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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http://m.ch.yes24.com/Article/View/35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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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로 20년째 일하고 있지만, 저는 한 번도 방송사 PD가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 따라 원서를 내고 시험을 봤는데요. 필기, 면접, 합숙 평가, 최종 면접으로 이어지는 전형 과정 중, 딱 한 번, ‘아, 어쩌면 내가 PD가 될 수도 있겠구나!’ 느낀 순간이 있어요. 바로 논술 주제를 받아 들었던 때입니다. 1996년도 MBC PD 공채의 논술 주제는 세 글자, ‘아버지’였어요.

 

어려서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국문과나 영문과에 진학해서 평생 책을 실컷 읽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의사를 해야 한다며 이과로 보냈지요. 수학이 젬병이라 의대 갈 실력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성적이 안 되어 공대로 방향을 틀었지만, 대학을 다니면서 많이 괴로웠어요. 힘들 때마다 일기에 고민을 털어놓았지요. ‘아버지가 망친 내 인생, 어떻게 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공대를 다니며 영문과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는데요. 그때 깨달았어요. 영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영어 소설 읽는 걸 즐기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석유시추공학’ 강의 시간에 교재 밑에 스티븐 킹의 소설을 숨겨두고 읽는 게 삶의 낙이었거든요. 영어 전공을 한다고 꼭 영어를 잘 하는 게 아니듯이, 비전공자라도 취미삼아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혼자 영어책을 외우며 공부했습니다. 혼자 영어를 공부한 과정은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에서도 썼는데요. 훗날 외대 통역대학원에 진학하고, 번역가라는 직업을 얻게 된 건 ‘아버지가 망친 인생, 자력으로 갱생하자’는 다짐 덕분이었어요.

 

MBC 공채 시험에서 논술 주제로 나온 ‘아버지’ 세 글자를 보자, 펜을 잡고 줄줄 글을 써내려갔어요. 평생 맺힌 한을 종이 위에 풀어놓았지요. 마지막에는 한 번도 PD라는 직업을 꿈꾼 적이 없는 내가 MBC에 지원한 이유를 썼어요. ‘아버지 눈에 저는 단 한 번도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의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만약 MBC에서 PD로 일하게 된다면, 그래서 온 국민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저도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을까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평소 글쓰기로 푼 덕분에 PD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연출 데뷔작인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을 만들 때, 인터넷 게시판이 뜨거웠습니다. 당시 극중 박경림을 향한 조인성의 짝사랑이나 양동근을 향한 장나라의 가슴앓이를 응원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는데요.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방송 뒷이야기를 게시판에 글로 올렸어요. 선배 PD들은 이렇게 말했지요. “PD는 글이 아니라 방송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저는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드라마나 시트콤은 방송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시청자 게시판에 남긴 글도 차츰 잊히고요. 기왕에 쓴 글을 한 공간에 모아두고 싶어 만든 게 블로그였습니다. 시트콤이나 드라마는 공짜로 즐기는 콘텐츠입니다. 저는 세상에 공짜로 즐길 수 있는 게 많다고 믿어요. 노는데 돈을 쓰지 않으면,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세상을 공짜로 즐길 수 있다면 삶이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은 블로그 이름이 ‘공짜로 즐기는 세상’입니다.

 

블로그의 ‘공짜 PD 스쿨’을 통해 저는 평생 연출가로 살아오며 배운 것을 PD 지망생이나 창작자를 꿈꾸는 이들과 나눕니다. ‘공짜 영어 스쿨’을 통해 20대에 10년 간 했던 영어 공부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사람들과 나누지요. ‘공짜 여행 스쿨’은 큰돈 안 들이고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찾는 곳입니다. ‘짠돌이 독서 일기’에는 매일 도서관에서 만난 책과 글귀를 소개하고요.

 

20대에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느꼈어요. 평생 우리는 ‘나’라는 상품을 파는 영업사원으로 삽니다. 상품을 판매하려면 광고를 해야 합니다. 글로도 광고하고 말로도 광고하지요. 블로그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꾸밀 수 있는 최고의 퍼스널 브랜드 플랫폼입니다. 바쁜 직장 생활 와중에도 매일 한 편씩 글을 씁니다. 아니 오히려 바쁠수록 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나의 분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나의 글은 광대한 인터넷의 바다를 여행하는 분신이 되어 내가 잠든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테니까요. 오늘도 제 블로그에는 원고 청탁이나 강연 의뢰 등 새로운 일감을 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글을 남깁니다.

 

평생 영업사원, 통역사, 예능 PD, 드라마 PD,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겪어봤는데요. 그중 가장 쉬웠던 것이 작가가 되는 일이었어요.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이신 강원국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쓴 사람이 작가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작가라는 하나의 직함을 더할 수 있어요.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한 편씩 올리면 됩니다.

 

‘꾸준한 오늘이 있기에 무한한 내일이 있다.’ 학창 시절 꾸준히 글쓰기를 즐긴 덕분에 논술이나 면접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요. PD로 일하는 와중에 짬짬이 글을 쓴 덕분에 은퇴 후가 두렵지 않아요. 내일은 또 어떤 꿈이 이루어지고 어떤 일이 찾아올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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