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도서]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나종호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언제부턴가 언론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살 관련 기사 끝에 항상 “우울감이나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을 때 자살 예방 핫라인을 이용해 전문가 상담을 받으라”는 문구가 따라 붙는다. 자살이 사회문제가 될 만큼 증가했다는 반증이고 관련 보도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염려한 언론사 나름의 조치일 것이다. 그런데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다”라는 글로 눈길을 끈 이가 있다. 뉴욕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했고 지금은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조교수로 있는 나종호이다. 3년 전에 정신의학신문에 쓴 칼럼이었는데, 전문 분야의 신문에 올린 글이었음에도 널리 공유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 생존자들은 대부분 자살 생각에 너무나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이성이 마비되고 우울감과 불안감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쳐서 자살로 밀려들어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택지가 없어 죽음으로 밀려들어간 것인데, 그런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적절할 수 있냐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람들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할 것 같지만 저자는 뜻밖에도 그들이 오히려 살아있는 걸 안도한다고 말한다. 자살이 선택일 수 없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자살을 ‘선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살이 이기적인 것이라는 편견’을 강화한다고 염려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히려 자신이 짐이 되는 것을 염려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자살을 시도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자살이 선택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 자살 경향성이 우울증, 조울증, 경계성 성격장애 같은 정신질환자나 약물중독 환자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는 사실, 특히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우울증 증상 중 하나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결국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정신질환에 좀 더 관심을 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미국인 절반 이상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 그런 경향은 특히 동양인에게서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좀처럼 자기감정이나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와 함께 일하던 한 중년 의사는 동양계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가 가족 손에 끌려 정신과 응급실로 오면 무조건 입원부터 시키고 본다면서, 그것은 그들 대부분 버틸 만큼 버티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종에 대한 편견으로 여겨질 수 있는 표현이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것을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로 여긴다.

 

이러한 문화권에 따른 사고방식의 차이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의 차이로 이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인은 18%가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반면 동양계 미국인은 그 비율이 미국인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8.8%에 불과하다. 물론 정신과 진료는 진찰보다는 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어가 장벽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뿌리 깊은 동양 특유의 낙인과 편견이 원인인 것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동양인 대다수는 정신과 약물처방을 극심하게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크게 대중의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시선과 같은 사회적 낙인, 환자가 대중의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여기게 되는 내재적 낙인, 취업에 불이익을 주거나 정신건강 서비스에 예산을 적게 책정하는 것과 같은 제도적 낙인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는 형태가 어떻든 모든 형태의 낙인은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나 환자 가족이 치료를 미루거나 받지 않도록 만든다면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다행히 이런 현상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약물중독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고 한다. 저자는 대중들은 중독을 여전히 의지의 문제, 도덕성의 문제로 여긴다고 말한다. 흔히 약물중독 환자는 기분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약물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고통스러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약물을 사용한다. 약물중독이란 몸이 약물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하이재킹(hijacking)으로 표현할 정도로 의지만으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약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의지부족으로 여긴다. 저자는 당뇨병을 앓는 사람에게 의지로 이겨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약물중독에 빠진 사람에게 의지로 이겨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울증을 앓게 되면 약물중독의 위험성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말한다.

 

앞서 인용했듯이 우리 언론에서는 자살관련 기사 밑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면서 연락처를 함께 적어 놓는다. 그게 도움이 될까 싶지만 저자는 어떤 조치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언젠가 정부에서 자살을 예방한다면서 번개탄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그것은 실제로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효과가 입증된 강력한 자살예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농약 판매를 까다롭게 하고나서 농촌 자살률이 현저하게 줄어들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살 생각을 떠올리고 나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평균 1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마음속에는 우울과 불안과 공포와 분노가 소용돌이친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는 10분만 견디면 자살의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하려는 사람이 전화를 끊지 못하게 만들어 살려낸 사례가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자살은 끔찍한 일이다. 남아있는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뿐 아니라 자살을 왜 막지 못했냐는 주위의 물음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병으로 죽은 사람을 회고할 때는 그 사람의 살아 있을 때를 떠올리지만 자살한 사람은 그 사람의 삶 자체보다는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가족은 가족대로 떠나간 사람은 떠나간 사람대로 아픔을 겪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아니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모두가 그들의 아픔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정’을 뜻하는 sympathy는 감정(pathy)을 함께(sym) 느끼는 것이지만, ‘공감’을 뜻하는 empathy는 감정을 타인의 안에(em) 들어가서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마치 그가 된 듯 느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공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니 공감이란 함부로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상대가 겪는 고통과 아픔을 자신이 겪었을 때 우리는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공감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저자는 상대를 향해 마음이 열렸을 때 공감할 수 있고, 노력해서 공감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고 말하며 그 예로 덴마크에서 시작된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을 소개한다. 이 도서관 역시 다른 도서관처럼 자유롭게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데, 다른 도서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책 대신 사람을 빌려준다고 한다. 여기에는 소수 인종으로부터 에이즈 환자, 이민자, 조현병 환자, 노숙자, 실직자, 트렌스젠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원해서 참여한다. 그리고 이용자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편견을 바로잡고 공감을 키워나간다.

 

저자는 책의 첫 머리에서 정신과 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낙인과 편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낙인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집단 구성원을 직접 만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낙인과 편견을 줄이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으로 자살의 원인과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책을 시작한 것이다. 자살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므로.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