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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민주주의

[도서] 포스트 민주주의

콜린 크라우치 저/이한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시각이 다양한 것은 좋은 일이다.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개념은 다르게 정리하는 경우가 있다. 크라우치는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민주주의를 평등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 시키면서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개념으로. 결국,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말은 민주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이 된다. 평등을 넘어선다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저자의 말처럼 엘리트 그룹이 모든 것을 차지 하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귀족과 그 아래 계급이 존재했던 시대를 지나, 모두 평등 하다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다시 엘리트 그룹의 폴라니 식으로 따지자면, '묻어 들어 있음'으로 연결되는. 민주주의를 단편적으로 이해한다면, 저자의 해석도 굳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평등으로만 연계하는 것은 사실 더 많은 가치를 손상 시키는 것이다. 즉, 국민이 주인이라는 국가의 원리를 단순히 경제적, 정치적인 평등으로 치환 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등이라는 것이 경제적인 평등인지, 아니면 경제적인 평등인지는 조금 더 따져봐야한다. 물론, 초기에 민주주의는 분명 정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여건들이 강화 되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도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고, 이제는 투표권은 보장 안 받아도, 먹고 사는 것은 보장 받는 것이 낫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정부의 간섭, 케인즈 주의 등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평등이 경제적 평등에 비해 과소평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에 있어서 경제는 어떤 것 보다 중요시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그 경제적인 부분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할 필요가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정신은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경제적인 논리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따져대는 것은 결론적으로 해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길고 길게 서술 되어 있듯이 장구한 역사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경제는 섞일 수 없다. 구별해야 한다. 이 것이 섞일 것을 기대한다면 정치는 더 힘을 쓸 수 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포물선을 이야기 했다. 원이 아니라 포물선인 것이다. 즉, 진보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미래를 낙관한다. 힘들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낙관론은 현재 정치 상황, 시민운동의 상황을 보면 그저 맹목적일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문제는 봐도 해결책은 궁극적이지 못하거나 미봉책인 것이다. 포스트 민주주의를 말할지 아니면 심의 민주주의를 말해야 할지는 조금 더 지켜 봐야 한다.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나, 둘의 의미는 다르다. 그리고 유럽과 한국은 더 다를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이론이 터져 나오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형식적인 민주주의 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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