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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도서] 델리

쿠쉬완트 싱 저/황보석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3점

한 도시의 융성과 퇴락을 다룬 작품들을 읽다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을 인간 개인의 일생이 그 도시안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찬란했던 제국의 위용이 사라져버린 후 처참한 몰골을 드러낸 도시의 뒷골목에는 다시 못 올 젊음의 그것처럼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오르한 파묵이 그린 콘스탄티노플의 잔재로 연명하는 도시 이스탄불이 그랬듯이... 사라진 제국의 영광위에 다져진 그네들의 일상은 예전같지 않다. 쇠락한 기운에 점점 존재감을 상실한 비극적인 현실만이 작가의 시선을 괴롭힌다. 작가의 개인적 견해에 묻혀 이스탄불을 바라보면 심정으로는 슬프지만 직접 이스탄불을 바라보면 그럴 수가 없다. 말로만 듣던 그들의 문명과 유산들은 지금도 여전히 눈에 보이고 살아 움직이는 지금의 사람들을 통해서 보게 될 테니까.

 

쿠쉬완트 싱의 델리는 의도적인 욕정을 품었다. 육욕의 본질을 도시의 융성과 개인의 성적욕망으로 대치시키며 인도의 600년 역사를 사실적으로 혹은 지어낸 스토리로 끌어간다. 연대기적인 서술속에서 초점이 되는 사건과 인물들을 다루며 당시에도 다른 견해를 가졌을 사람들의 심정으로 도발적인 기술을 전개한다. 

수많은 종교파벌들이 이합집산을 이루지만 믿음과 구원에 대한 허기는 채울 길이 없다. 


"신은 단 한 분이되 우리는 그분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릅니다. 또 그분께 다가가는 방법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자기 자신에게 가장 낫다고 여겨지는 방식을 따르십시오, 신의 길은 회교사원이나 예배당으로 이끌릴 수도 있고, 우상들로 가득 찬 사원으로 이끌릴 수도 있고, 황야의 외로운 동굴로 이끌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길을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가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면 가장 나은 길이라도 여러분을 기만의 미로로 이끌 것입니다. " < p115-116>


주인공은 지식과 감성을 두루 갖춘 마초의 인도남이다. 스토리는 한 생애동안 인도의 역사를 두루두루 섭렵하며 주인공이 애정하는 도시 델리와 욕정의 대상 남녀추니(양성의 생식기를 지님))인 바그마티를 중심으로 과거의 영예로운 제국둘과 근대 인도의 혼란기를 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부분에서 인도문학을 사뭇 접하지 못했던 원인중의 하나가 열강의 패권이 지배하는 체제하에서는 어느 문명이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한들 대중의 곁을 찾아들 길은 만무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보이지 않은 지배층의 요구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많았을 거라 생각하니 살짝 오싹해진다. 

이란의 왕이었던 나디르 샤에게 약탈된 도시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는 황량함만 있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아프도록 묘사한 부분, 바로 이 부분을 읽을 때 가슴이 뛰었다. 문학적이면서도 서정성이 짙은 글이란 바로 이럴 때 택하는 표현아닐까. 


내 사랑하는 도시에 어떤 불행이 닥쳤던 것인가! 시크교도들, 마라타들, 도적들, 소매치기들, 동냥아치들, 통치자들, 그 모두가 우리를 희생물로 삼고 있었다. 재산이 없는 자는 행복하였으니 가난이 유일한 부였고, 그런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되자 나는 부유한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동시에 가난한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였다.  <p343>


언젠가 이 허물어진 도시를 지날 때,

나뭇가지에 외로이 앉은 새가 있어서, 

이 황량한 폐허에 대해 뭘 알고 있니? 하고 물었더니

그 새가 대답하기를, 난 그걸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어,

슬퍼! 슬퍼! 라고. <p344>


삼년전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톱카프 궁전에서 본 진기하고도 세밀한 보석들에 눈이 돌아간 적이 있었다. 도대체 몇 캐럿인지 기억은 없지만 거대한 물방울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가 촘촘하게 박힌 아름답고 화려한 초승달 모양의 황금칼이 이란 왕 나디르 샤 통치당시 때의 물품이었다는 사실을 [델리]를 읽으면서 알게 된 자료였다.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군림하는 한명을 위해 생애 전부를 던져야 했던 그 시대의 인물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뎠을까. 


