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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없는 예수 교회

[도서] 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도덕문제). 철수가 부모님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 가게로 가고 있었는데, 길가의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잃어 버리신듯 안절부절하시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른 행동일까요? (   )

(1) 부모님의 심부름이 급하므로 그냥 지나간다.
(2) 할머니께 무엇이 필요하신지 물어보고 길을 알려드린다.
(3) 콩나물 살 돈을 할머니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간다. 
(4) 남의 일이니 관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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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러 다른 이유로 여러 다른 답을 달수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도덕시간에 받는 테스트라면 (2)번으로 답을 다는 것이 점수를 받는 길일 것이다. 도덕 시험점수가 100점이라도 나오면, 사람들은 자기가 도덕적으로 100점인 사람인것 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현대를 살아가는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치 이런류의 사람과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신들이 교회의 신조와 교리를 받아들이고 믿었으므로, 할 것 다했다고 생각하고 구원받았다고 안도하며 산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거기까지가 그들이 생각하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현대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개독교’라는 말이 나도는 작금의 시대에 더욱 중대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시급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책의 저자인 한완상씨는 이러한 현상을 아주 무서운 말로 꼬집었고, 그것이 바로 책의 제목이 되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47,47절)” 라는 구절이 있다. 이미 구약시대때부터 교회당안에 하나님이 없을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말씀이다. 
저자는 이렇게 교회의 모습이 빈강냉이처럼 된 이유를 첫번째로 기독교의 왜곡된 역사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세월 기독교가 제도화되면서 왜곡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화 작업이 진척되어 일정한 교리와 교조의 틀이 굳어지면서 예수의 참뜻을 따르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야 할 예수의 말씀은 증발되고, 대신 교리는 더욱 체계화되고 강조되었고, 따라서 기독교의 신앙은 갈릴리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실천적 결단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교리의 절대수용을 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로교회에서 예배시간이 되면 생각없이 외우는 사도신경은 이러한 교리화 작업을 충실히 이행해온 교회 모습의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이 구원사와 구속사의 시각에서만 해석되고 강조되는 것은, 잘못하면 ‘은총(은혜)만으로’라는 게으른 신앙생활, 윤리없는 한국교회와 개신교신자를 양산할수 있다고 하면서, 부활하신 예수의 능력만을 소중하게 강조하는 사도바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한다. 
예수없는 교회가 되어가는 한국기독교의 책임은 신앙인들 각자에게도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신앙적인 치매가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억력상실이나 치매에 걸리면 남을 알아보지 못한다. 남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자기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람관계를 파괴시키고, 자아의 정체성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질병임에 틀림이 없다. 분명한 자기정체성은 성숙한 인간의 조건이고 사람이 사람다운 존엄을 갖게 하는데, 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의 참 뜻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마치 신앙적 치매에 빠져 버린 것과 똑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역사와 성경속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정의의 체험을 잊지 말고 자신의 상황에서 실천하는 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이지만, 그 뜻은 사라져버리고, 교회는 이 세상에서의 현실적 삶과 죽어서 천국을 보장해주고 는 방편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양산되어 온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신앙적 치매에 걸린 신앙인들의 적나라한 모습인 것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신랄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위로서의 구원이냐, 은혜로서의 구원이냐의 싸움을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초점이 ‘예수의 마음’에 가 있는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의 하루하루의 삶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단지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의 수용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뼈속 깊이 체감한다면 지금이라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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