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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eBook]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저/서정은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긴 제목도 외우기 어려운데 하물며 순서를 두고 추상적인 단어들로 채운 제목은 내 머릿속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단편들을 읽다보니 이 단어의 의미는 별 뜻없이 외치는 소녀들의 손장난 놀이에 붙인 구호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삼육구. 삼육구...이런 거 말이다. 

순수를 가장한 앙큼한 소녀들의 눈에 비친 허술한 외모와 머리 덜 돌아갈 것같이 생긴 노처녀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으며 가짜 편지 소동을 일으키는 이야기, 몸이 아픈 40대 여자가 옥수수밭에서 순간 길을 잃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죽음의 은유는 가슴이 서늘하기까지 하다.

줄기마다 수의로 싸인 아기 같은 옥수수가 열려 있었다. 


물 위의 떠 있는 다리에 잠깐이라도 서 보았는가. 그 흔들림을 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의 문장에 마음을 열 수도 있을 것 같다.

부드러운 시작, 적당한 압박, 정성 어린 탐색과 자연스러운 수용, 여운을 남기며 사그라드는 고마움과 만족감,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존재감을 지닌 하나의 행위였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지난한 일상을 그 곳에 두고 온전히 마음을 쏟아야만 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성의 이야기, 죽은 어머니의 가구에 비친 과거의 잔상들을 밀어내려는 잔잔한 애상이 담긴 이야기가 있다.


종교와 과학의 논쟁을 업으로 삼은 남편의 죽음을 맞이한 여자와 그 시신을 분장시키는 장의사와의 묘한 심리를 그린 이야기에는 위안을 찾아 헤매는 미망인의 모습이 보인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자를 위한 의식은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제 자신 돌보기 급급한 인생들 아닌가.


전업주부들은 한번쯤 아니 두어번쯤 평소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고픈 일상이 있다. 먹거리에 대한 일상말이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아침 홀로 깨어 식탁차리는 일 안하고픈 마음을 그린 문장에 하이라이트를 주었다.

아침을 하는 대신 나는 매일 아침 이탤리언델리에 가서 갓 구운 롤빵과 커피를 사 마셨다. 집안일에서 이렇게 멀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활홀하게 했다. 하지만 전에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것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아침 창가의 의자나 보도의 옥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런 곳에 와서 아침을 먹는다는 사실에 대한 경이와 기쁨 대신 지루하게 반복되는 외로운 삶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입장이 서로 다르기에 같은 일을 하고도 마음이 느끼는 감정의 한계는 각자 다르기 마련이다. 


젊은 날에 친구였던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는 한 남자의 죽음으로 남은 남자와 그 미망인의 지난 날 기억속에 남겨두었던 숨은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비틀어지는 것일까. 각자의 기억은 각자의 몫인 것 같다. 상대에게 전달하려고 하지만 과거 기억속의 관계일 뿐이다. 서로는 서로의 기억을 끌어 안을 수 없다. 기억속의 나는 다른 모습이기에...


조숙한 여자아이가 힘세고 인자한 아버지같은 남자에게 사랑을 느낀다면...그로 인해 집을 나가 그 아빠같은 남자와 같이 산다면... 그런 경우가 요즘도 흔하다. 강한 아빠의 모습에 주눅이 들어 집안에서 운신을 못하고 다툼만 일삼다가 밖에서 나이 많고 어른스러울 것 같은 남자에게 반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대부분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남자에게 아빠의 인자한 모습을 기대하기도 한다. 소녀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 어른스러워지는데 그 때 어른같던 남자가 어른으로 안보이기 시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작품에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 전에 읽은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서는 해학과 비유의 웃음이 많았는데 이 단편집은 좀 무거운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서 그렇듯 마음속에서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는 미움이, 찾고 싶은 우정이, 다시 한번 구애의 기회를 찾고픈 마음이, 지금의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돌아보는 아쉬움이, 결혼이란 딱히 추천하고 싶지도 거부하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런 이상한 거라는 걸 말해 주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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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스민

    E북으로 읽으셨군요. 아무래도 책이 무겁게 느껴지진 않으셨겠네요.^^;저도 읽었었는데요. 전 그냥 괜찮더라고요.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아직 안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찜해둬야 겠어요.ㅎ

    2014.03.17 15:3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님의 리뷰도 잘 보았어요. ^^ 앨리스 먼로와 첫만남은 박완서님처럼 따뜻했어요. 이 단편들은 그 이전 작품같기도 해요. 여자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보니 제 입장이랑 비교하게 되더군요. 좀 슬프기도 했어요.

      2014.03.19 01:33
  • 쟈파

    오래전 처음 외국의 대도시에 갔을때, 거리의 까페나 델리에서 아침 먹는게 그렇게 좋았어요. 아, 아침을 이렇게 먹고 사는 생활도 있구나 경이로웠어요. 그 후에 그렇게 아침 먹는 사람들의 느리고 지루한 얼굴도(대개 노인들) 봤지만 아직도 저는 그 특별함을 다 누리지 못해서 계속 좋아하고 있어요.^^

    2014.03.19 00: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이곳 베이커리나 카페는 모두가 할아버지 할머니 차지예요. 이른 아침부터 오전 내내 그분들은 분주하시더라구요. 오후에는 젊은이들이 많구요. 저도 쫌 즐기는 쪽이랍니다.

      2014.03.19 01:35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사놓기만 했군요.
    여자의 심리를 조금은 냉철하게 그린 것 같아요. 좀 기괴한 느낌도 드는게 따듯한 느낌 같진 않네요.

    2014.03.19 21:0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위트와 시니컬한 느낌이 있는 글인데 그러면에서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더 나은 것 같아요

      2014.03.21 04:54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