주인을 연결해주는 중간상인으로 일하며 돈을 번다. 그게 품팔이나 농사일보다 벌이가 낫고 육체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롭다. 그녀는 유자향 가득한 차 안에서 백조의 호수를 들으며 저쪽 아낙네들을 바라본다.

3kg이 넘는 배추를 하루 종일 트럭에 올리고 있다. 대파를 뽑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가. 허리를 구부린 채로 엎드려서 대파를 하루 종일 뽑다 보면 손목이 시리다 못해 퉁퉁 부어서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날은 손이 부어서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 손가락을 주무르면서 들로 나간다. 그렇게 애를 쓴들 불어나는 농협 이자는 그녀들의 품삯보다 몇 곱절이었다. 결국 그녀들은 물 위의 그림같이 떠 있는 백조 같은 모양을 만들어낼 수 없다. 결코.
나도 몇 년 전까지는 저 아낙네들처럼 살았다. 그때의 아득함이라니.머리를 처 박고 흙만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날씨를 가늠하기 위함이었지 산 너머 다른 세상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97~98p


겨울은 농한기이니 수확으로 여유 누리며 그간의 노동을 쉬어가는 시기라 생각하면 당신은 빼박 도시인이다. 따뜻한 남도의 겨울은 배추와 대파, 시금치, 방풍나물…의 계절이다. 그러니 '남정네들은 동무를 찾아 소일거리하고 아낙네들은 들일을 찾아 나'서는 계절인 것이다. 하우스 농사가 대세인 요즘은 남도가 아니라도 농촌 어디나 이런 풍경이겠지. 다행한 건 옛날처럼 남자라고 한량처럼 굴 수 없는 현실 정도?
울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나는 겨울마다 배추밭에서, 대파밭에서 허리 꼬부라지는 아낙네들을 보며 자랐다. 내 삶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차 안의 미영처럼. 이제는 올해 고추값이, 배추값이. . .대파밭을. . .하는 소식을 조금 깊이 받아들이곤 한다. 내 삶이 그들의 삶과 이어져 있으니, 생각보다 크게 얽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징한 세상, 징한 빚을 한탄하지 않고 농사 짓는 일도 먹고 살만 하다고 자랑할 수 있길 바란다. 답답함과 억울함이 부르는 울분이 아니라, 순간순간 자긍과 평화를 느끼는 하루가 쌓이길 바란다. 그렇게 내일을 보며 농사 지을 수 있는 세상이길 간절히 빈다.


"고렇게 멋진 효율성을 따지믄 농사를 안 짓는 것이 그중 효율성이 높겄구만!" 189p

귀숙은 자신이 사는 꼴을 들여다보니 호적상으로만 경석의 아내일 뿐 실상은 머슴도 상머슴에 불과한 밭두렁 등신이었다. 삼백예순 날에서 삼백날을 넘게 밭고랑을 기어 다니고 소똥을 치우고 살아도 빚더미 속에서 다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는데 서방이라는 작자까지 흘리고 다니는 일거리가 발에 채여서 지 맘대로 나오는 숨도 조절해서 쉬어야 할 판이었다. 무엇보다도 들에서 자신의 삭신을 굴리는 만큼 빚이 줄어야 마땅한 이치인데 빚덩이는 몸뚱이를 더 굴려 커져만 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대출받아서 이자 막고 다시 대출받아서 연체이자 막았다. 폭우로 방죽 둑이무너졌는데 귀숙 자신은 무기력하게 호미 자루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꼴이었다. 194 P

재작년 작은아들 유치원 재롱잔치 때 장래 꿈이 아빠처럼 힘센 농사꾼이라고 발표해서 질겁했다는 마누라의 말에 나는 그런 마누라한테서 날카로운 배신감을 느꼈다. 아이의 꿈이 농사꾼은 아니라 한다는 마누라의 바람이 내 희망이기도 했어야 하는지. 245p

"애쓰고 일하믄 일한 만치 빚이 덜어져야 할 것인데, 어찌케 된 시상인지 애를 쓰믄 쓸수록 빚이 불어나니 뭣이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 되었당께!"
267p

진도에서 농사 지으며 글 쓰는 작가님의 소설이지만, 허구만도 아니고, 남도만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닐 터. 농기계가 좋아도 여전히 사람 손이 더 많이 쓰이고, 농기계 구입마저 빚을 더하며 농번기 농한기 구분없이 체력을 영끌해서 쉼없이 노동해야 하며 신농법이다, 도농교류 판매교육이다, 농촌체험이다. . . 이제는 농업인에 경영인까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세상인데도 농사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었다. 언론에서 비추는 농촌은 태풍 피해나 느긋한 마당 풍경, 이웃들과 어울려 지역 특산품 홍보하느라 한상 차려먹거나신작물 재배, 귀농 성공 사례 같은 만들어진 모습들뿐이다. 오래 전에 쓴 소설들이라곤 하지만 지금의 농촌은 뭐가 더 나아졌을까 생각하니 답답하고 속상하다.
'성성한 생태만 보믄 이문 냄길 생각부텀 드는 것이 아니고 니 생각부터 들더랑께. 아이, 먹어봐라이. 얼크은 할 것이다.'고 영심을 챙겨주는 선우엄마처럼
(<아직도 건네지 못한 이야기> 159p) 뭐라도 그들에게 위로가 되길, 연대하는 맛이 생태찌개의 '얼크은 한' 맛처럼 속에 채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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