"나는 내 사랑하는 도시로 돌아왔다. 처참한 광경을 보니 저절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안과 동요가 더 커진다. 한때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집도, 이정표도 알아볼 수가 없다. 전에 살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고 어느 곳에나 소름끼친 공허가 내려 있다. 불현듯 나는 내가 한때 살았던 거처로 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당시의 내 삶을 회상했다.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나 시를 낭송하고, 사랑을 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연모하며 잠 안 오는 밤을 보내고,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 치렁치렁한 머리칼에 대해 시를 쓰던 때를. 그것이 바로 삶이었다! 이제 거기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잠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 하나도! 나는 그 길에서 벗어나 인적 없는 거리에 서서 소름끼치는 정적과 처참한 광경에 아연실색해 입을 쩍 벌린다. 그리고 속으로 맹세를 한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다시는 이 길을 찾지 않으리라고. 이제 델리는 인적 없는 길들에 먼지만이 떠도는 도시지만 지난날에는 바로 이 도시에서 황금으로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도 있었다." <p350>


왕의 권좌는 최고의 권위와 모든 이의 경배를 받는 자리였다. 이는 권력을 손아귀에 쥐었을 때만 가능하다. 권좌를 바라보는 바하두르 샤 자파르는 한숨과 고뇌에 섞인 눈물을 흘린다. 권력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기에...


짐은 13년 이상 지하실에 처박여 있었던 백은 옥좌에 앉았다. 그 옥좌는 타이무르와 바바르, 후마윤, 악바르, 자항가르, 샤 자한, 알람기르 아우랑제브1세, 바하두루 1세, 자한다르 샤 파루크시야르, 모하메드 샤, 알람기르 2세, 샤 알람 같은 선조들과 짐의 덕망 높은 선친 악바르 2세께서 앉으셨던 자리였다. 짐은 일몰을 알리는 대포 소리가 울릴 때까지 신하들에게서 경배를 받은 뒤 하례를 끝냈다. <p399>


왕좌는 사라지고 지배층은 몰락했다. 살아남은 귀족들은 힘센 열강의 지배하에서 자리를 잡느라 분주했다. 굴욕적인 행위를 하며 살아남았고 그 댓가인 모욕은 가난한 자들의 몫이었다. 끊이지 않는 종교다툼과 이를 계기로 터진 간디와 인디라 간디 암살사건은 인도와 국제사회를 뒤흔들었다. 


주인공이 델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매춘부 바그마티와 닮았다. 혼란스러운 육체를 지녔고 단순하고 가벼운 사랑에 쉽게 무너지지만 시간이 지나도 떼어낼 수 없는 마력의 소유자가 바로 바그마티였고 델리였다. 누군가 삶이 지루하다고 여겨질 때 인도의 화장터를 가보라고 권한다. 지금도 카스트에 갇힌 사회이기에 가진 자와 못 가진자의 호불호가 삶이 끝장나는 그 순간에도 명확하게 구분되는 곳이란다. 돈 많은 사람이 죽으면 탈 장작이 충분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장작이 부족한 돈 없는 자들의 시신은 안전하게 타질 못한다.주변에 몰려든 들개들에게 먹히는 일도 벌어진다고, 그걸 목격하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지루할 수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것이 델리다. 삶이 너무 힘겨워질 때면 니감보드 가트 화장터로 가서 죽은 자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지켜보고 그 가족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 위스키를 두어 잔 털어 넣는다. 델리에서는 죽음과 술이 인생을 살 만하게 해준다. <p30>


장대한 분량의 역사를 사실과 허구가 시공을 넘나들며 해학과 창의적인 발상으로 전개된다. 작가가 25년동안 썼다고 한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수작이니 낯선 세계의 작품을 읽고자 한다면 권하고 싶다. 단지 하단의 페이지가 제대로 절단되지 않아서 책이 떡처럼 한몸으로 나왔다. 초판의 상황이라 홀로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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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25년 동안의 집필기간이 있었군요.
    서평 낙첨후 몇몇 리뷰를 읽었지만 하루 님 리뷰로 알 것 같은 느낌.
    빛나는 리뷰세요.

    2015.03.14 12:0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개안을 했다고 할까요.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디딘 기분입니다.

      2015.03.15 19:43
  • 쟈파

    참으로 흥미로운 책이네요. 인도에 관해서 거의 아는게 없어요. 어릴때 인도 동화집 읽은게 다인거 같아요.(아니면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 정도 ㅎㅎ) 글도 아주 서정적이고 아름답네요. 그런데 이 책은 어떤 언어로 써진걸까요? 번역자는 불어 전문인거 같은데. 여러가지로 궁금하게 하는 책이네요.

    2015.03.14 16:1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일전에 분권으로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한권의 책으로 재편집했다고 합니다. 불어번역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 전 인도하면 좀 심란해요. 문화나 풍물에 그리 관심도 없고요. 여행지로도 가고 싶은 맘이 안생겨요. 편견이 심한가봐요.

      2015.03.15 19:45
  • 파워블로그 금비

    대서시시 같은 작품 느낌이에요. 서구 역사 중심의 문학을 주로 보다보니 인도 역살 바탕으로 한 작품은 더욱 낯섭니다. 호기심이 생겨요.

    2015.03.15 08:4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한번쯤 접해보면 어떨까요. 방대한 양이지만 읽는 즐거움도 있답니다.

      2015.03.15 19:47
    • 파워블로그 금비

      오타작렬이네요 ㅋㅋㅋ

      2015.03.16 10:36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